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벗기고…선넘은 '지금 우리 학교는' 의미없는 1위
최종수정 2022.02.08 07:30 기사입력 2022.02.08 07:30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는 계속해서 시청자를 붙들어야 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음 회를 계속 시청하게 하는 자극적 엔딩과 전개는 필수다. 최근 제작돼 공개된 국내 콘텐츠도 이러한 특성을 보인다. 유혈이 낭자하고 살색은 필수다. 추격하고 때리고 맞고 울고. 자극적인 요소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버무리는데, '좀비'만 한 게 없다.
넷플릭스가 2019년 처음으로 제작해 선보인 K-콘텐츠는 조선시대에 창궐한 좀비 이야기를 다룬 '킹덤'이다. '킹덤'은 해외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국내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달리는 K-좀비는 해외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주목 받았다.
지난해 가을, '오징어게임'으로 K-콘텐츠의 흥행을 톡톡히 맛본 넷플릭스는 3년 만에 다시 K-좀비 카드를 꺼냈다. 이번엔 고등학교로 무대를 옮겼다.
넷플릭스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을 공개했다. 작품은 글로벌 톱 10 TV(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하며 관심을 받았다. 한국을 포함해 독일, 프랑스, 터키,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25개국에서 1위, 호주, 벨기에, 체코, 인도 등 20개국에서 2위를 차지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된 학교에 고립되어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함께 손잡고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동근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 '다모'·'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완벽한 타인'을 만든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박지후·윤찬영·조이현·로몬·이유미 등 신예 배우들이 주축을 이뤘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좀비'(Zombie)는 살아있는 시체, 살아있지만 죽은 자들을 말한다. 서양권 작품 속 좀비는 빛이나 소리에 반응하지만 움직임이 더딘 반면, '부산행'·'킹덤' 등 국내 작품에서는 빠르고 민첩하다. 이는 K-좀비라 불리며 하나의 장르로 사랑 받았다.
교실 복도를 질주하는 교복 입은 좀비는 새롭다. K-콘텐츠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지금, 한류라는 단어가 무색하지만, 앞서 한류를 이끈 K-드라마 속 고등학생의 모습은 해외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끈 바. 웹툰에 있는 설정이긴 하나 좀비와 고교생을 결합한 캐릭터가 흥미를 유발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해외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OTT 콘텐츠의 숙제와 한계를 드러냈다. 좀비의 태생적 배경과 닿아있는 학교폭력 문제를 그리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고스란히 그려지며 '불행의 포르노'라는 비판이 이어지면서다. 10대 여고생의 교복을 벗기고 폭력을 가하면서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장면을 선정적으로 연출한 것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학교폭력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연출자의 말과 달리, 작품은 학교폭력을 상업적으로 소비해버린다. 연출자는 실제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최근 여러 범죄를 통해 경각심 고취가 절실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았다. 범죄 방식을 상세히 묘사하고 피해자 캐릭터를 통해 성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다양하게 행해지는 학교 폭력을 그리면서도 이를 통해 무얼 말하려는지 명확하지 않다.
개연성도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구축되어야 할 캐릭터간 연결과 갈등을 생략하고 갑자기 일부 캐릭터가 사라지는 등 허술하다. 좀비 장르물은 탄탄한 세계관이 핵심이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가 시즌10 넘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장기적으로 시리즈를 발전시키려면 좀비의 특성이나 진화를 묘사하는데 허점을 노출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반만 좀비가 된 '절비'를 등장시키면서도 절비간 적응증을 다르게 그린다. 장르 특성상 큰 재미를 주는 포인트이기에 후루룩 생략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부분이다. 갑자기 그려지는 멜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 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모친을 그리는 방식도 자극적이다. 고교생들이 생존하는 과정에서 좀비가 된 친구의 모친을 구타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장면과, 부모 관련 욕설이 잦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각에서는 유독 여성의 신체에 상해를 가하는 장면이 구체적이고 반복돼 보기 불편했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잔혹하고 선정적이며 혐오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바. 10대의 시청이 불가하다고는 하나, '오징어게임'이 그러했던 것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는 작품을 시청한 아동 청소년들의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 제작 관계자는 "OTT 콘텐츠 특성상 자극적인 장면 묘사로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들면서 시청자를 붙들 수 있겠지만, 시청 횟수가 많다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에서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하나 최근 선보인 작품에서 흥행 여부와 별개로 윤리적인 문제가 연이어 드러나고, 개연성도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 보다, 흥행을 조ㅊ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며 "전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를 지속해서 발전시키기 위해 창작진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폭행, 10대 임신 장면에 관해 이재규 감독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넣었지만, 과하게 전달되었다면 연출자, 기획자로서 죄송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