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유럽 영화계, 우크라이나 침공한 러시아 보이콧 움직임
입력 : 2022.03.08 17:45
할리우드와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영화계에 러시아 보이콧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영화진흥위원회가 8일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 후 우크라이나 영화아카데미가 러시아 시네마에 대한 국제적인 보이콧을 요청하면서 영화계가 응답하고 나선 것이다.
칸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스영화제가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유럽 영화계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도 잇따라 조치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러시아 박스오피스는 글로벌 영화 티켓 판매량의 2.8%를 차지하며 총 6억 달러(약 7200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러시아에 신작을 내놓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에 연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정당한 이유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비극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위기를 고려해 러시아에서 영화 개봉을 중단한다”며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러시아 개봉 계획을 철회했다. 또한 NGO 단체들과 협력해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긴급 구호품과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유니버설픽쳐스 역시 지난 1일 발표한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응해 러시아에서 예정된 신작 개봉 일정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오는 10일 러시아에서 개봉할 예정이었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벨파스트>의 개봉 일정을 중단한 것이다. 파라마운트도 “신작 <로스트 시티>와 <슈퍼 소닉 2>를 포함해 러시아에서 곧 개봉할 예정이었던 영화의 개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러시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인 톰 홀랜드 주연의 액션 영화 <언차티드>를 배급한 소니픽쳐스 역시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개봉 예정이었던 마블의 안티 슈퍼 히어로물 <모비우스>를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
워너브라더스는 개봉 예정작 <더 배트맨>을 러시아 극장에 걸지 않기로 했다. <더 배트맨>은 워너브라더스의 올해 가장 큰 기대작 중 한 편으로 러시아에서 이미 20만 달러(약 2억 4,000만 원) 분량의 티켓이 판매된 상태다.
월트 디즈니와 20세기 스튜디오의 <나일 강의 죽음>, 소니의 <언차티트>, MGM의 <시라노> 등 러시아에서 이미 개봉한 신작들은 라이선스 기간이 끝날 때까지 상영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도 보이콧에 동참했다. 넷플릭스는 러시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현지 콘텐츠 수급을 중단했다. 촬영을 진행 중이던 다샤 주크 감독의 범죄 스릴러 시리즈를 포함해 총 4편의 예정된 현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일정이 중단됐다. 또 넷플릭스는 하루 이용자수 10만 명을 웃도는 콘텐츠 플랫폼은 러시아 국영 채널 콘텐츠 20개를 의무적으로 서비스해야 한다는 현지 지침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했다.
주요 영화제도 우크라이나 영화 아카데미의 요청에 응답하고 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오는 5월 예정된 제75회 칸국제영화제는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 칸국제영화제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러시아 공식 사절단을 환영하거나 러시아 정부와 연관된 사람의 참석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버라이어티는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영화감독들이 칸국제영화제에 참여하는 가능성은 열어놓았으나 이들의 영화가 경쟁작을 비롯한 주요 부문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출신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와 <레토>로 2년 연속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러시아 사회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그는 현재 국가 기금 사취 혐의로 가택 연금 조치에 처해 있는데 버라이어티는 그의 신작 <차이콥스키의 아내>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 영화상을 운영하는 유럽영화아카데미(EFA)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을 강력히 비난한다”며 올해 유럽 영화상 시상식에서 러시아 영화를 제외시킬 것이며, 보이콧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감독인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러시아 감독들이 이 미친 전쟁에 맞서고 있다”며 “그들 역시 희생자”라고 전하고 EFA의 회원 자격을 포기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영화제는 올해 선보일 예정이었던 두 편의 러시아 영화, 키릴 소콜로프 감독의 <노 백(No Back)>과 라도 크바타냐의 <더 익스큐션(The Execution)> 상영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칸국제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게 연대의 뜻을 보냈다.
러시아 영화 상영 자체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쟁을 다룬 영화 <리플렉션>을 우크라이나와 연대의 의미로 로마, 밀라노, 베니스 등지에서 무료 상영할 계획이다. 오는 8월 예정된 스위스의 로카르노영화제는 러시아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현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빌려 보이콧의 의미를 전했다. 러시아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박스오피스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 <언차티드>와 지난해 러시아에서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모두 할리우드 영화다.
‘NPR’에 따르면 한 러시아 영화평론가는 극장가의 보이콧이 러시아 영화산업에 “파멸적”이며 나아가 “종말론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러시아 영화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러시아 관객들은 해적판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영화 배급사 키놀리페 CEO인 영화 제작자 일리아 스비들러는 러시아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70% 이상이 할리우드 영화라며, 박스오피스 수익이 러시아 군사행동에 자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보이콧은 그걸 차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극장에 남은 건 아주 적은 수의 독립영화와 러시아 영화뿐이라며 불매운동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좋은 재정적 도구”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화관 역시 현재 문을 닫았으며, 일부 영화 스튜디오는 피난처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할리우드 대형 영화들이 모두 개봉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현실을 실감한다”고 강조했다. 스크린데일에 따르면 러시아 영화관은 개인이 소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 정권은 상당한 수의 미디어 플랫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