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넷플릭스, 애타는 극장… ‘45일 상영’ 합의 이룰까
넷플릭스와 극장은 땅따먹기하듯 서로 시장을 빼앗아온 앙숙이었다. 극장 업계는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관객을 도둑질해가는 천적이라 여겼다. 어차피 영상 콘텐츠 소비의 미래는 자기들 방식에 있다고 믿는 넷플릭스는 오만했다. 하지만 오래 끌어온 코로나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런 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넷플릭스가 올 하반기 새 영화 최소 두 편을 수천개 스크린에서 적어도 45일 상영하는데 극장 업계와 의견 접근을 이뤄가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최근 보도했다. 탐정 시리즈물 ‘나이브스 아웃’의 속편과 ‘바벨’ ‘버드맨’ 등으로 칸과 오스카를 휩쓸었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새 작품이 그 후보로 거론된다.
◇넷플릭스 영화 극장 개봉 길 열릴까
그동안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가 오리지널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각종 영화제에서 선전한 거장의 작품이나 예술영화의 경우<그래픽>엔 제한적이나마 극장에 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기존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영화처럼 세계 시장에 수천~수만개 스크린 규모로 동시 개봉하는 일은 없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스트리밍 공개 전 극장에서 독점 상영할 수 있는 기간에 대한 의견 차이였다. OTT 등장 이전 극장들은 새 영화가 DVD 판매나 인터넷 TV 같은 부가 판권 시장으로 넘어가기 전 최소 90일 이상 극장 상영 기간을 보장받았다. OTT 등장 이후에도 극장 업계는 이 기간을 최소 60일 이상으로 지키려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고 극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넷플릭스는 2019년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을 개봉하면서 미국 내 3위권 극장 체인 시네마크와 독점 상영 기간 45일을 보장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때도 1~2위 극장 체인들은 이 합의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배트맨’ 흥행이 바꿔놓은 셈법
마침내 이런 과거의 셈법을 바꿔놓은 영화가 등장했다. 지난 3월 초 개봉한 ‘더 배트맨’. 제작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이 영화를 딱 45일간 극장에서 개봉한 뒤 계열 OTT 플랫폼인 ‘HBO맥스’에 공개했는데, 극장에서 틀었던 기간 7억5000만달러(약 9480억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올렸다. OTT처럼 극장도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흥행 주기도 짧아지면서, ‘45일 개봉’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극장들은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신상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기존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한 해 내놓는 작품 편수는 많아야 10편 정도. 이마저 정상화되는 데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올해도 30편 이상을 내놓을 할리우드 최다작 제작사다. 장사만 된다면 넷플릭스 역시 구독자 감소와 주가 폭락, 후발 주자들과의 경쟁 격화로 레드 오션이 되어 가는 스트리밍 시장을 보완할 수단이 필요하다. 광고 도입에다 계정 공유 추가 비용 부과까지, 과거의 ‘오직 구독’ 사업 모델을 재검토 중인 시점에서 넷플릭스와 극장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인디와이어 등 외신들은 “개별 타이틀에 홍보 비용을 쓰지 않았던 넷플릭스의 입장 변화와 경영진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합의 도달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