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기… OTT 업계 ‘130조 출혈경쟁’
흥행작 안 나오면 가입자 이탈
한 달에 10% 이상이 구독 취소
여기저기 갈아타는 ‘메뚜기’ 많아
‘538만→507만→477만명→528만명’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넷플릭스의 국내 유료 구독자 수 변화다. 작년 9월 선보인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10월 최고치를 찍었던 구독자 수가 곧바로 월 30만명씩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리막을 걷던 유료 결제자 수는 올 1월 528만명으로 다시 반등했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올 초 공개한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효과로 본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쉬지 않고 투자를 이어가며 흥행작을 꾸준히 내놓지 않으면, 이용자들이 언제든 이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넷플릭스·디즈니·애플 등 OTT 업체들의 경쟁을 ‘스트리밍 전쟁’으로 표현하며, “이 전쟁의 최종 승자가 돼도 남는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치열한 경쟁 속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 업체가 천문학적인 콘텐츠 제작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가 되면서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좌 없는 왕좌게임
기존의 케이블TV를 비롯한 통신 비즈니스는 막대한 망(網) 투자를 한 뒤 네트워크를 토대로 차근차근 수익을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OTT는 경쟁이 심화하면서 갈수록 투자비가 커져 수익은 박해지고, 투자를 멈추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왕관 없는 왕좌 게임’인 셈이다.
지난해 OTT 업체들은 앞다퉈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디즈니플러스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비롯해 8국에 새로 진출하며 한국 제작진과 배우를 고용한 오리지널 작품 7편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다섯편이 순차적으로 공개됐지만 디즈니의 한국 내 성적은 거꾸로 가고 있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작년 11월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주간 활성 이용자는 123만명이었지만, 2월 중순에는 90만명대로 떨어졌다. 뚜렷한 화제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상위 8개 미디어 기업이 올해 OTT 사업에 투자하는 자금은 최소 1150억달러(약 136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3년 전만 해도 디즈니플러스는 2024년 콘텐츠 투자 목표를 20억달러로 잡았는데, 최근 90억달러 이상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자체 제작 콘텐츠 확보 경쟁이 붙으면서 콘텐츠 생산에 드는 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 콘텐츠를 만든다고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OTT가 늘어나면서 보고 싶은 콘텐츠를 찾아 구독 신청한 뒤 바로 끊고 다른 OTT에 가입하는 ‘메뚜기’ 구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애플 티비플러스의 경우, 매달 이용자의 10% 이상이 구독을 취소하고 있다. 하나의 계정을 편법으로 여러 명이 공유해서 보는 문화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국내 OTT 업계는 적자 속 출혈경쟁
현재 1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OTT 시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수익을 내고 있는 업체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투자액만 늘어나고 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 3사는 웨이브에 2025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고, CJ ENM의 티빙은 2025년까지 5조원, KT 시즌은 3년간 4000억원 이상을 콘텐츠 확보에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점유율 변동은 거의 없다. 지난해 9월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47%였고, 웨이브는 19%, 티빙 14%, 시즌 8%로 국내 OTT 회사들의 점유율은 전년에 비해 1~2%포인트 오르거나 떨어졌다.
국내 OTT 업체들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웨이브와 티빙은 각각 동남아·북미와 일본·대만 진출 계획을 세웠고, 왓차는 음악과 웹툰을 추가하며 구독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외 OTT 업체들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과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OTT 업계는 지난해 유튜브가 신규 구독자 수와 매출액 부문에서 처음으로 OTT 업계 1위인 넷플릭스를 추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유튜브는 전 세계 누구나 영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면서 “광고 기반의 무료 서비스가 기본 비즈니스 모델이어서 유료 서비스인 OTT 입장에서는 경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