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막강 '좀비 공장'이 됐나
학교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설 연휴 나흘 연속 넷플릭스 세계 1위
54개국서 정상... "한국은 좀비물에 세계 최강"
세월호 사건의 흉터 복기... 미국선 "총기 사고 그림자 보여"
'필터버블'로 강화하는 좀비사회
'멸공 논란' '안산 페미니스트 분쟁' 등 증후
입력
2022.02.03 04:30
부산행 KTX('부산행'·2016)를 타고 출발한 'K좀비'가 아파트('살아있다'·2020)를 거쳐 학교('지금 우리 학교는'·2022)까지 침입해 세계를 장악했다.
"'워킹데드'와 달라"... '오겜' 초반 시청 시간의 두 배
학교를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설 연휴 나흘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9일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에서 TV부문 1위로 우뚝 올라서더니, 이달 2일 기준 독일 브라질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54개국에서 정상을 휩쓸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후 사흘 만에 세계에서 1억 2,479만 시간 재생됐다. '오징어 게임'이 같은 기간 6,319만 시간, '지옥'은 4,348만 시간으로 1위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초반 반응은 역대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뜨겁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한국은 좀비물 세계 최강"이라고 평했다. '부산행'과 '킹덤' 시리즈로 입소문을 탄 K좀비가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세계 대중문화시장을 후끈 달구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폭(학교폭력)과 임대아파트에 사는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차별 등 폭력과 혐오가 만연한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을 연료 삼아 폭주한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학 입시 열기의 원조격이라 부를 수 있는 일본보다도 더욱 치열하고 강압적인 한국의 학교를 좀비가 퍼지고 생존해야 하는 장소로 활용해 우리 삶에서 익숙한 공포를 극대화했다"고 분석했다.
좀비 바이러스 발현과 확산의 중심엔 학폭이 있다. 성인도 어린이도 아닌, 존재의 불안에 태생적으로 허덕이는 고등학생은 좀비와 묘하게 포개진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본 핀란드 시청자 앙리 테르바푸로는 본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만나 "학교와 학생을 소재로 좀비물을 만들고 그 공간과 사람의 비극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완전히 새로웠다"며 "미국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는 이야기가 상투적이라 끝까지 볼 수 없었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풍자와 공포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느낌"이라고 감상을 말했다.
'노란 리본' 우리의 상처... 미국선 "학교 총기 사건 그림자"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포의 순간 대담해질 수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려는 효산고 과학교사 이병찬(김병철)의 실험실에서 학생이 실험용 쥐에 물리면서 시작된다. 좀비로 변한 학생은 다른 학생 그리고 선생님을 물고 결국 학교는 피로 물든다. 교장은 학내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정부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학생들을 버린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그렇게 세월호 사고의 흉터를 들춘다. "엄마랑 아빠는 저 구한다고 학교 앞에까지 왔는데, 경찰도 소방관도 아무도 안 왔어요. 나중에 누군가 이 영상을 보면 관계자들 꼭 처벌해주세요. 다들 우리를 버렸어, 전부 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학교는'의 공포는 한국적이다. 직장인 박진희(46)씨는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아이들하고 같이 도망다닌 느낌이 들면서 학생들이 겪은 상실감과 연대감에 공감이 돼 마치 내가 청소년이 된 기분이었다"며 "그냥 좀비물이 아니라 아포칼립스(종말)에서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악착스럽게 몸을 던지고 머리를 짜 내는 모습이 내내 슬펐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엉망이 된 시스템으로 희생당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아찔하고, 학생 좀비들이 들썩이는 군중 이미지는 꼭 세월호 사고가 벌어진 진도 바다 같아 보인다"고 했다. 미국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건과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 봤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K좀비가 지닌 ①사회 풍자와 ②재난 상황에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대응 ③빠른 몸동작의 특징을 극대화했다. 극 중 청산(윤찬영)과 온조(박지후), 이수혁(로몬), 반장 남라(조이현) 등은 대걸레 자루를 들고 좀비와 싸우고 의자와 책상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친다. 도서관에서 좀비들을 피해 청산과 로몬이 책장 위를 뛰어다니는 장면은 매우 역동적이다. 말레이시아 시청자(@TerryBa***)는 "미국 좀비물은 총으로 좀비의 머리를 날리는 대신 그 치열한 생존의 방법에 대해선 등한시한다"며 "화장실 문제를 두고 살아 남은 아이들이 고민하는 모습이 재난의 현실이라 인상 깊었다"고 했다.
좀비물이라고는 하지만 내장이 드러나는 등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은 '지금 우리 학교는'의 뇌관이다. 좀비물에 임신한 여고생을 등장시키고선 서사를 주지 않고 위급 상황만 보여줘 여성 캐릭터를 함부로 썼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남의 목소리 듣지 않고 물어뜯는 '좀비사회'
요즘 한국은 '좀비 공장'이다. 최근 한 달 새 안방극장과 OTT에 '해피니스'(tvN)와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신작 좀비 드라마가 잇따라 공개됐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유행이다. 한국에서 최근 줄줄이 '좀비'들이 만들어지는 데는 좀비적 특성이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는 국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좀비는 ①소통하지 못해 상대를 물어뜯기만 하고 ②전염 여부에 따라 적과 아군, 극단적 이분법으로 편을 가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촉발한 '멸공' 논란과 쇼트커트 머리를 한 안산 양궁 국가대표를 향한 페미니스트 논쟁 등은 좀비 사회의 대표적 증후들이다.
좀비사회는 맹목적 신뢰와 혐오로 굴러간다. 그 땔감은 디지털 시대 과잉 연결의 부작용인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다. 필터버블은 개인 성향의 맞춤 정보(알고리즘 추천)로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필터버블에 갇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아예 듣지 않는 일부 현대인들은 좀비의 또 다른 분신이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지금 우리 학교는'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은 "학교 폭력은 비단 학생과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회에도 집단이기주의가 있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