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최강의 조합이라던… ‘종이의집’과 ‘토르’는 왜 망했나
넷플릭스 톱10도 탈락
부진한 이유 알아보니
3374만 시간.
지난달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집: 공동경제구역’ 첫 주 오프닝 시청 시간이다. 종이의집 한국판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당시 스페인 드라마 ‘인티머시’를 누르고 넷플릭스 시리즈 비영어권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정상을 찍었으면 된 것 아니냐고? 그러기엔 조금 아쉽다. 최근 공개된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중 ‘지금 우리 학교는’은 1억2479만 시간, ‘오징어게임’은 6319만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옥(4348만 시간)’, ‘마이네임(4178만 시간)’보다도 낮다. 그렇다고 작품성에 대한 평가도 높지도 않다. 글로벌 영화 드라마 비평사이트 IMDB 점수는 10점 만점에 5.2, 이전 다섯 작품들 중 가장 낮다. 국내 첫 넷플릭스 SF 영화로 혹평을 받았던 승리호(6.5)보다도 낮다.
망할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역대 넷플릭스 시리즈물 1위가 한국 작품인 ‘오징어게임’. 이것이 등장하기 전 비영어권 작품 1위가 ‘종이의집’이었다. 1위와 1위의 만남에, 한국 드라마라면 무조건 봐주는 K드라마 팬층도 있었다. 공개된 첫날, 한국을 비롯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모로코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던 다른 K 작품들과 달리, 종이의집은 꾸준히 순위가 떨어져 공개한 지 한 달도 안 된 20일 글로벌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순위뿐 아니라 국내 넷플릭스 순위 10위권에서도 탈락했다. 현재 넷플릭스 1위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반대인 양상이다.
현재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지난 6일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다. 국내 영화시장 별명은 ‘마블민국’. 마블 시리즈 인기가 유난히 높아서다. 게다가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았던 ‘토르: 라그나로크’의 후속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개봉한 지 6일 만에 개봉한지 20일 지난 ‘탑건 : 매버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도 두 번째 주말 성적이, 첫 주 대비 68% 떨어져 마블 역대 최악의 하락률을 보였다. 올여름을 점령할 줄 알았던 두 작품, 왜 망한 것일까.
뻔한 자기 복제
“컨트롤 C(복사), 컨트롤 V(붙여넣기), 하지만 파일이 손상됐습니다.” IMDB 한 네티즌 평가단이 종이의집 한국판에 대해 남긴 글이다.
2017년 5월 처음 공개된 넷플릭스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집’은 시즌 5까지 만들어진 인기작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교수’라고 불리는 한 천재가 8명의 범죄자들을 모아 조폐국을 터는 내용. 뻔해 보이는 이 이야기가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교수와 경찰의 두뇌 싸움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스포주의’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도 없다. 원작과 너무 똑같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긴 내용을 어설프게 줄이느라 연결과 구성은 더욱 성글다.
‘토르 : 러브 앤 썬더’도 마찬가지다. 이전 시리즈 인기 캐릭터들은 우르르 등장하지만, 웃기지도, 통쾌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한 네티즌은 “폼 떨어진 옛날 개그맨이 하루 종일 개그하는 걸 편집 없이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미 시애틀타임스의 스콧 그린스톤은 “토르 4는 다음 마블 콘텐츠를 위한 싸구려 광고 같다”고 했다.
이런 뻔한 자기 복제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가장 위험하다. 넷플릭스가 종이의집 한국판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IMDB 네티즌 평론가 ‘poinla’는 이렇게 추정한다.
<넷플릭스 싱크탱크>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 돈을 벌 방법이 없을까? 지금 트렌드는 뭐지?”
“한국입니다.”
“그럼 그동안 어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지?”
“오피스?”
“그건 안 돼, 다른 건?”
“종이의집?”
“그래! 좋은 생각이야!”
물론 가상의 설정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그럴듯한 스토리다. 1회 초반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에 대한 언급은 이런 의심을 확신으로 바뀌게 만든다. 이런 뻔한 자기 복제는 과거 홍콩 영화의 시대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영상미와 캐릭터는 어디로?
그래도 하나 바뀐 것이 있다. 바로 배경이다. 원작 종이의집 시리즈를 빛나게 했던 건 화려한 조폐국 세트와 마드리드, 톨레도 등을 오가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미 한국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에서 소름 돋는 미장센을 선보였기 때문에, 종이의집 한국판에서는 통일 한국이라는 상상 속의 모습과 아름다운 한국의 배경이 화면 가득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종이의집 한국판은 과거 한국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하다. 특히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22년 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는 듯하다. 6화에서 교수(유지태)와 선우진(김윤진)이 만나 술을 마시는 북한 주점 같은 배경은 대학축제 주점에서도 나오지 않을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북한’과 ‘통일’이라는 주제를 접목시킨 점은 신선했으나, 이를 연출하는 방식이 22년 전과 비교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선과 악을 오가는 원작의 입체적인 캐릭터들도 한국판에서는 평면적으로 나온다. “올드보이의 유지태, 로스트의 김윤진, 오징어게임의 박해수, 콜의 전종서를 쓰고도 망할 줄은 몰랐다”는 말이 나온다.
‘토르: 러브 앤 썬더’ 역시 마찬가지다. 토르를 빛나게 했던 건 입체적인 캐릭터의 악역. 토르의 동생이면서 악역인 로키는 그 인기에 힘입어 단독 드라마까지 만들어졌고,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 악역인 누나 헬라는 마블 시리즈 중 가장 매력적인 악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악역 고르는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가 아까울 만큼 무섭지 않다. 그렇다고 토르가 강한 것도 아니다. 토르의 어설픈 개그 속에 모든 캐릭터들은 추진력을 잃고 침몰한다.
물론 아직 혹평을 내리기는 이르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파트 2가 남아 있다. 유지태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파트 2를 기대해달라”고 했다. ‘토르: 러브 앤 썬더’ 역시 “토르는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그들을 기다릴지 말지는 관객의 몫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