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칭Pick] 천진한 전직 나치 소년과 함께 춤을, ‘조조래빗’
2월 셋째 주말 OTT 추천 신작 #주말에뭐볼까 #오늘뭐볼까 #고민될땐_Watching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속 화제의 콘텐츠를 발굴, 해설·소개하는 조선일보 ‘왓칭’!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www.chosun.com/watching)
조선일보 ‘왓칭’의 2월 셋째 주말 추천 신작은 ①조조래빗 ②스물다섯 스물하나 ③애나 만들기 ④모럴 센스입니다.
◇조조 래빗
10세 소년의 눈을 통해 히틀러와 나치,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풍자한 블랙코미디. 크리스틴 뢰넨스의 ‘갇힌 하늘(Caging Skies)’이 원작이다. 제92회(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을 수상했고, 당시 작품, 편집, 의상, 미술, 여우주연, 조연 부문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 국내 OTT 매체 중에선 디즈니 플러스가 새로 독점 공개했다.
배경은 2차세계대전 말기의 독일. 전쟁터에 나간 아빠 대신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지내던 10세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나치를 동경한다. 주말마다 전시상황 훈련놀이를 하는 나치 청소년단 활동에도 참여하지만 돌아오는 건 ‘겁쟁이 토끼’라는 놀림 뿐. 설상가상 사고로 크게 다쳐 집 안에서만 지내게 된다. 그런 조조를 위로하는 건 늘 일상을 함께 하는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우연히 집 안의 벽 속에 숨어든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발견한다. 이 소녀는 왜 우리 집에 숨어 있고, 어떤 일을 겪은 걸까? 새롭게 발견한 현실 속 친구와의 교류로 조조는 점차 상상 속 친구 히틀러, 나치에 대한 믿음과 가치관이 깨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아이까지 세뇌시켜 배신자를 처단케 교육하는 나치의 만행과 전쟁의 참상. 영화는 무겁기 그지 없는 주제들을 다루지만, 그를 풀어내는 방식 만큼은 재기발랄하다. 배경이 된 시대는 전쟁 중으로 한 발자국 바깥에선 집단 학살이 벌어졌을텐데 조조와 엘사가 웃음을 주고 받는 집 안 만큼은 아무 걱정 없고 따스하기만 하다. 집안 곳곳 배치한 가정적인 인테리어와 엄마 로지의 화려한 옷차림은 그런 분위기가 의도적인 연출임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연출은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타이카는 앞서 애니메이션 ‘모아나’, 특히 마블 영화 ‘토르:라그나로크’ 등 ‘히어로물’ 감독으로 유명해진 인물. 이 영화 촬영 당시엔 새 ‘스타워즈’ 시리즈 드라마 ‘만달로리안’과 차기작 영화의 감독으로 점찍혔었다.
이 영화는 그런 그가 처음으로 손을 댄 전쟁 주제지만, 기존의 전쟁 영화의 클리셰를 철저히 뒤엎는다. 군인이나 정부가 아닌 평범한 10대 소년 소녀가 주인공인데, 이들을 참혹하거나 비극적으로 죽여 울음을 자아내진 않는다. 그럼에도 ‘10세 순진무구한 인종차별주의자’란 설정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묵직하게 후려친다.
이같은 연출의 힌트는 직접 각본도 쓰고, 주연인 ‘히틀러’로 출연한 타이카가 “이 영화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밝힌 데 있다. 어머니가 유대인, 아버지가 마오리족 혈통인 그는 2016년 다큐 영화 ‘포이 에: 시대를 넘은 우리 노래 이야기’에서 마우리족의 이야기를 다뤘었다. 그만큼 이 영화 역시 타이카에게는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닌 가족의 ‘역사’와 ‘배제’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영화 속 전쟁의 끝맺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전직 나치’ 소년 조조와 유대인 소년 엘사가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즈(Heroes)’에 맞춰 춤을 춘다. 독일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 그 앞에 동서독 젊은이를 한데 모아 콘서트를 열고, 춤을 추게 했던 글램록 대부의 명곡이다. 이들의 춤 앞에 영화는 릴케의 시 한 구절을 던진다.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경험하라. 오직 걸어가기만 하라.”
개요 미국 l 블랙코미디, 드라마, 전쟁 l 2019 l 1시간 48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평점 IMDb⭐7.9/10, 로튼토마토?80%
◇스물다섯 스물하나
1998년 IMF 금융위기로 꿈을 빼앗긴 청춘들이 함께 아파하고, 성장하는 청량로맨스물.
여주인공은 금융위기로 펜싱팀이 해체됐지만 열정과 패기를 무기로 다시 일어서려는 펜싱 꿈나무 ‘나희도’(배우 김태리). 상대역은 하루 아침에 IMF로 풍비박산난 집안의 억척스런 장남이자 시대상을 쫓는 기자 ‘백이진(남주혁)’이다. 이밖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시절 인플루언서인 ‘문지웅(최현욱), 외유내강형 펜싱 국가대표 ‘고유림(보나), 전교 1등에 반장이지만 가슴 속 반항심이 가득한 ‘지승완(이주명)’까지. 그 시절 시대상을 대변하는 각종 청년 주조연들이 등장한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트렌디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정지현 감독과 권도은 작가가 다시 뭉쳤다. ‘옛 시절 추억이 방울방울’이란 소재를 흥행코드로 자리매김했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전철을 밟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작품.
