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를 사랑으로 포장한 '히바로'의 낡은 서사
<73> '히바로’에 등장하는 콩키스타도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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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04:30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인용 SF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로봇' 시리즈의 시즌3이 지난달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히바로(Jibaro)'다. 알베르토 미엘고 감독은 이 작품에서 소리를 못 듣는 '콩키스타도르'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의 만남과 배신, 죽음을 다루었다.
작품의 영상과 음악은 매우 탁월하지만 보고 나니 생각할 점이 많았다. 에스파냐 정복자가 아메리카원주민에게 붙여준 '히바로(Jibaro·야만인)'가 제목인 데다가황금에 눈먼 콩키스타도르가 등장한다는 점, 정복할 대상이나 위험한 자연을 여성으로 의인화하며 여성을 남성의 영원한 타자로, 처단해야 할 괴물로 여기는 유구한 성차별 전통을 계승
했다는 점에서다.
콩키스타도르는 왜 아메리카로 갔을까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는 근대 초 에스파냐 출신의 아메리카 정복자를 의미한다. 1492년 서인도 제도에 상륙한 콜럼버스, 1521년에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코르테스, 1533년에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피사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왜 고국 에스파냐를 떠나 아메리카로 갔을까?
8세기 초, 현재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도인 아랍계 무어인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들에 맞서 북부에 있는 가톨릭 왕국들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불리는 국토회복 운동을 벌인다. 가톨릭 세력은 점점 반도 남부로 이슬람 세력을 내몰고 그들이 통치했던 대부분의 지역을 되찾게 된다.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가 결혼하여 현재의 통일 에스파냐가 성립한다. 두 가톨릭 왕은 마지막 남은 이슬람 세력의 도시인 그라나다까지 점령하여 800여 년에 걸친 레콩키스타를 완성한다. 이때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해이기도 하다.
꿈꿨던 국토 회복은 이루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전쟁할 일이 없어졌기에 그 많던 에스파냐 기사들이 실업자가 돼버린 것이다. 왕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무장한 사회 불만 세력이 폭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지배계급이었던 기사는 14~15세기 백년전쟁 때부터 장궁과 대포, 총포의 발명과 중앙집권 국가의 출현으로 인한 전쟁 감소로 예전 명성과 일자리를 잃고 몰락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귀족 전사 계급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전사 귀족들의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에스파냐의 경우는 반대였다. 오랜 기간 레콩키스타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 세력과의 잦은 전쟁 때문에 오히려 하급 기사들의 수가 지나치게 늘어났다.
이때,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고 인도로 떠난 콜럼버스의 성공 소식이 들려왔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인도'에는 황금이 잔뜩 쌓여 있다는 정보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들이 생겨났다. 페르난도와 이사벨은 식민지 개척을 위해 실업자 기사들을 해외로 보내 버린다. 이때 배에 오른 기사들이 바로 정복자, 콩키스타도르이다. 이들은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에스파냐 식민지 건설 사업을 벌인다.
물론 식민지 개척에 나선 집단의 구성을 보면 기사들보다 상인 부르주아와 일반인의 비율이 더 높았다. 그러나 이들 전사들은 오직 돈벌이가 목적인 상인이나 일반인과 달랐다. 기사 출신 콩키스타도르들은 레콩키스타의 경험과 기사도 영향으로 가톨릭교와 정의의 수호자라는 명분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해외로 진출한 에스파냐의 콩키스타도르들은 황금 획득에 눈멀었으면서도 이교도나 현지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그릇된 기사도를 실천하게 된다. '히바로'에서 기사들이 성직자들의 축복을 받는 장면이 있는 유래다.
라틴 아메리카 지배계층이 백인인 이유
콩키스타도르를 비롯,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백인 남성들은 일확천금 인생역전을 꿈꾸며 혼자 대서양을 건너오는 경우가 많았다. 재산을 모으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본국에서 신붓감을 데려오거나 이미 현지에 와 있는 백인 여성과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인종적 편견이 매우 심했다.
