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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약함을 인정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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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2.02.14 08:53 3,37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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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을 인정하다
 2022.02.13

 

지난해 12월17일 오전 일본 오사카의 8층짜리 건물 4층에 있는 병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25명이 숨졌다. 사건 다음날 건물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오사카/AFP 연합뉴스
지난해 12월17일 오전 일본 오사카의 8층짜리 건물 4층에 있는 병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25명이 숨졌다. 사건 다음날 건물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오사카/AFP 연합뉴스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요즘 일본에서 인생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상대로 살인이나 상해를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오사카의 심리치료 병원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해 의사와 환자 등 25명이 숨지고 범인도 사망했다. 범인의 휴대폰에는 “죽을 때라도 주목받고 싶다”라는 말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엔 의대 진학을 원하던 고등학생이 성적이 오르지 않자, 입학시험 당일 도쿄대학 앞에서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수험생을 칼로 찌르는 일이 있었다. 또 같은 달 말에는 어머니가 숨지자 슬픔에 빠진 아들이 어머니를 진찰했던 의사에게 앙심을 품고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다.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일본 사회에서 부조리한 살인·상해 사건이 계속 일어나 충격적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좌절을 겪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원한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이런 돌발적이고 난폭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물론 극소수다. 하지만 이런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일본 사회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비영리법인(NPO)에서 활동하는 와타나베 다쓰야는 젊은 사람들의 ‘묻지마 살인·상해’ 사건에 대해 <마이니치신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법무성의 조사를 보면, 이런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에 이전부터 마약(각성제 15% 포함)이나 폭력 등의 범죄행위를 해왔던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범죄자 중 23%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경험했고, 44%는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중의 절반 이상은 사건이 발생하기 반년 정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범죄는 용서될 수 없다. 그러나 사형을 당하고 싶다며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 벌칙의 강화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와타나베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성과 함께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심리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이해받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형태로 성장하고 자립한다. 가정·학교·직장 등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불우하면 누구라도 고립되고 나약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지금 일본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가려는 힘을 잃게 만들고 있다.

 

이런 사회의 기능 부전은 한·일 양국에서 공통된 문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동아시아 근대화의 우등생이었던 두 나라는 저출산과 인구 감소, 고용 불안, 빈곤, 시험 경쟁 등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일 관계의 쟁점을 보면, 서로 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일본이 더 강하고 우수하다고 우기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30년간 경제성장 정체에다, 평균임금의 경우 이미 한국에 추월당했기 때문에 ‘강하고 우수하다’는 자만심은 과거를 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형이 아니라 ‘강했고 우수했다’라고 우기고 있다. 최근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일본의 행동이 대표적 사례다.

 

일본에서는 과거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자국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역사전’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원래 난징대학살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신구 총리들이 외교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전 일본은 대단했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라는 등의 주장은 지금을 사는 젊은이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사회의 단절과 격차의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한·일 양국, 특히 지식인들은 서로 약함을 인정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솔직하게 대화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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