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데뷔작이 세계4위 올랐다, 우연히 작가된 29살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2022.01.27 16:19
업데이트 2022.01.27 16:36
올해 나이 스물아홉. 우연히 드라마 작가가 됐는데, 지상파 데뷔작이 글로벌 흥행을 했다. 지난 25일 종영한 SBS ‘그해 우리는’을 쓴 이나은(29) 작가의 이야기다. 이 작가는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긴 작품은 처음이고, 끝난 게 실감도 안난다”며 “첫 지상파 작품이라 너무 걱정을 많이 해서 무사히 끝난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 ‘연애미수’에 이은 이 작가의 세번째 작품인 ‘그해 우리는’은 시청률 5.3%(닐슨코리아 기준)로 종영했고,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 되며 글로벌 흥행도 누렸다. 넷플릭스 주간 시청시간 공식 집계에서 5주째 상승세를 보이던 이 작품은 가장 최근인 1월 17~23일 집계에서는 전세계 4위에 올랐다. 이나은 작가는 “방송 2~3주차부터 지인들이 연락이 오고, SNS로도 메시지가 와서 와서 (인기를) 실감했다”며 “어느 나라에서든 모두가 갖고 있는 청춘의 시기를 그려서 다들 공감 포인트가 있어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BS 다큐 보고 시작… "전교 꼴찌 학생 연락왔다"
‘그해 우리는’은 고등학생이던 19세에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만났던 전교 꼴찌 최웅(최우식)과 전교 1등 국연수(김다미)가 29세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2015년 EBS 다큐멘터리 ‘꼴찌가 1등처럼 살아보기’에서 착안했다. 이나은 작가는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자기 전에 ‘그 친구들은 뭐하고 살고 있을까’ 계속 생각이 나길래 이런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2020년 초 기획 단계부터 스튜디오N 김윤진 PD와 함께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그 다큐멘터리의 ‘전교 꼴찌’ 친구가 SNS로 연락이 와서, 대본집을 꼭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해 우리는’은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집중한 드라마다. 일상 속 현실적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공감대를 얻었다. 이 작가는 “기술적으로, 능력으로 되게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제가 그 나이고, 가장 많이 알고 고민하는게 청춘”이라며 “가장 현실적으로, 우리가 쓰는 언어로 전하려고 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제 경험도 녹아있어서 지인들은 ‘너무 네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힘들기도 하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이 작가가 그린 ‘최웅’과 ‘국연수’를 현실에 살려낸 최우식·김다미는 이 작가가 가장 먼저 생각한 배우들이었다. 최우식은 “시나리오를 보고, 이건 안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고 했고, 김다미는 “대본이 후루룩 후루룩 읽혔다. 악역이 없어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드라마였다”고 참가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최우식이 출연한 tvN 예능 '여름방학'을 보고 '최웅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겠다' 생각했고, 최우식과 잘 어울리는 배우로 김다미를 캐스팅했다. 이 작가는 “제가 이런 상상을 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표현된 장면이 많아서, 상상한 이상으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줬다”며 “‘이렇게 좋은 배우를 너무 일찍 만난 건 아닐까’ 두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우연히 작가, 교과서는 노희경 '그사세'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다는 이 작가는 2015년 우연히 예능 제작사에서 일하며 작가가 됐다. 예능 자막이나 카드 뉴스를 만드는 일을 하다가 1분짜리 동영상 콘텐트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2016∼2017년 ‘전지적 짝사랑 시점’이라는 웹드라마로 ‘대박’을 쳤다. 이 작가는 “이번 드라마를 보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해주는 말로는, 제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짧은 소설도 쓰고 해서 작가가 될 줄 알았다더라”고 덧붙였다.
따로 드라마 작법을 배우진 않았고,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보며 공부했다. 29세에 지상파 데뷔한 ‘젊은 작가’ 축에 속한다. 이 작가는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전개에 힘이 부족한 것 같고, 주변사람들도 불안할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앞으로 계속 성장하는 모습 보일 수 있는 건 이른 데뷔의 장점인것 같다”고 했다.
사랑할 때 쓴 일기가 재료, 꿈은 술집 사장
이 작가의 재료는 일기와 메모다. 그는 “평소엔 일기를 안 쓰는데, 사랑을 하면 그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쓰더라”며 “평소에도 슬픈 상황이나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엔 울면서도 메모장을 켜서 기록해두고, 나중에 꺼내본다”고 했다. 하루 10시간 정도 작품 구상을 하는데, 막상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은 많진 않고 사람들과 얘기하며 뜻하지 않은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했다.
이 작가의 변치 않는 꿈은 ‘그해 우리는’ 속 캐릭터로도 등장시킨 ‘술집 사장’이다. 올해 목표는 “기깔나는 차기작”이라고 했다. 그는 “작가는 멀리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별 거 없고, 현실적인 작가, 주변에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이제 청춘이지만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