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파랑 오리'를 위하여…'우영우' 문지원 작가의 뚝심[SS초점]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파랑 오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 ‘증인’(2019)에서부터 이어져 온 이 세계관은 ENA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만개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방영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화제를 모으며 2회만에 한국 넷플릭스 톱2(Top2)를 기록했다. 문지원 작가의 뚝심이 꽃피운 결과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수많은 새끼 오리들의 모형이 줄지어 늘어져 있다. 다들 노란색이다. 어느 순간 그 무리 사이에 파란색 새끼 오리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첫 장면부터 예고했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 파랑 오리에 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
‘증인’의 고등학생 지우가 커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신입 변호사 영우가 됐을까. |
|
이 기획 의도는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보고회에서 연출을 맡은 유인식 감독은 “‘증인’에서 자폐를 가진 고등학생 지우(김향기 분)가 ‘엄마 나는 자폐가 있어서 변호사는 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증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 한다. 그런 지우의 이야기를 쓴 문지원 작가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이야기를 썼다. 그렇다면 ‘정말 변호사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가 큰 고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사례도 있긴 하지만 드라마는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는데, 작가님은 최선의 대답을 하셨고 그것이 가치 있는 대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연출을 맡게 된 이유를 전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도 이날 “문지원 작가님께서 자폐인을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닌, 그들도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소통하는 걸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문 작가도 참석, 객석에서 제작보고회를 조용히 지켜봤다. 그렇게 ‘증인’의 지우가 성장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우가 됐다. 우영우(박은빈 분)의 좌충우돌 대형 로펌 생존기의 시작 배경이다.
|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역삼역?” 신입 우영우의 첫 인사 中. |
|
‘파랑 오리’를 전면에 내세운 작가가 자기 작품에서 기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한 모든 클리셰(진부한 장면)를 전복시킨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장애인 여성을 원톱 주연으로 내세워 그를 서포트하는 송무팀 비서는 젊은 남성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 로펌의 두 대표는 모두 여성으로 등장시켰다.
전형적인 ‘여적여’ 구도(‘여자의 적은 여자’의 줄임말. 한국 드라마에서 흔한 구도인 주인공 여성을 질투하는 인물은 항상 여성이라는 말)도 없다. 로스쿨 동기이자 같은 로펌 동료 최수연은 영우를 라이벌이 아닌 동등한 변호사로 인식한다. 절친 동그라미도 영우를 챙겨줘야 할 존재가 아닌 내 친구 영우 그 자체로 대우한다.
흔해빠진 미혼모 설정 역시 미혼부(父) 설정으로 변주했다. 영우는 미혼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홀로 키우기 위해 김밥집을 운영한 아버지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그 아버지를 신격화하지도, 부모 스스로가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장애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시청자에 신파적인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다.
|
2회에서 영우가 아버지에게 결혼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장면. |
|
그러한 맥락에서 지난달 30일 방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회에선 이런 대사가 등장했다. 영우가 홀로 자신을 키워온 아버지에게 말한다. “저는 결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폐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식을 한다면 ‘동시 입장’을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배우자에게 저를 넘겨주는 게 아니라 제가 어른으로서 결혼하는 것이니까요.” 부녀 관계를 소유물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그리고 결혼을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남성에게 넘겨주는 의식이 아닌 성인으로서 스스로 결정하는 일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 역시 문 작가가 뚝심을 갖고 이어온 세계관으로 ‘증인’에서도 순호(정우성 분)가 46살이 되도록 애인을 집에 데려오지 않자 그의 아버지는 “남자도 괜찮다. 사람이면”이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결혼 안 한다니까요”라며 비혼임을 드러낸 주인공 순호와, “네 엄마도 나보다 나이 많았어”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짧게 등장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사건을 해결해가는 법정물이라고 피가 낭자하지 않은 것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만의 특징이다. 현재 공개된 2회까지 피 한 방울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흔히 보지 못한 ‘파랑 오리’ 의뢰인을 전면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존재들을 등장시킨 문 작가의 시각이 빛난 순간이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 출근길. 1회 갈무리. |
|
‘꼰대 의식’ 없는 상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우영우가 입사하자 놀란 선배 변호사 정명석은 곧장 대표를 찾아간다. 우영우의 이력서가 원래 두 장이란다. 앞장에는 서울대학교 로스쿨 수석 졸업 이력이, 뒷장에는 특이사항으로 자폐 스펙트럼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영우가 입사한 대형로펌 ‘한바다’ 대표 한선영은 뒷장을 없애버린 채 정 변호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말한다. “뒷장에만 꽂혀서 앞장 안 본 거 아닌가요.”
이후에도 잘못을 쿨하게 인정할 줄 알고 신입에게 사과하는 정명석 변호사와 회식 자리에서 원치 않다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한선영 대표는 오늘날 MZ세대가 바랐던 상사의 모습이다. 이 팀을 ‘다채롭다’고 표현할 줄 아는 선배들이 있는 영우의 직장 ‘한바다’가 그가 좋아하는 고래가 뛰놀 수 있는 깊고 푸른 바다같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쯤 되면 주인공 이름이자 제목인 ‘우영우’라는 세 글자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1회에서 영우는 로펌 로비에 있는 회전문을 혼자서 통과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꽃부리 영(英)에 복 우(禑)를 쓰지만, 영리할 영(怜)에 어리석을 우(愚)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우영우’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 성별을 짐작할 수 없기에 성별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봐달라는 숨은 의도와 함께, 근래 유행어처럼 번진 주의가 필요한 아이를 뜻하는 ‘금쪽이’의 본래 의미인 ‘아주 귀한 사람’을 뜻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1회에서는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2회에선 성소수자를 다뤘다. 오는 6일 방영될 3회에선 영우와 또 다른 범주에 있는 자폐인을 다룰 예정이다. 자폐는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해 같은 자폐인으로 분류되는 영우조차 이 의뢰인이 난감하다. 드라마는 이로써 다양한 자폐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장애를 가진 의뢰인의 모습도 등장시킨다.
이 같은 이야기들이 아직까지는 현실감 넘치는 생활형 드라마라기보단 판타지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존 한국의 판타지물에서도 답습하고 있는 모든 클리셰를 전복시키며 진정한 판타지물이자 방향성을 제시했다. 자극에 취약한 영우의 이야기답게 무자극 스토리와 연출을 펼치면서, 마치 시청자 중에서도 존재할 또 한 명의 영우를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결국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단 2회 만에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묻는다.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웃이 아직도 당당히 주인공이 될 수 없는가. 더 나아가 당신이 혹시 소수자는 아닌가. 그리고 나는 소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영우 김밥을 먹고 출근하고 있다. 1회 갈무리. |
|
et1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