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치매 발병 69% 막을 수 있다
美 환자 700만명 빅데이터 분석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성분이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체 대상 임상시험 결과는 아니고 유전자, 단백질 정보를 토대로 컴퓨터 가상 실험을 한 결과지만 수백만 명의 진료 기록에서도 해당 성분을 복용한 사람들이 알츠하이머 치매에 훨씬 덜 걸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후속 임상시험에서 비아그라가 치매 예방 효과를 입증하면 남성의 말 못 할 고민 해결을 넘어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삶에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상 실험 예측을 진료 기록에서 확인
미국 클리블랜드병원 게놈의학연구소의 페이슝 쳉 박사 연구진은 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에 “대규모 인체 정보와 진료 기록 분석을 통해 (비아그라의) 실데나필 성분을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로 쓸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실데나필은 비아그라와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레바티오의 약효 성분이다. 둘 다 말초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 흐름을 돕는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전 세계 5000만명 이상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만 별다른 치료제가 없는 상태다. 지난 6월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개발한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18년 만에 알츠하이머 신약으로 허가받았지만 여전히 효능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클리블랜드병원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에 작용하는 약물을 찾았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타우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신경섬유 응집체를 형성해 역시 손상을 일으킨다. 제약사들은 수십 년 동안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에 각각 작용하는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번 연구진은 치료제로 효과가 있으려면 두 단백질 모두에 작용하는 약물이어야 한다고 예측했다. 먼저 인간 유전자 해독 정보와 35만1444가지 단백질 상호작용 지도를 토대로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동시에 작용하는 인체 부위를 찾았다.
그리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치료제 1608종을 대상으로 컴퓨터에서 두 단백질이 겹치는 곳에 효과가 있는 약물을 찾았다. 컴퓨터 가상 실험 결과 심혈관계 치료제들이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에 가장 유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4종의 심혈관계 치료제 중 비아그라의 실데나필 성분이 효과가 제일 높을 것으로 예측됐다.
방대한 환자 진료 기록도 이 같은 컴퓨터 예측을 뒷받침했다. 미국인 700만명 이상의 6년 치 진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실데나필 복용자는 다른 사람보다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위험이 69% 낮게 나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다른 고혈압, 당뇨병 치료제 복용 그룹보다도 55~63% 낮았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세포 실험에서도 실데나필은 세포 성장을 촉진하고 타우 단백질 응집을 감소시켰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논문에 구체적인 평균 복용 기간과 횟수 등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신약 재창출로 개발 시간, 비용 감소
연구진은 “앞으로 남녀 모두가 참여하는 임상시험을 통해 실데나필의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실데나필과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연구는 실데나필 성분을 복용한 사람 중 여성은 2%에 그쳐 인구 전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연구진은 “파킨슨병,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루게릭병) 같은 다른 퇴행성 뇌질환에도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미 치료제로 허가받아 안전성이 확인된 비아그라를 다른 질병 치료제로 추가 개발하는 ‘신약 재창출’을 통해 향후 임상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방침이다. 에볼라 치료제인 렘데시비르가 코로나 치료제로 허가받은 것이 신약 재창출의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장 유안 박사는 네이처에 “이번 연구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정밀 의학이 기존 치료제를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복합 질환과 연결시킬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