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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이정재 뒷모습 보라, 승자 모습 보이던가? 진짜 1등은 말이야…” <2-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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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10.18 08:16 33,4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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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에서 계속>>

 

 

 

―상당히 일찍 주연을 맡았습니다. 28세 때 나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분한 스탠리 역은 영화에서는 말론 브란도가 분했던 역이었죠.

“아 글쎄 주역급 외모였다니까요, 하하.”

‘오징어 게임’ 9화에서 일남의 정체를 알게 된 주인공 기훈은 ‘돈을 얼마나 쉽게 벌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야?’라 일갈한다. 그러자 일남은 이렇게 반문한다. ‘자네도 벌어 봐서 알잖아, 그게 쉽던가?’

―연기가 쉽던가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른 네 살 때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명동예술극장에서 미도파백화점 앞까지 관객이 줄을 설 정도로 성황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긴장이 돼서 독백 장면에서 20초 동안 의식을 잃었어요. 유체이탈을 했다고 할까요. 연극에서 20초는 굉장히 긴 시간인데 대사 없이 시간이 마냥 흘렀던 거죠.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납니다. 그런데 당시 관객들은 아마 사고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건 절대로 그 나이 때 해서는 안되는 역할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이라면... 꼭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에요.”

1993년 마키아벨리의 희곡을 심재찬이 연출해 초연한 연극 '만드라골라'에 출연한 오영수. /오영수 제공
 1993년 마키아벨리의 희곡을 심재찬이 연출해 초연한 연극 '만드라골라'에 출연한 오영수. /오영수 제공

―1987년부터 24년 동안 ‘나라를 대표하는 극단’인 국립극단 배우로 있었습니다.

“연극을 자주 보러 오던 열세 살 연하 은행원 아내와 2년 동안 연애했지만 배곯는 직업이라고 처가 반대가 심했어요. 그러다 국립극단에 들어가니 비로소 월급이란 걸 받을 수 있었고 간신히 결혼 허락도 얻었어요. 가만, 마흔 세 살 때였지... 아마.”

그러고서 낳은 늦둥이 외둥딸은 소속사가 없는 오영수를 위해 지금 그의 비공식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

1990년 MBC 드라마 '김형사 강형사'에 조폭 두목으로 출연한 오영수. /MBC
 1990년 MBC 드라마 '김형사 강형사'에 조폭 두목으로 출연한 오영수. /MBC

요즘 유튜브에 들어가면 방송국과 ‘오징어 게임’ 팬들이 올려놓은 오영수의 젊은 시절 TV 드라마 출연 희귀 영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군 검사로 출연해 딱 1분 30초 동안 나왔던 ‘제1공화국’(1981), 군인 출신 광고감독으로 나온 ‘샴푸의 요정’(1988), 성질 급한 조폭 두목으로 등장해 한껏 폼을 잡고 샌드백을 두드리다가 ‘벽돌폰’을 만지작거리던 ‘김형사 강형사’(1988) 등이다. 그런데 정작 기자가 카카오톡으로 보내 준 동영상을 본 오영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으응? 근데 내가... 언제 저런 드라마에 출연했지?”라며 의아해했다.

회차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던 ‘전우’ ‘전원일기’ 같은 TV 드라마에 단발성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국립극단 단원으로 있으면서 ‘아무 배역이나 맡진 않겠다’는 자존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역할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바로 ‘스님’이었다.

오영수가 스님으로 출연한 영화 '동승'(2002)의 스틸컷. /스펙트럼필름코리아
 오영수가 스님으로 출연한 영화 '동승'(2002)의 스틸컷. /스펙트럼필름코리아

영화 ‘동승’(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선덕여왕’(2009) ‘무신’(2012)에서 모두 스님 역할을 맡았다. ‘무신’에서의 역할은 팔만대장경을 총감독했던 수기 대사였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영웅’(2016)에선 사명 대사로 분해 품위와 여유, 유머를 갖춘 연기를 보였다. 이러다 보니 그를 진짜 스님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무렵부터 그를 알아본 해외 팬도 없지 않았다. 2005년 국립극단이 연극 ‘떼도적’을 독일 만하임 쉴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을 때 웬 50대 독일인 신사가 베를린에서 찾아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감명 받아 오영수 배우를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마 그가 출국해서 공항에서 마스크를 벗자마자 금세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드라마 '무신'(2012)에서 수기 대사로 출연한 오영수. /MBC
 드라마 '무신'(2012)에서 수기 대사로 출연한 오영수. /MBC

―어떻게 해서 ‘스님 전문배우’가 된 것인지요?

