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K액터도 K팝도, 대세는 글로벌 오디션
[조은별 기자의 K엔터+] 필수 관문된 글로벌 오디션
입력 2022-04-05 18:30 | 신문게재 2022-04-06 11면
'파친코' 윤여정(사진제공=애플TV+) |
“내 연기경력이 몇 십 년인데…만약 오디션 봤는데 ‘이 역할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란 소리 들으면 난 한국에서 오디션 봤다 떨어진 여자가 되잖아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배우 윤여정도 할리우드의 오디션 시스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서 자이니치 1세대 선자를 연기한 그는 처음 오디션을 제안 받았을 때 당황했던 심경을 이같이 표했다. 물론 윤여정의 경우 간단한 대본 리딩 수준의 짧은 오디션을 거쳤지만 최근 한국 배우들의 글로벌 진출이 잦아지면서 해외 오디션을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정호연의 사례를 보듯 글로벌 OTT는 신인배우들에게 무궁무진한 기회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국내 제작사가 납품하는 글로벌OTT 작품 혹은 할리우드 에이전시에 직접 오디션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속사 없어도…직접 영어 오디션 준비하는 K액터들
오디션을 통해 '파친코'에 출연하게 된 이민호(왼쪽)와 김민하(사진제공=애플TV+) |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민하는 무려 4개월에 걸친 장기 오디션을 통과했다. 김민하는 최근 국내 취재진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3~4개월에 걸쳐 오디션과 인터뷰 과정을 거쳤다. 나중에는 ‘케미스트리’ 오디션까지 진행했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출연진 중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그는 ‘파친코’가 발견한 보석으로 해외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민하같은 무명의 신인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는 과정은 상당히 지난하다. 우선 캐스팅 디렉터에게 자신의 프로필을 전달한다. 오디션을 개최한다는 정보를 받으면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셀프테이프)을 제작사에 전달한다.
'파친코'의 한 장면(사진제공=애플TV+) |
‘셀프테이프’는 모든 배우들이 거치는 1차 관문이다. 여기서 합격할 경우 국내 제작사는 ‘대면 오디션’을 거치지만 해외 오디션은 화상으로 ‘대본 리딩’ 오디션을 가진다. 담당자가 국내에 머물 경우 직접 대면 오디션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발 후 최근 2년간 신인의 대면 해외 오디션은 극히 드물었다는 전언이다.
‘파친코’의 경우 국내 제작사가 아닌 미국 자본으로 제작된 미국 드라마라는 점에서 오디션이 한층 엄격하게 진행됐다. 이 드라마에서 젊은 선자의 상대역 고한수로 분한 한류스타 이민호도 오디션을 거쳤다. 이민호가 오디션을 본 건 그를 스타덤에 올린 KBS2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 이후 13년만이다. 물론 이민호 역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스타인 만큼 오디션 과정은 약식으로 진행됐지만 한류스타에게도 할리우드 입성을 위해 오디션은 빠질 수 없는 관문인 셈이다.
배우 공정환 (사진제공=생각 엔터테인먼트) |
‘파친코’에서 고한수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 정웅인도 오디션에 참여했다. 정웅인 소속사 저스트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통상 국내 중견배우들이 오디션 보는 것을 꺼리는 것과 달리 정웅인씨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도전정신이 강했다”며 “소속사에서 오디션을 권하자 흔쾌히 응했다”고 설명했다. 정웅인도 상대적으로 ‘약식오디션’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영어가 유창한 배우들은 직접 할리우드 에이전시와 계약한 뒤 오디션에 지원해 캐스팅되기도 한다. 스페인 작가 다니엘 군더만과 결혼한 뒤 거주지를 국외로 옮긴 배우 박그리나가 그 예다.
한 관계자는 “영어가 유창한 박그리나는 결혼 뒤 국내 연예계를 떠나 할리우드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할리우드에서는 동양인 배우 수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영어실력이 유창하지 않더라도 연기력이 출중하고 배우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리우드 작품 오디션에 지원할 수 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파라마운트플러스 시리즈 ‘헤일로’에 출연하는 배우 공정환이 좋은 예다.
공정환을 잘 아는 방송관계자는 “공정환의 전 소속사 측이 캐스팅 디렉터의 제안에 공정환에게 오디션을 권했다”며 “공정환은 톱스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온 배우였기에 주어진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한국 배우들은 할리우드 시장이 ‘높은 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할리우드는 동양인 배우에게 열려 있다”며 “특히 ‘오징어게임’ 등 K콘텐츠의 인기로 한국배우에 대한 인식이 좋은 만큼 용기만 있다면 직접 할리우드 에이전시에 지원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연습생 찾아 해외로 오디션 떠나는 K팝
하이브 합동 오디션(왼쪽)과 FNC 글로벌 오디(사진제공=하이브, FNC) |
K액터들이 작품을 찾아 해외 오디션을 보는 반면 K팝 시장은 외국인 연습생을 찾아 해외에서 글로벌 오디션을 치른다. 국적, 성별, 피부색과 무관하게 끼와 재능이 넘치면 누구나 지원가능하다. 특히 K 신인 액터들이 화상을 통한 ‘비대면’ 오디션을 치르는 것과 달리 K팝 오디션은 현지를 직접 찾아가 가능성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룹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가 열리는 8∼9일(현지시간), 15∼16일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라스베이거스에서 글로벌 오디션을 개최한다. 하이브 내 빅히트 뮤직, 빌리프랩, 쏘스뮤직, 플레디스, KOZ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하이브 아메리카 등 7개 레이블이 합동으로 개최하는 대규모 오디션이다.
그룹 씨엔블루, AOA, 피원하모니 소속사 FNC도 이달 18~19일 미국 시애틀을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애틀란타, 뉴저지 및 뉴욕 등 총 6개 지역에서 16회에 걸쳐 ‘2022 FNC 픽업 스테이지: USA 투어’로 글로벌 신인을 찾아 나선다. 각 지역별 오디션 관문을 거치면 화상 혹은 한국에서 2, 3차 오디션을 치른다. 최종합격자는 연습생 계약을 맺은 뒤 가수 트레이닝 과정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세븐틴 소속사 플레디스는 하이브 레이블 오디션 외 자체적으로 ‘글로벌 원더틴즈’ 오디션을 통해 인재확보에 박차를 가한다. 이달의 소녀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도 2023년부터 활동할 보이그룹 멤버를 찾는 글로벌 오디션 ‘이달의 소년’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시크릿넘버 디타(왼쪽)와 걸그룹 하이키 멤버 시탈라(사진제공=바인 엔터테인먼트, 그랜드라인그룹) |
가요계는 K팝 시장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만큼 재능있는 해외인재를 사전에 확보해 트레이닝 시키는 게 필수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 멤버는 글로벌 시장에서 각국 인기를 견인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태국이 국적인 블랙핑크 멤버 리사, (여자)아이들의 민니 등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에서 큰 인기다. 신인걸그룹 시크릿넘버는 인도네시아 출신 멤버 디타 덕분에 데뷔 직후 타이틀곡 ‘불토’가 인도네시아 아이튠즈 송 차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부친이 태국 정계 유력인사인 걸그룹 하이키 멤버 시탈라는 국내 한 언론사가 진행한 K팝 여성스타 조사에서 4위를 얻기도 했다. 디타와 시탈라 모두 모국에서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K팝 스타가 되기 위해 고된 트레이닝 과정도 마다 않았다는 후문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