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선한 드라마의 반란
- 가
- 가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콘텐츠 파워
지금 드라마업계에서는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로 술렁댄다. 이 정도까지 성공할 줄 전혀 예상치 못한 기적같은 성공을 이 드라마가 거둬서다. 도대체 이 드라마의 무엇이 이러한 신드롬을 만들어냈고 그 의미는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만든 기현상
기현상이다. 최근 화제를 넘어 신드롬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봤을 이 드라마는 사실 ENA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ENA라는 채널은 낯설기 그지없다. 이런 채널이 언제 있었나 싶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어째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 '이상한' 채널을 선택하게 된 걸까.
ENA는 SKY TV가 운영하는 TV채널이다. 2014년 '채널N'에서 '스카이 드라마'로 변경했다가 2020년 드라마를 뺀 SKY로 리뉴얼했고 올해 4월29일 ENA로 채널명을 변경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ENA가 대중들에게 선을 보인 건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ENA에서 첫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시청률이 0.9%(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 신생 채널의 시청률 치고는 높은 수치였던 것.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고 대중들의 입소문을 탄 이 드라마는 그 후로 1.8%, 4.0%, 5.1%로 시청률이 매회 치솟았다. 이 시청률은 같은 수목드라마들인 tvN '이브'(3.6%), KBS '징크스의 연인'(3.5%), JTBC '인사이더'(2.9%)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신생 채널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가 기존 편성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압도하는 기현상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거둔 어마어마한 성과는 OTT에서도 벌어졌다. 즉 ENA 채널과 함께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지난 7월 8일 기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시리즈로 등극했다. 또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의하면 이 드라마는 전 세계 TV쇼 부문에서 9위에 올랐다(7월 10일 기준). 한국은 물론이고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트남에서 1위를 찍었다.
넷플릭스가 리메이크 오리지널 시리즈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종이의 집'이 생각보다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차라리 이 드라마의 선전이 최근 부진하게 느껴진 넷플릭스의 존재감을 세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ENA가 낯선 시청자들은 당연히 훨씬 접근성이 좋은 넷플릭스를 통해 이 드라마를 시청했을 테니 말이다. 좋은 콘텐츠라면 대중들이 찾아본다는 걸 입증한 이 드라마는, 그래서 플랫폼의 시대가 저물고 콘텐츠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 비결
그렇다면 도대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거둔 이런 엄청난 성공의 비결은 무얼까. 놀라운 일이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착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가 어려움에 처한 의뢰인들을 독특한 생각의 전환과 열정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과정을 담는 법정드라마다.
그런데 최근 법정드라마들과 비교해 보면 이 드라마는 순하다는 느낌을 준다. 즉, 작년에 방영됐던 '악마판사'나 최근 방영되고 있는 MBC '닥터 로이어', SBS '왜 오수재인가' 같은 법정드라마를 보면 정의는 이긴다는 스토리라기보다는 이긴 자가 정의라는 논리를 종종 보여준다. 그래서 악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더 큰 악을 동원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만큼 사회가 극악해지다보니 선으로는 도무지 정의를 세울 수 없다는 일종의 포기하는 정서들이 드라마에 드리워졌던 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와는 정반대로 그래도 '선이 이긴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이 법정드라마가 다른 점은 형사사건이 아닌 민사사건들을 주로 소재로 가져온 점이다. 이것 역시 너무 거악에 집중하다보니 서민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자잘한 갈등이나 문제들이 오히려 도외시되었던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법이 그렇게 나와는 멀리 있는 저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걸, 이 드라마는 우영우(박은빈)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여기에는 또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그 장애와 차별적 시선을 넘어서는 과정이 주는 뭉클한 감동도 더해졌다. 이 부분은 우영우라는 변호사가 가진 남다른 강점과 연결되는데, 그것은 다른 변호사들이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부분을 이 변호사가 바라보고 찾아내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첫 번째 사건으로 우영우가 맡았던 노부부 다리미 폭행 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모두가 다리미가 가진 이미지에 경도되어 그 이전부터 있었던 지병을 보지 못할 때, 우영우는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진상을 들여다본다. 이것은 자신 또한 자폐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을 편견 없이 보려는 그 노력에 의해 생겨난 경쟁력이 아닐까.
어쨌든 여기서 우영우의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강점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여전한 편견 때문에 변호사로 자신이 서는 일이 의뢰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절망하기도 하지만, 우영우 주변에는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다. 시청자들은 이런 주변인들의 시선이 되어 우영우가 그 편견을 깨고 세상에 나서기를 응원하게 된다.
◆대본‧연출‧연기…기본에 충실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이른바 '착한 드라마'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지 '선이 이긴다'는 그 의지를 다시금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로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본, 연출, 연기의 삼박자가 충실한 드라마라는 의미로서도 이 드라마는 착하다. 이 드라마의 대본은 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드라마적으로 잘 형상화되어 있다. 즉, 민사소송 관련 법률 사례를 촘촘히 담고 있고, 자폐 같은 장애에 대한 사전 취재가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이를 우영우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냄으로써 드라마가 하려는 장애나 선의 가치 같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워낙 정평이 나 있기로 알려진 유인식 감독의 '담담하지만 임팩트 강한'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우영우가 어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바람이 불며 기뻐하는 얼굴에 거대한 고래가 유영하는 장면이 단적이다. 삭막한 도시의 빌딩 창문 밖으로 고래가 마치 날아가듯 지나가는 광경은 과하지 않게 압도적이면서도 이 드라마가 가진 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 건 우영우라는 결코 쉽지 않은 인물을 맡아 그 현실적인 디테일을 살려내면서도 한없이 귀여운 캐릭터로 그려낸 박은빈의 연기다. 이 작품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상해보여도 특별한 변호사라는 하나의 비전이자 판타지를 그려내 장애에 대한 편견 자체를 지워내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박은빈의 연기는 그저 귀엽게 보이기 위한 '귀여움'이 아니다. 거기에는 장애를 갖고 있어도 사회에서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비전과 호감으로서의 귀여움이 담겨 있다.
선이 이기고, 착한 드라마가 성공한다는 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전하는 이 메시지는 그래서 시청자들을 더욱 이 신드롬에 끌어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건 어쩌면 모든 시청자가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토록 보기를 원하는 것이고, 응원하고 지지하고픈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