“제가 불교 사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점점 외모가 스님을 닮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교의 어떤 점에 관심을 가졌나요.

“그건 ‘자신을 비우고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산길을 걷던 나그네가 예쁜 꽃을 봤을 때 젊은 사람은 그 꽃을 꺾어 가져오고, 중장년은 꽃을 캐서 자기 집 정원에 심고, 더 나이가 들면 그 자리에서 본 뒤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을 가진다고 해요. 일흔 살이 넘으니 그렇게 그냥 두고 다 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도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게 되더군요.”

나그네와 꽃 스토리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삶이냐’에 나오는 이야기에 그가 연령대를 덧붙여 해석한 것이다.

오영수는 "나이가 들 수록 욕심을 버리게 되다 보니 외모가 스님과 닮게 됐고, 그래서 스님 역할을 많이 맡게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오영수는 "나이가 들 수록 욕심을 버리게 되다 보니 외모가 스님과 닮게 됐고, 그래서 스님 역할을 많이 맡게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냈다

오영수는 2014년 셰익스피어 연극 ‘템페스트’(김동현 연출)에 출연할 때 기자와 인터뷰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평행봉 운동을 수십 번씩 한다’고 했다. 정말일까 반신반의했었는데 2년 뒤 연극 ‘장판’에서 도둑 역으로 나와 그걸 무대 위에서 실연(實演)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와-!”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젊은 관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이 연극 무대는 특이하게도 2층 구조여서 객석에서 우러러봐야 하는 위치였는데, 당시 20대 남성 관객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공연 전 연출가 이우천이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 얘기를 듣고 원래 대본에서 체조를 하는 장면을 그렇게 바꿔버렸다고 한다.

다시 5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 20분 동안 걸어가 집 근처 남한산성 밑에서 평행봉 50개를 하고 내려온다. “사실 거기가 좀 유서 깊은 장소죠. 남한산성 전적지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육군교도소와 육군체육부대가 있던 곳이니...” 3년 전 급성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다시 건강해 질 수 있었던 것도 평행봉 운동이 큰 힘이 됐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거의 집에 틀어박혀 있고 외출할 때도 누가 알아볼까봐 마스크를 벗는 일이 없지만, 평행봉 근처에서만큼은 정체가 이미 다 노출된 아침운동 동료들밖에 없어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에서 ‘서 있기도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노쇠해 보이는 건 죄다 연기 아니었습니까.

“하하, 그렇게 봐 주면 고맙겠습니다.”

오영수(오른쪽)가 주인공 이정재와 함께 연기하는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오영수는 "이정재와 처음 같은 작품에 나왔는데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영수(오른쪽)가 주인공 이정재와 함께 연기하는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오영수는 "이정재와 처음 같은 작품에 나왔는데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촬영은 주로 대전과 경기 안성의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는데, 오영수는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촬영했고 더빙은 올 1월에 끝냈다. 이러다 보니 2019년 ‘노부인의 방문’ 이후로 무대에 서지 못해 연극계에선 ‘오영수 선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걱정스런 말까지 돌았다. 그게 ‘오징어 게임’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촬영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었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저도 오일남처럼 놀이를 하듯 즐겁게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황동혁 감독이 배우를 달달 볶으며 고생시키는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이 줄거리에서 그랬으면 정말 큰일이 났겠죠, 하하. 딱 한번 곤란한 일이 있었는데, 4화에서 참가자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도중 켜켜이 쌓인 침대 맨 꼭대기에 올라가 ‘이러다가는 다 죽어! 나 무서워’라고 절규하는 장면이었어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긴 한데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올라가 보니 진짜로 무섭긴 무섭더라고요. 제작진이 허리에 안전장치를 채워 줘서 그걸 감고 촬영했죠.”

