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너머'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바이킹 후예들의 암투
<93> 넷플릭스 '바이킹스: 발할라'
입력
2022.07.02 08:00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2013년 히스토리 채널에서 만든 '바이킹스'는 최고의 드라마였다. 바이킹의 신화적 영웅 라그나 로스브로크를 주인공으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해 만들어진 바이킹의 유럽 침략사는 2020년 시즌6으로 막을 내렸다. 마블의 슈퍼히어로서도 유명한 토르와 오딘을 섬기는 북구 신앙, 전장에서 죽으면 발할라에 가서 신들과 함께 한다는 생사관, 손님에게 아내와 함께 섹스를 하자고 권하는 분방한 성관념 등 바이킹의 철학과 일상은 놀라웠다. 전투 민족인 바이킹들이 주인공이니 액션 장면 역시 강렬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고, 약탈자로 변한 바이킹의 스토리는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했다.
하지만 라그나의 죽음 이후 아들들이 영웅으로 성장하는 5시즌 정도부터 느슨해졌다. 6시즌으로 막을 내린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바이킹스' 종영의 아쉬움은 바이킹이 주인공인 버나드 콘웰의 소설 원작 '라스트 킹덤'과 유키무라 마코토의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 '빈란드 사가'로 달랬다. 바이킹은 아니지만, 게르만족과 로마군단의 싸움을 그린 '바바리안'도 좋았다. 하지만 '바이킹스'의 종영은 못내 아쉬웠다.
'바이킹스:발할라'는 '바이킹스'의 스핀오프 드라마다. 인물이 겹치지는 않는다. '바이킹스' 시즌6에서 100년 후의 이야기니까, 원작의 영웅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바이킹스'의 스토리를 원전으로 하기에 설정이 이어진다. '바이킹스:발할라'의 바이킹에게 라그나와 라게타, 비욘, 아이바는 선대의 영웅이다. 선조의 영광을 위해서, 재현하기 위해서 싸운다. 라그나의 고향이자 왕국인 카테카트는 '바이킹스:발할라'에서도 중요한 무대이자 바이킹끼리 싸우는 전장이 된다. 영국 침략 그리고 이민족과의 화해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라그나 로스브로크가 이끈 바이킹이 영국을 침략한 후 150년 이상이 흘렀다. 색슨족에게 일부 땅을 얻어 정착지를 마련하고 살았던 바이킹은 잉글랜드 왕의 군사 고문이나 근위병 등을 할 정도로 동화가 되었다. 민족은 다르지만 함께 잘 사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귀족들의 부추김을 받은 애설레드왕은 성 브라이스 축일에 바이킹 정착지를 습격하여 학살을 감행한다. 잉글랜드와 머시아 등의 힘이 강하고, 바이킹도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다시 바다를 넘어 대규모 침공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애설레드왕의 오판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 '바이킹스:발할라'는 바이킹과 색슨족의 대립만이 아니라 종교적 갈등이 전면에 드러난다. '바이킹스'에서 라그나도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고, 일부 바이킹 역시 라그나를 따라 개종했다. 한 세기가 지났으니 종교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잉글랜드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바이킹은 개종했다. 애설레드의 명을 받아 선교를 위해 북구로 향한 바이킹들도 많았다. 그런데 바이킹은 말로 설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 싸우고, 힘으로 굴복시킨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예수를 믿는 바이킹은 같은 바이킹이라도 이교도를 이유 불문하고 처단한다. 광신도들은 전사가 아닌 무고한 사람들까지 학살한다.
'바이킹스:발할라'의 주인공은 그린란드에서 카테카트로 온 레이프와 프레이디스 에릭손 남매다. 그리고 프레이디스를 사랑하게 된 노르웨이의 왕자 하랄드. 어릴 때 혼자 집에 있었던 프레이디스는 낯선 이방인에게 강간을 당하고, 등에 커다란 십자가 흉터를 얻게 된다. 예수를 믿으라며, 칼로 십자가를 새긴 남자였다. 프레이디스는 성인이 되어 복수하기 위해 카테카트로 왔고, 레이프와 친구들이 동행했다. 프레이디스는 복수에 성공했지만 남자는 노르웨이 왕 올라프의 심복이었다.
복수에 성공했지만 사형될 위기에 처한 프레이디스를 구한 것은 올라프의 동생 하랄드다. 잉글랜드에서 학살된 바이킹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모였으니, 오빠인 레이프가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면 프레이디스의 죄를 사해주자는 것이다. 탁월한 전사이자 항해사인 레이프의 능력을 높이 산 결정이다. 마지못해 덴마크 왕 올라프가 동의하고 하랄드와 레이프는 함께 잉글랜드로 향한다.
이미 '바이킹스'를 봤다면 알겠지만, 바이킹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탁월한 전략가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정면으로 바이킹과 붙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게다가 바이킹과 전투 직전에 애설레드왕이 사망한다. 새롭게 왕이 된 에드먼드는 젊고 혈기왕성하고, 그래서 무모하다.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로 온 애설레드왕의 아내였던 퀸 에마는 바이킹의 후예이고, 지략이 뛰어나다. 정략적인 이유로 팔려오다시피 했던 퀸 에마는 자신의 힘으로 왕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바이킹스:발할라'는 바이킹과 색슨족의 피와 뼈가 난무하는 전투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더 심각하고 야비한 것은 끊임없는 암투다. 에드먼드가 원군을 요청하러 간 머시아는 독립을 내걸며 거래를 요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크누트왕이 에드먼드와 함께 잉글랜드에 남아 왕이 되겠다고 하자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저울질한다. 바이킹 내부도 마찬가지다. 올라프는 하랄드에게 다음 왕위를 약속했지만,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하랄드에게 알리지 않았다. 또한 크누트가 잉글랜드에 남은 틈에 카테카트를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광신도인 코레 군장과 손을 잡고 이교도인 카테카트의 호콘 군장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모든 이가 자신의 이익과 목적 말고는 관심이 없다. 배신하고, 죽이고, 권력을 잡는다.
'바이킹스'의 매력은 원초성이었다. 라그나는 심플한 인간이다. 일상의 생활조차 힘든 척박한 땅에서 곤궁하게 살아가기보다는 바다 건너 희망을 찾아간다. 너머에 괴물이 살고 있을지라도, 일단 확인하고 싶다. 라그나의 꿈이, 희망이 바이킹을 감동시키고 함께 잉글랜드로 향하게 한다. 게다가 바이킹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죽는다면 신의 자리로 올라갈 테니 더 좋은 일이다. 그러니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하고, 먹고 마신다. 바이킹의 긍정적인 모든 면이 라그나에게 응축되어 폭발한 작품이 '바이킹스'다.
'바이킹스'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바이킹스:발할라'의 인물들은 이미 때가 묻었다. 그들은 바다 건너의 무언가에 마음이 설레지 않는다. 문명의 때가 묻었고, 현실보다 추상적인 구원의 꿈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도 많다. 그린란드에서 온 레이프와 프레이디스는 그래서 중요하다. 하랄드와 달리 그들에게는 미래의 꿈이 있고, 복수의 갈망이 존재했다. 강렬하게 삶을 이끄는 동력이 레이프와 프레이디스에게는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고통을 주는 것도, 구원을 주는 것도 역시 신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현실은, 살아가는 것뿐이다. 어떻게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레이프와 프레이디스가 바다를 건너온 이유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