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충격적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언론 투어에 나서지만,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은 혜성충돌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혜성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32조 달러의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억만장자 피터 이셰웰(마크 라일런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해 열변을 토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혜성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6개월. 과연 인류는 혜성 충돌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담 맥케이 감독은 ‘바이스’(2018)와 ‘돈룩업’에서 미국 대통령의 반지성주의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바이스’는 딕 체니 부통령(크리스찬 베일)이 멍청한 조지 W. 부시(샘 록웰)를 농락하며 미국의 실권을 거머쥐는 과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베트남전 징집을 다섯 차례나 연기한 끝에 병역을 피했던 딕 체니는 훗날 대량살상무기 증거도 없이 이라크 침공을 기획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핼리버튼이라는 회사가 이라크 유정 복구권을 가져간 것은 나중에 알려졌다. 그는 “당신들은 (투표로) 나를 선택했고, 나는 당신들의 요구대로 행한 것일 뿐”이라고 뻔뻔하게 말했다. 선거로 권력을 넘긴 순간, 뒷감당은 오로지 국민 몫이다. 영화 에필로그에서 진보와 보수의 시민이 입씨름을 벌인다. 진보측 시민이 “댁이 뽑은 오렌지 대가리(트럼프)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지”라고 말하자, 보수측 시민은 “트럼프는 미국의 보물이야”라고 답한다.
‘돈룩업’은 마치 ‘바이스’의 에필로그에서 이어지는 영화로 보인다. ‘돈룩업’에서 올리언 대통령은 누가 보더라도 성별만 바꾼 트럼프로 설정돼있다. 지구환경에는 무지하고, 기업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인물이다. 그러니까, ‘돈룩업’은 오렌지 대가리가 미국을 넘어 지구 자체를 파괴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지난 40년 동안 기후 변화에 의해 야기된 실존적 위협에 직면하지 못한 인류의 무능함에 대한 우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핵심은 올리언 대통령이다. 혜성이 지구를 파괴시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다급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혜성에 천문학적 가치의 자원이 있다는 사업가의 말을 믿고 엉뚱한 전략을 펼친다. 물질주의와 실용주의에 빠져 지성을 경멸하는 미국인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과학자와 지성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않는 현상은 미국의 오랜 병폐다.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64년 퓰리처상 수상작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미국을 움직여왔는지를 지적한다. 소설가 장정일은 이 책을 읽고 “반지성주의는 미국 청교도 문화에 타고난 평등주의와 실용주의, 개척(전쟁) 문화와 기업 문화가 합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극화 흐름 속에 반지성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신자유주의 정부에 더욱 협조적이면서, 소수자·노동조합·외국인에 적대적인 자세는 어느 한 국가의 일만이 아니다. 반지성주의의 확산은 비판적 사유를 마비시킨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느라 공공선의 가치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파괴되건 말건,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이익만 대변하는 현실에서 국민은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올려다 보지 마. 돈룩업) 혜성과 충돌해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미국만의 문제일까.
[사진 = 넷플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