[기자수첩] 쿠팡플레이는 OTT의 근본을 훼손했다
여용준 기자
2022.08.03
쿠팡플레이가 때아닌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콘텐츠 '안나'를 연출한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감독의 동의없이 8부작 드라마를 6부작으로 편집했다고 밝혔다.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감독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안나'를 편집해 작품을 훼손했다"라며 "제가 연출한 것과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안나'를 편집한 김정훈 편집감독은 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6월 24일에 본 안나는 내가 감독과 밤을 지새우며 편집한 안나가 아니었다"며 "쿠팡이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달라고 했을 때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제작사로부터 받아간 것을 알고 나서는 그래도 설마 설마했지만, 우리가 만든 8부작이 6부작으로 짜깁기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쿠팡플레이 측은 "감독의 편집방향이 당초 쿠팡플레이, 감독, 제작사(컨텐츠맵) 간에 상호 협의된 방향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난 수개월에 걸쳐 쿠팡플레이는 감독에게 구체적인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은 수정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서, 그리고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 쿠팡플레이는 원래의 제작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고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8부작 감독판도 곧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쿠팡플레이의 해명과 관계없이 이 같은 행태는 OTT시장의 발전에 역주행하는 처사다. 그동안 넷플릭스가 성장한 배경에는 창작자의 자유도를 온전히 보장한 데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의 극본을 쓴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에 대해 "이렇게 까지 간섭을 안 해도 되나 했다. 써 온 것을 검토하기 보다 뭘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 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를 만든 봉준호 감독도 "이 정도 예산 통제권을 감독에게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넷플릭스는 하기 싫은 것을 하게 하거나 못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넷플릭스와 작업한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자유도를 온전히 보장한다는 점을 넷플릭스의 장점으로 꼽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넷플릭스의 특징이 콘텐츠의 재미를 온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에스콰이어에 실은 칼럼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프로듀서(제작자) 역할이 없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제작자는 감독이 작품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동안 작품의 흥행성을 계산하는 사람이다. 돈이 되는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면서 감독과 협의를 통해 결과를 내는 사람이다. 이 역할의 부재는 넷플릭스가 재미없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된다.
상업영화와 드라마 시장에서 제작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작품에 따라 즉각적인 흥행 성과 데이터가 나오고 공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역시 방송사 시청률을 통해 흥행 성과가 나온다.
그러나 OTT 콘텐츠는 흥행 데이터가 온전히 집계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넷플릭스도 자체 집계를 통해 누적 시청시간을 바탕으로 한 순위를 내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플랫폼 내부의 집계순위다. 즉 OTT 콘텐츠는 감독의 자유도를 보장해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이 같은 전략은 전 세계 유능한 창작자들이 넷플릭스로 향하게 하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모기업 쿠팡의 든든한 지원과 함께 'SNL 코리아'의 성장으로 단숨에 국내 점유율 4위까지 오른 서비스다. 최근 토트넘 내한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스포츠팬들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플랫폼의 흥행을 이끄는 주력 콘텐츠가 있다면 이용자의 다양한 입맛을 맞출 수 있도록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좋다.
스타트업 출신의 OTT 서비스 왓챠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화제성이 절실했음에도 내부의 평점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맨틱 에러'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는 BL물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OTT 서비스의 시작은 콘텐츠의 다양성에서 비롯됐다.
지상파 방송사가 정해진 시간에 콘텐츠를 방송하고 PPL에 휘둘리는 데 지친 시청자들이 OTT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OTT의 시작이었다. 창작자는 작품에 대한 자유도를 얻고 사용자는 취향과 시간대의 자유도를 얻는다.
쿠팡플레이와 '안나' 제작진 간의 갈등은 이 같은 OTT의 자유도가 훼손된 사례다. 영화촬영 현장은 즉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당초 기획의도와 각본이 어떻게 나왔다 하더라도 현장 환경과 연결에 따라 변화는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처음과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제작·투자사는 감독과 협의를 통해 수정해야 한다. 감독이 고집을 부린다면 공개일정을 늦춰서라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협의해야 한다. 이런 협의가 없이 일방적으로 편집을 했다는 것은 1980년대 영화판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쿠팡플레이의 결정은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OTT시장의 근본을 훼손한 결과다. 이제 누가 쿠팡플레이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할까?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