에스파냐어에서 멋진 왕자님 즉 '백마 탄 왕자'를 의미하는 표현은 '프린치페 아줄(príncipe azul·파란 왕자님)'이다. 햇볕 아래에서 노동을 하지 않는 왕족이나 귀족의 피부가 창백해서 정맥이 파랗게 비쳐 보이기에 비롯한 말이다. 옛 유럽 사람들은 고귀한 혈통을 가진 사람에게는 파란 피(sangre azul)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들 보다 특히 에스파냐인들은 파란 피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여기에도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이베리아 반도는 오랫동안 북부는 가톨릭 백인들이, 남부는 이슬람 아랍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북부의 전사 귀족들은 레콩키스타 전쟁에 참가하며 정체성이 형성된다. 오랫동안 아랍계, 유대계와 함께 살았기에 1492년 레콩키스타 완성 이후 순수 혈통에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콩키스타도르들은 현지인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했지만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다. 한편, 백인 지배자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시달린 가난한 인디오 여성들은 같은 인디오 남성들에게는 '칭가다(chingada·창녀)'라고 멸시받는 이중고를 겪었다.
정복 초기에 에스파냐 왕실은 직접 지배 대신 현지에 간 콩키스타도르에게 일정한 수의 원주민을 위탁하여 간접적으로 이윤을 챙겼다. 이를 '엔코미엔다(Encomienda·위탁제도)'라 한다. 왕실의 위탁을 받은 사람은 원주민을 보호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인도하는 의무를 지는 한편, 무임금으로 원주민의 노동력을 농장이나 광산에 동원할 수 있었다. 대농장에서 노동을 하거나 저택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백인 지배자 남성은 원주민 여성과 일상적인 접촉이 가능했다. 그 결과 반강제로, 혹은 폭력에 의해 많은 혼혈인이 태어났다.
'메스티소(Mestizo)'라고 불리는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혼혈인들은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를 제외한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현재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일컬을 때 이렇게 외친다고 한다. "비바 메히코 이호스 데 라 칭가다!( Viva México, hijos de la chingada·멕시코 만세, 창녀의 자식들!)" 정확해 말해 '칭가다'는 창녀가 아니라 강간당한 여자, 능욕당한 여자이지만, 이 구호의 역사적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원조 콩키스타도르인 코르테스에게 도달한다. 코르테스가 멕시코 정복에 나선 1519년, 마야의 추장들은 코르테스에게 값진 선물과 더불어 여자 20명을 준다. 이들 중 말린체란 여성이 코르테스의 통역 겸 현지처가 된다. 코르테스는 나중에 같은 에스파냐 여성과 정식 결혼을 한다. 결국 코르테스와 말린체 사이의 자식이 혼혈인인 '메스티소'의 조상이 되는 셈이다. 한편, 콩키스타도르를 비롯한 백인 남성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기반을 잡은 후에 같은 백인 여성과 정식 결혼을 하여 남긴 후손은 '크리오요(Criollo)'라고 부른다. 이들이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지배계층이다.
사랑으로 둔갑한 폭력과 착취
이런 역사적 사실로 볼 때, 나는 감독이 '히바로'에서 콩키스타도르가 만난 현지인을 비인간 세이렌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자연(여성)을 항상 인간(남성)의 타자로 놓고,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서가 바탕에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감독은 "이 두 사람은 잘못된 이유로 서로를 사랑하는데, 그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글쎄, 엄연히 수탈당하고 착취당한 역사가 있는데 사랑이라니. 뻔히 보이는 폭력과 착취가 이성애자 남녀 사이의 관계로 설정하면 가려지고, 사랑이 먼저 강조되는 이 익숙한 패턴이라니.
너무 예민한 지적 같은가? 이 그림을 보자. 러일전쟁 당시 풍자화다.
조선이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주제가 사랑으로 보이는가? 삼각관계로 보이는가? 이렇듯, 제국주의 시대에 피정복 지역은 항상 나체이거나 노출을 한 야만인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식민지 정복의 상징은 현지인 여성의 지배였다. 말린체나 포카혼타스의 경우처럼, 착취관계는 남녀애정관계로 둔갑하기 일쑤였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작품인 '히바로'도 이 점에서는 구태의연한 설정을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