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할리우드 진출'은 옛말, 국경이 사라졌다
최종수정 2022.03.22 07:30 기사입력 2022.03.22 07:30
'기생충'·'오징어게임' 전세계 인기
K-콘텐츠 열풍 아닌 브랜드로
국내외 협업多, 새로운 제작 형태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국경이 사라졌다. '한류'라는 말이 무색한 시대, K-콘텐츠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타고 전 세계에 뻗어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국내외 뜨거운 인기를 누리던 스타와 흐름을 '한류스타' '한류열풍' 이라고 했지만, 그저 옛말이 됐다. 굵직한 국제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성과를 인정받고, 이러한 모습이 국가를 대표한 '우리의 영광'이 아닌 '개인의 영광'으로 읽히는 시대. '해외에서 소비되는 문화'가 아닌 '우리 문화'로 그 자체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언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 와 닿는 건, 각 나라의 '언어'가 더는 장벽이 되지 않아서다.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각국 방송에 출연하려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울 필요도 없다. 물론 외국어가 능숙하다면 활동하기 보다 수월하겠지만, 캐스팅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필수 자격'처럼 읽히던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다.
최근 각국 콘텐츠 창작진, 배우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등 한국문화의 인지도를 높이며 여러 시상식에서 성과를 인정받았고, 이를 통해 국내 창작진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자연스럽게 상승한 배경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미국 애플TV플러스 신작 '파친코'는 수 휴가 총괄제작과 각본을 맡고, 코고나다·저스틴 전 감독이 4편의 에피소드를 번갈아 연출했다. 미디어레즈가 제작을 맡아 마이클 엘렌버그, 린지 스프링어, 대니 고린이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고, 블루 마블 픽쳐스의 테레사 강 로우를 비롯해 리차드 미들턴과 데이빗 킴, 세바스찬 리가 공동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배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정인지, 노상현 등이 출연한다.
작품에 출연한 이민호는 "정말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기술이 발달하며 전 세계가 가까워진 시대레 살고 있다고 느낀다. 한국 콘텐츠도 더 많은 사람, 많은 나라에서 접할 수 있게 됐는데, 처음 접하는 이들이 새롭게 느끼는 분위기다.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파친코'는 한국의 7개 도시에서 촬영을 마친 뒤 배경 컷(plate shoots)들을 촬영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으며, 이후 캐나다 밴쿠버 로케이션을 시작했다. 밴쿠버에서는 80년대 뉴욕을 재현했으며, 1923년 관동대지진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두 대륙에 구현된 '미러 세트'(mirrored set) 절반을 스튜디오에 지었다.
이민호는 "큰 틀은 다르지 않았지만, 디테일과 스케일에 놀랐다. 캐나다에 마련된 세트장에 부산 영도시장을 재현했는데 매일 아침 2~3톤 트럭으로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실어와 세팅했다"고 전했다.
'오징어게임'으로 미국배우조합상(SAG)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정호연은 '그래비티' '로마' 등을 연출한 할리우드 거장 알폰소 쿠아론과 손 잡았다.
그는 애플TV플러스 새 시리즈 '디스클레이머'에 킴(Kim) 역할로 캐스팅 돼 케이트 블란쳇, 케빈 클라인의 상대역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킴은 상사 캐서린의 조수로, 똑똑하고 활기차며 야망 있는 여성. 프로페셔널과 자신감 사이에서 언제든 기회가 오면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 무대에 올라 멋지게 시상을 마친 배우 이병헌은 미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그는 한국계 미국 작가 모렌 구가 쓴 동명의 청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아이 빌리브 인 어 싱 콜드 러브'(I Believe In A Thing Called Love)의 제작을 맡았으며 주인공 10대 여성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것을 놓고 논의 중이다. 영화는 남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의 법칙을 이용하는 10대 고등학생 데시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양질의 작품들이 해외에서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왔고, 최근 몇 년 간 큰 성과를 거뒀다. 이제 한국 영화를 비롯해 국내에서 제작되는 콘텐츠의 완성도가 높고 재미있다는 점을 모두가 안다"고 말했다.
이어 "K-콘텐츠는 일시적 열풍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해외 유명 제작진, 배우도 국내 창작진·연기자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꽤 전해오고 있다. 이제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건 옛말이 됐다. 국경을 허문 유연한 '협업' 방식이 새로운 제작 형태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