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칼럼] 밖과 안
- 기자명 정범구 청년재단 이사장 (전 주독일 대사)
- 입력 2022.03.23 16:43
- 수정 2022.03.23 16:58
정범구 청년재단 이사장(전 주독일대사)
2022.03.23
[고양신문] 3년 가까이 해외 공관장 생활을 하다 귀국하니 한동안 내 나라가 낯설게 느껴졌었다. 빠른 서비스 속도, 높은 디지털 수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행정 서비스 등등. 3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돌아온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 전과 또 달랐는데, 이른바 선진국, EU와 G7의 주요국가인 독일 대사를 지내다 온 나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는 또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었다.
독일은 젊은 시절 10년 이상 머물며 공부했던 곳이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지 근 30년 만에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되어 다시 찾은 독일은 그사이 많이 변해 있었다. 우선 통일을 이루었고, 통일과 함께 몰아닥친 세계화에도 적극 대응하였다. 그러나 변화 속도에 있어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었다. 단순하지만 비교하기 편하게 1인당 GDP변화를 비교해 보면, 1990~2020년간 한국은 500% 가까운 성장을 보였다. 반면 독일은 이 기간 동안 220%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독일의 2배 이상이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독일보다 2배 이상 빨랐다는 것은 사회변화 속도도 그만큼 빨랐다는 것이다. 한국을 아는 독일인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한국말은 “빨리 빨리”이다.
경제력으로 비교되는 한국은 그러나 독일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경제 규모 세계 2위인 중국과 3위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아직은 신흥공업국 이미지가 강한 나라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독일에까지 몰아닥친 케이팝(K-pop)과 케이필름(K-film) 등 한류의 영향은 독일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모았다.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성공에 놀란 독일 사회는 도대체 이 동아시아의 작은 신생 공업국에서 어떻게 저런 세계적 문화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기생충> 의 포스터를 세계 각국의 팬들이 패러디한 작품들. [이미지출처=한국캐나다영화제 홈페이지]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던 무렵 독일에서는 ‘뮌헨 안보회의’가 열렸다. 각국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기생충에서 보는 것처럼) 이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지구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아무도 여기에 반론을 내놓지 못했다. ‘한류’에 더해, 지금은 오미크론으로 빛이 바랬지만, 코로나 팬데믹 초기 대응에서 한국이 보여준 놀라운 효율성은 K-방역이란 이름으로 독일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문득 이렇게 자문해 보게 된다. 외국 대사로 나갔다 왔다는 사람이 너무 ‘국뽕’에 취해 온 것 아닌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이 심하다 보니 우리끼리 너무 내부 총질에 몰두해서 사실상 우리가 이룩한 성과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바깥 세계에 있다가 들어와 보면 이 차이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한국은 경제력(세계 10위), 군사력(세계 6위) 같은 하드 파워에서도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지만, 한류로 대표되는 소프트 파워에서는 이웃한 경제 강국들(중, 일)이 도달하지 못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결합된 스마트 파워에서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위치에 도달했다.
문제는 우리가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시각이 국가적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연결된다. 우리가 너무 내부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민족국가적 정체성 못지않게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제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범 지구적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라든가 평화, 난민 문제 등에 대해서도 더 많은 국제적 역할과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내 코가 석자인데…”라는 협소한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도 모르게 커진 우리의 덩치값을 이젠 해야 하는 것이다.
정범구 청년재단 이사장 (전 주독일 대사) webmaster@mygoyang.com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