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동맹’이 ‘평화’를 정권교체하고 있다
정말 오랫만에 ‘동맹(同盟)’이라는 말을 원 없이 듣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동맹이란 단어는 사실상 금기어(禁忌語)나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우리는 ‘평화’ 또는 ‘평화 프로세스’라는 말에 묻혀 살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해 그 ‘평화’의 자리에 ‘동맹’이 정권 교체를 이룬 것이다.
평화와 동맹은 결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평화는 목표이고 동맹은 그리로 가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다. 그런데 한국의 좌파는 동맹이라는 것이 남북의 평화를 그르친다고 선전해왔다. 그 동맹의 한쪽 축이 미국이고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이어서 한반도의 평화와 대치된다고 주장해왔다. 저들의 평화론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평화면 어떤 평화건 전쟁보다 낫다는 논리다.
그러나 북한이 핵 무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전쟁도, 어떤 동맹도 불사할 것이라는 것이 윤 정부의 의지다. 전 세계적으로 평화가 위협받고 군사적, 경제적 불안감이 가중될수록 각 당사자들 간의 편먹기, 편짜기 같은 연대 내지 동맹의 현상이 두드러진다. 즉 혼자서는 힘드니까 입장이 같은, 또는 가치를 공유하는 쪽끼리 힘을 합치는 것-그것이 바로 동맹의 요체다. 동맹은 전쟁 그 자체보다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로서의 기능이 더 크다.
지금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서 진정한 동맹의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제정(帝政) 러시아의 압제라는 뼈저린 경험을 갖고 있는 스웨덴은 200년, 핀란드는 75년간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군사적 중립을 선택해왔다. 그랬던 이들 두 나라가 나토 가입을 선언한 것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우크라이나에서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평화’와 중립에 매달리는 것이 자국의 안전과 독립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舊)소련에 병합됐다가 1991년 독립한 발트 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평화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푸틴과의 ‘거래’를 단호하게 배격했다. “평화는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오는 듯 했지만 우리 국민에 대한 소련의 잔혹한 탄압, 반대자의 추방과 살해 그리고 우리 문화의 말살은 여전히 계속됐다. 침략 행위가 보상받도록(pay off) 허용하는 그런 평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칼라스 총리의 말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군사적 충돌이나 전쟁 행위가 없다고 해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환경, 즉 자유, 민주, 인권,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아니 그런 것들이 탄압받고 반대자들이 투옥되고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총성 없다고 그것이 평화일 수 없다. 그런 평화는 위장된 평화다. 전쟁만 없으면 평화라는 종북 좌파의 논리는 허구적일 뿐 아니라 해악적이다.
그렇다고 동맹이 공짜는 아니다.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동맹은 한마디로 후원군을 두는 것이다. 모든 국제 관계에서 공짜는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대가로 북한의 험한(?) 대응을 예상할 수 있다. 또 중국의 그 고약한 제국주의적 협박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실물경제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는 사태가 올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좌파 정권이 동맹을 겉돌아서 ‘삶은 소대가리’말고 얻은 것이 무엇인가? 중국 신경 건드리지 않으려고 지난 5년간 그 온갖 수모를 견디고서 우리가 얻은 것은 ‘속국’ 취급 말고 무엇이 있는가? 지난 5년간 ‘평화’만을 주문(呪文)처럼 외워서 얻은 것은 북한의 기고만장뿐이다.
다행히 한·미 간의 ‘동맹’은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과거의 동맹이 약자가 강자의 등에 업히는, 그래서 때로는 하향적이고 시혜적(施惠的) 관계로 설정됐었다면 지금의 동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됐듯이 기술, 경제, 가치, 제도의 동맹이라는 수평적 구도로 가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한·미 동맹을 군사적·안보적 시각으로만 폄하해온 북한,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에도 주목받을 일이다. 이제 한·미 동맹은 미국이 베푸는 동맹이 아니라 미국도 도움을 얻어가는, 그리고 가치를 공유하는 장치로 탈바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