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의 오션월드<32>높은 지능을 가진 문어
-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 입력 : 2022-02-19 07:19:24
●글월 문(文)자가 붙은 바다 동물
넷플릭스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기자에게 정말 문어가 머리가 좋은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지 물어 오는 사람이 더러 있다. 기자는 바다 동물을 비롯한 모든 동물에는 지능과 감정이 있을 뿐 아니라 학습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이 특이한 바다 동물 이름에 ‘글월 문(文)’자를 붙여 문어(文魚)라 불렀다. 위기에서 탈출하려고 뿜어 대는 먹물이 글깨나 읽은 지식인의 상징인 먹물로 간주되는 데다 큼직한 머리까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버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문어가 먹물을 뿜어내고 있다. 먹물은 상대의 시야를 흐리게 해 효과적인 방어수단이지만,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연속해서 여러 번 먹물을 뿜어내면 문어는 기력이 빠져 탈진하고 만다. |
●문어 머리는 어디에
그런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어 등 두족류의 머리 위치다. 민둥민둥하고 둥그스름한 부위는 머리가 아닌 몸통이다. 머리는 이 둥그스름한 몸통과 발의 연결부에 있으며 그 속에 뇌가 있다. 문어의 뇌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 무척추동물 중에서 지능이 가장 높은 편이다. 동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문어는 간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로 속에 가둬 두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미로를 통과할 수 있고, 짧은 기간 이를 기억하기까지 할 수 있다. 생물 발달 계통에서 무척추동물은 어류보다 열등한 것으로 분류된다. 과학자는 무척추동물 중 예외적으로 두족류에 지능이 있는데 주목한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것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밝혀낸다면 흥미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
태국 시밀란 해역에서 만난 대형 문어. 일반 사람이 머리로 잘못 알고 있는 둥그스름한 부분은 몸통이다. |
●최후를 맞은 문어의 행동
문어는 빠르게 성장한다. 몇 개월 만에 성체로 빠르게 자라지만 번식을 위한 교미 기회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다. 이들의 짝짓기는 생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 절정의 힘을 짜내기에 치열하다. 교미 중인 문어는 쉴 새 없이 몸을 뒤틀며 체색을 변화시킨다. 수컷은 8개의 발 중 다른 발보다 가늘고 끝부분에 빨판이 없는 교접발로 외투막 속의 정자를 꺼내 암컷의 몸속으로 밀어 넣는다. 교접발이 생식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짝짓기가 끝나 새끼가 부화하고 나면 힘을 잃고 생을 마감한다. 바닷속을 다니다 보면 통발에 갇힌 문어를 흔하게 만나곤 한다. 제때 회수되는 통발이야 문어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겠지만 방치된 폐어구에 갇힌 문어를 지켜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수컷은 교접발을 그물코 밖으로 내밀어 방정하고, 암컷은 몸에 지니고 있는 수정란을 비롯한 알을 모두 쏟아낸다. 마치 자신은 죽더라도 종족은 남기겠다는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일 거다.
통발에 갇힌 문어의 애처로운 모습. 문어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수컷은 교접발을 그물코 사이로 빼내어 바닷속에 방정을 하고, 암컷은 몸에 있는 알을 모두 산란한다. 자기가 죽더라도 종족은 남기려는 본능으로 보인다. |
●문어 신의 등장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독일 수족관에 있던 점쟁이 문어 ‘파울’의 등장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파울의 예언은 경기를 하게 될 두 나라 국기가 그려진 유리 상자에 홍합을 넣고 과연 파울이 어느 쪽 홍합을 먹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방식이었다. 조별 리그에서 독일이 호주와 가나에 승리하고, 세르비아에 패할 것임을 족집게처럼 맞히고 본선에서는 잉글랜드와 맞붙은 16강과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독일의 승리를 예측하면서 독일 국민의 영웅으로까지 추앙받았다. 하지만 4강전에서 독일이 스페인에 패할 것을 예측하고 실제 독일이 패하게 되자 독일에서는 ‘파울의 저주’라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후 파울은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와 맞붙은 스페인의 승리까지 맞히며 세계 축구 팬으로부터 ‘문어 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4강전에서 문어 ‘파울’이 스페인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