개요 한국 l 드라마 l 2022 l 16부작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
2018년 자신을 6000만달러(약 718억원)를 상속받은 독일 재벌가 딸 행세로 뉴욕 인사들을 속인 사기꾼 ‘애나 소로킨’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실화 기반 드라마로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됐었다.
시작은 잡지 ‘맨하탄’에서 출발한다. 과거 ‘가짜 기사’ 사건으로 불명예를 얻게 된 여기자 비비안 켄트(배우 애나 클럼스키)는 사기죄로 구속기소된 독일 상속녀 애나(줄리아 가너)의 사건에 무언가 있음을 확신하고 뛰어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애나가 어떻게 뉴욕 예술계 인사와 월스트리트 투자회사 포트리스까지 현란한 사기술로 속여 먹었는지가 속속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한다.
실제 현실 속 애나의 사기 행각을 처음 세간에 알렸던 것도 2018년 뉴욕 매거진 기자 제시카 프레슬러의 ‘애나 델비는 어떻게 뉴욕 파티 피플을 속여먹었나’란 기사였다. 드라마는 애나의 화려한 사기술도 세밀하게 재연해 낸다. “신탁계좌에 6000만 달러가 있다”는 말 하나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결국 유명인 사이 “애나 몰라?”란 보증수표와 같은 말을 얻어내며 수많은 투자금을 땡기고, 이를 위한 발판 무대로 유명 호텔(11 하워드 호텔)을 활용했던 방식들을 충실히 따라간다.
넷플릭스는 이야기의 실제 모델 ‘애나 소로킨’에게 실화를 다루는 조건으로 32만달러(약 3억원)를 지불했다. 미국 정부는 애나 사건의 피해자구제 명목으로 이 중 절반 가량을 애나가 쓰지 못 하도록 동결했다고 한다. 현재 진행형의 사기사건을 생생하게 목격시켜주는 작품.
개요 미국 l 범죄, 실화 드라마 l 2022 l 총 9회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평점 IMDb⭐6.8/10, 로튼토마토?62%,
◇모럴 센스
얼굴도, 업무능력도 완벽하지만 비밀스러운 ‘BDSM’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 지후(배우 이준영), 그의 취향을 혼자만 알게 된 유능한 직장 동료 ‘지우’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웹툰 ‘6년째 연애 중’, ‘좋아해줘’ 등 로맨틱 코미디를 주로 해온 박현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BDSM이란 결박(Bondage)과 훈육(Discipline), SM(가학적 사디즘-피학적 마조히즘)에 빠진 성적 취향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사실 생소하고, 낯선 소재다. 2015년 초대형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도 개봉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영화와 원작은 해외에서도 엄마들의 ‘포르노’와 ‘엔돌핀’이란 극단적인 호평과 비평을 오갔고, 모방 성범죄 논란까지 불거졌다. 결국 국내에서 또한 ‘시기상조인 소재’란 비평이 잇따랐었다.
그만큼 모럴 센스는 영화의 상당 부분 내용이 ‘BDSM 소개서’의 형태를 따른다. 남녀 주연배우가 보여주는 BDSM 플레이 과정을 아주 친절하고 예쁘기만 한 장면들로 나열하기도 하고, 이들이 즐기는 ‘플레이’ 속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낯선 소재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인지한 연출이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전작의 요소를 그대로 차용해왔다. 피학적 성향을 지닌 남자주인공은 관련 경험을 다수 해왔지만, 가학적 성향을 지닌 여주인공은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해보는 신세계다. 그만큼 시작부터 혼란을 겪지만 남주인공과 계약서를 쓰고 연애 아닌 연애를 시작하고, 점차 성적 본능과 사랑에 눈을 떠간다는 설정. S와 M의 성별이 뒤바뀌긴 했지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봤던 연애 과정과 유사하다.
반면 연애 감정은 앞선 작품에 비해 지나치게 예쁘기만 해서, 현실 속 음지에 머물렀던 BDSM의 소재가 반짝 영화 속에서만 양지에 머문다. ‘파격적인’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저 남녀 주인공의 소개란에 성적취향 단어를 제거하면 여타 로맨스 영화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만큼 깊이 있게 해당 소재와 성향자들의 고뇌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입이 아닌, 자체적으로 이런 타이틀을 내세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신작 리스트에 넣었다. ‘넷플릭스가 아니라면 투자 못 받았을 소재’란 평론가들의 평처럼 이런 영화가 앞으로도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분기점으로 한번쯤 살펴보고 싶다면 권한다. 앞서 말했듯이 거부감이 들기에는 이색 소재가 마치 해물라면 속 첨가된 해물향처럼 쓰였다.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에 나쁘진 않다.
개요 한국 l 로맨스 드라마 l 2022 l 1시간 58분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