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블랙미러 단편시리즈 스미더린
2022.06.06ㅣ주간경향 1480호
ㆍ늘 SNS와 연결된 삶은 행복한가?
승용차 뒷좌석의 인질이 운전석 납치범의 총을 빼앗으려 덤벼든다. 멀리서 관망하던 경찰 저격수들이 이때다 싶어 조준 사격을 한다. 차 유리창에 구멍이 나건 말건 인질은 권총 손잡이를 놓을 생각이 없다. 이 청년은 차 트렁크에 갇히자마자 폐소공포증 운운하며 실성하기 직전이었고, 할 수 없이 뒷좌석에 태워 머리에 천으로 만든 자루를 씌웠더니 겁에 질린 나머지 토악질하던 겁쟁이가 맞나 싶다. 멀찌감치 지켜보던 경찰로서는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니 중재자와의 대화를 단칼에 물리고 ‘빌리 바우어’와 직접 통화하게 해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납치범과 인질의 몸싸움에 개입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블랙미러>의 단편시리즈인 <스미더린> 포스터 /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SF드라마 시리즈 <블랙미러> ‘스미더린’편의 키워드는 바로 ‘빌리 바우어’다. 그는 페이스북의 창업자 같은 인물이다. 사람들은 빌리가 개발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스미더린’을 휴대전화로 수시로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이 이야기는 스릴러도 액션 영화도 아니다. 대신 일면식도 없는 회사원을 대낮에 납치한 한 택시기사의 행적을 종잡을 수 없게 보여준다. 그 결과 관객은 납치범의 씻어낼 수 없는 트라우마와 직면한다. 첨단기술 문명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가련한 한 개인의 비극이다. 애초 사이코 같던 납치범에게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아픈 사연이 있다. 겁쟁이 인질조차 두려움을 잊고 중년 사내의 자살을 막아 나서게 할 만큼.
전과는 커녕 전직교사 출신인 한 중년남성이 스미더린 본사 앞에서 택시영업을 한다. 택시면허는 도용됐으니 생계를 위한 건 아니다. 스미더린 직원을 태울 기회만 노렸으니까. 마침내 납치에 성공한 그는 스미더린 CEO 빌리 바우어와 자신이 직접 통화하게 해주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한다. 대기업은 거대화된 관료조직답게 여러 단계의 게이트키핑을 거치며 납치범과 인질을 애태운다. FBI는 영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개입해 시간만 잡아먹는다. 미국의 외진 산봉우리에서 묵언수행을 하던 빌리는 이 사실을 전달받자 만류를 뿌리치고 직접 통화에 나선다. 납치범은 거액을 요구하는 대신 자신의 사연을 들어달라고 한다.
운전 도중 당신이 올린 페이스북 글의 알람을 체크하느라 다른 차와 충돌해 옆 좌석의 연인이 사망한다면 그 심정을 마크 저커버그가 몇퍼센트나 공감할까? 누군가 ‘좋아요’를 해줬을 뿐인데 습관적으로 그걸 잠시 들여다본 대가는 참혹했다. 그냥 개인의 부주의 아니냐고? SNS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게 된 것이 비단 사용자 혼자만의 온전한 책임일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온갖 설정으로 자극한 건 누구인가? 드라마 속의 빌리 바우어는 마크 저커버그 대신 사과한다. 애초의 시작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으나 사업이 확장을 거듭하며 그리됐노라고. 심지어 사람들이 SNS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게 온갖 수단을 고안하는 전담부서까지 만들었다고. 납치범은 교통사고의 1차 잘못이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빌리가 그러한 환경을 조장했다고 꼬집는다. 그러고는 다음번 업데이트에 참고해달라며 총구를 자신에게 겨눈다. 과학기술은 도구일 뿐이라지만 문득 우리 자신이 외려 그것의 도구로 전락한 건 아닐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면 이 드라마가 힌트를 주리라.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