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홀린 K콘텐트 ‘배고픈 호황’…넷플릭스가 수익·인재 ‘폭풍흡입’
지난해 ‘오징어 게임’과 ‘지옥’, 올해 ‘지금 우리 학교는’.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강타한 ‘코리안 메이드’ 드라마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전액 지원한 오리지널 드라마로, 전 세계 안방 시장에서 ‘K영상’의 가치를 높였다. 숙제도 남겼다. 수익 독식 문제다. 넷플릭스 등이 제작비를 충분히 지급한다지만, 흥행으로 수익이 급증해도 한국 제작사에 대한 ‘성과급’은 없다시피 하다. 업계에서는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를 해외 OTT에 넘겨주는 계약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이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로도 번졌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임오경 의원은 “‘오징어 게임’에 200억원을 지원한 넷플릭스는 3주 만에 시가총액이 28조원 늘었다”고 지적했다.
K드라마 성공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수익 독식 논란이나 IP 넘겨주기 계약은 짚어야 한다. 바람직한 시장질서는 어떤 것일까. 현장 목소리를 두루 들었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늘어날 전망이다. 2016년 국내 상륙 이후 지금까지 영화·드라마 31편의 제작을 지원했다. 2017년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 2019년 ‘킹덤’, 지난해 ‘고요의 바다’ 등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투자 총액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다. 지난해만 5500억원이다. 미국 외에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시장이 한국이다. 넷플릭스 한국 사업 손익계산서는 알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함구한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트를 총괄하는 강동한 VP(Vice President)는 지난달 “지난해 15편을 만들었고, 올해 25편을 만든다”고 밝혔다. 한국 제작사에 적정한 추가 수익과 저작권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 “매일매일 고민한다”고 했다. 넷플릭스 사무실 밖에는 드라마 프로듀서들이 줄을 서는 상황이라고 한다. 제작비가 두툼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발 ‘돈의 온기’는 퍼지고 있다. 영화 ‘부산행’, 드라마 ‘지옥’을 만든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덕분에) 제작 환경은 확실히 점점 나아진다. 드라마 예산도 넷플릭스가 크게 높여 놓은 상태”라고 했다. 2016년 16부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편당 제작비가 7억5000만원 정도였다. 9부작 ‘오징어 게임’은 편당 20억원이 넘는다.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한국저작권위원회 부위원장)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유연한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고, 국내 감독·배우의 해외 지명도를 높이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넷플릭스가 드라마 IP를 확보해 2·3차 저작물 수익까지 ‘싹쓸이’한다는 국내의 우려는 모든 드라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드라마 ‘지옥’은 원작이 웹툰이다.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가 ‘지옥’의 만화 원작 IP를 갖지는 않는다. 원작 IP의 영상화 권리를 가졌다. 그래서 ‘지옥’의 스핀오프 소설을 낸다면 넷플릭스와 관계없는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작사가 넷플릭스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협상하는 현실은 당분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선행 계약의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는 데다, 협상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저 수익률 보장이나 창작 기여도에 따른 최소한의 저작권 보유 기준 등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현재는 넷플릭스와 콘텐트 계약을 맺을 때 수익분배, IP 소유권에 대해 정해진 기준이 없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헐값으로라도 작품을 만들려는 제작사도 보호할 수 있는 룰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임상혁 변호사 역시 “제작사와 OTT 간 계약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계약 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성민 방송통신대 교수는 “넷플릭스와 계약 경험이 있는 대기업이 동반자 마음으로 노하우를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메가박스, CJ CGV, 롯데시네마 등 극장 업계 관계자들은 주요 정당 관계자들을 만났다. “코로나19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며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넷플릭스 발 호황과 상반되는 현상이다. 영화 ‘기생충’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최근 영화계의 어려움을 “K콘텐트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기생충’으로는 한국 영화계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웬만한 작품이 흥행해도 그 수혜가 기획자나 창작자에게 가기 힘들다 보니 새로운 창작자가 사라지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국내 영화 관객 수는 코로나19 이전의 30% 수준이었다. 제작을 마친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다 보니 신임 감독의 ‘입봉’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CJ ENM,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등 주요 투자·배급사의 개봉 예정작 49편 가운데 신인 감독 데뷔작은 9편뿐이다. 2020년에는 신인 감독 영화가 전체 50편 가운데 17편(34%)이었다. 이는 다양성 실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인 감독 이상근의 2019년 영화 ‘엑시트’는 색다른 재난 소재로 관객 942만명을 모았다. 이정세 메가박스중앙·스튜디오M 본부장도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2016)이나 ‘리틀 포레스트’(2018)처럼 ‘좋은 이야기’의 영화화를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