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극장전]오바마가 제작한 정부의 역할 가이드
2022.06.20ㅣ주간경향 1482호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4132명의 당선자 중 508명, 12.3%가 무투표 당선이란 결과에 지방선거 무용론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정부 무용론으로 흐른다. ‘작은 정부’를 예찬하며 민간(기업)에 뒤처진 관료주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럼에도 코로나19든, 안보위기든, 불황대책이든 우리는 늘 정부의 역할을 원한다. 대체 정부란 어떤 존재이기에.
넷플릭스 코미디 쇼 <애덤 코노버: 정부가 왜 이래> 포스터 /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언 애덤 코노버가 진행하는 넷플릭스 코미디 쇼 <애덤 코노버: 정부가 왜 이래>는 미국 연방정부의 숨은 역할을 알기 쉽게 해설하는 기획이다. 다큐멘터리와 코믹 시트콤을 오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음식’, ‘날씨’, ‘돈’, ‘미래’, ‘질병’, ‘변화’ 테마를 각 30분 내외로 구성하는 6부작이다.
매회 전반부는 애덤 코노버가 해당 주제 관련 연방정부의 보이지 않는 기능을 현장 탐방을 통해 소개한다.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 각 영역을 커버하는 정부조직의 관리능력과 역사적 업적에 대해 친절하고 위트 있는 해설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놀고먹는 세금도둑’ 이미지로 덧칠된 공무원들이 제 몫을 해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후반부는 전반부를 마치 정부의 홍보영상처럼 느꼈던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킨다. 애덤 코노버는 신랄한 독설과 함께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불공정한 정책들의 원인을 파헤치고 진상을 폭로한다. 시스템 전반을 타락시키는 이익집단의 로비와 정부의 과거 실책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마구 터뜨린다. 저런 내용으로 만들어도 연방정부가 협조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물론 막판에 비협조도 발생한다). ‘질병’편은 정부의 역할과 한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계 최대 임상시험 병원인 미국 국립보건원의 가치와 지난 세기에 말라리아-홍역-결핵-소아마비를 퇴치한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역사를 소개한다. 속담을 비틀자면 ‘세금’이 ‘죽음’을 몰아내는 데 쓰인 셈이다. 로널드 레이건 집권 후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정부 기능 축소 압박에 공중보건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바람에 코로나19 대응에 한계를 노출한, 씁쓸한 현실이 곧이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피해가 제일 컸지만 가난한 시골이라 보건소 외엔 병원이 하나도 없었던 앨라배마의 한 지자체 이야기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극명하게 입증한다.
마지막편 ‘변화’에서 애덤 코노버는 전직 미국 대통령과 토론한다. 오바마는 “정부는 쾌속정이 아니라 원양 정기선”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멀게만 느껴지는 중앙정부에 목매기보다는 작은 실천과 연대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지역정치에 관심과 개입을 당부한다. 담화를 마치고 애덤 코노버는 실제 지방선거에 대응해 변화를 이끈 사례들을 찾아 소개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무리 자막이 오른다. 총괄 프로듀서에 버락 오바마의 이름이 뜬다. 본인의 치적 자화자찬이 아니라 임기 중의 오류와 한계까지 (일부나마) 담아낸 이 시리즈는 정부가 비밀결사나 ‘빅 브러더’가 아닌 시민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직이란 점과 그 변화는 결국 시민들의 관심에 달려 있다는, 소박한 교훈을 다시금 일깨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