오일남이 정말 공포에 질린 것처럼 절규했던 장면은 100% 연기였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만 해! 이러다 다 죽어!" '오징어 게임' 4화에서 오일남(오영수)이 높은 곳에 올라가 절규하는 장면. 오영수는 이 장면에서 높이 올라가 보니 정말로 무서워 안전장치를 허리에 감고 촬영했다고 한다. /넷플릭스
 "그만 해! 이러다 다 죽어!" '오징어 게임' 4화에서 오일남(오영수)이 높은 곳에 올라가 절규하는 장면. 오영수는 이 장면에서 높이 올라가 보니 정말로 무서워 안전장치를 허리에 감고 촬영했다고 한다. /넷플릭스

―발성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대사가 느릿느릿한데 묘한 운율이 있다는 것이죠. ‘연극적인 대사다’ ‘읊는 것 같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무대에 오래 서다 보니 연기란 기(氣)와 호흡으로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치 시(詩)를 읊듯,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그것은 내공의 힘이기도 하죠. 대사를 발화할 때 생각을 먼저 하고 나서 말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생기고 침묵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가 차근차근 ‘호흡을 활용한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 6화에서 치매 증상을 겪는 줄 알았던 오일남이 돌연 기훈에게 또박또박 말하는 대목에서 관객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럼 / 자네가 날 / 속이고 / 내 구슬 / 가져간 건 / 말이 되고?’ 여기서 ‘/’가 호흡이라는 얘기다. 이 장면에서 그는 온몸의 기를 얼굴 한 곳으로 몰아 순식간에 엄한 표정으로 강렬하게 연기했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 6화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우리 깐부부터 맺자"고 말하는 오일남(오영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6화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우리 깐부부터 맺자"고 말하는 오일남(오영수). /넷플릭스

―대사뿐 아니라 몸짓 하나하나가 연기라는 시청자가 많습니다.

“손끝이 살아나지 않으면 연기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연기 초보자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멍청히 서 있게 되죠. 손이 살아 움직이도록 기력을 넣어야 연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대에서 객석이 보이게 되죠. 전 처음에 어머니께서 객석 맨 앞자리에 계셔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나중에야 객석이 전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연기 철학에 비춰보면 의외로 상당히 계획적으로 머리를 쓰는 연기로도 보이는데, 그는 바둑 실력이 아마 6단이라고 한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 장면의 연기에 대해 오영수는 "내가 오일남이라면 그 순간에 몸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다 버리고 갈 것 같았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오징어 게임' 마지막 장면의 연기에 대해 오영수는 "내가 오일남이라면 그 순간에 몸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다 버리고 갈 것 같았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9화에서 정체를 밝히는 장면의 연기도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드라마에서 1회 게임이 1988년에 열렸으며 해마다 400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볼 때, 오일남은 분명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한 범죄자가 되죠. 그런데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는 모습이 마치 인생을 달관한 현자(賢者)처럼 보여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보인 이유가 있어요. 마지막 장면 촬영에 앞서 감독에게 ‘머리와 수염을 다 깎고 연기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머리 깎고 나오는 거야 뭐 저는 기본이죠, 하하. 스님 역을 많이 하다 보니, 오일남이 세상을 떠날 때는 머리카락이나 수염처럼 몸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다 버릴 것 같았어요.”

―오일남은 왜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기훈을 불렀을까요?

“기훈과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자네와 함께 해서 즐거웠네’라고 털어놓잖아요. 선한 심성을 지녔으면서도 게임에서 1등을 한 기훈에게 ‘세상은 자네가 믿는 것처럼 선하지 않다’는 충고를 한 것은, 오일남은 자신이 만든 질서 속에서 세상이 결코 정의롭고 믿을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을 기훈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란 대사가 나오게 된 겁니다.”

'오징어 게임' 9화에서 오일남(오영수)이 숨을 거두기 직전 기훈(이정재)을 불러 비밀을 털어놓는 장면. 오영수는 이 때 일부러 머리와 수염을 모두 깎고 연기했다. 덕분에 수도승이나 현자 같은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9화에서 오일남(오영수)이 숨을 거두기 직전 기훈(이정재)을 불러 비밀을 털어놓는 장면. 오영수는 이 때 일부러 머리와 수염을 모두 깎고 연기했다. 덕분에 수도승이나 현자 같은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넷플릭스

―그게 전부였습니까?

“동시에 뭔가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며 어느 정도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연기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인생을 관조하는 심정으로 말이죠. 제 얼굴이 화면에서 그렇게 클로즈업된 건 처음 있는 일인데, 제가 제 얼굴을 보는데도 좀 섬뜩하더라고요.”

―그럼 길거리에 쓰러진 노숙자가 자정 직전에 구조되는 광경을 오일남은 끝내 보지 못한 겁니까?

“네, 못 보고 죽은 거예요.”

―그런 엄청난 부자가 마지막 순간에 가족 없이 쓸쓸히 죽어가는 장면이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습니다.

“평생 자신을 위한 돈과 권력과 재미를 열심히 추구했지만, 결국 가까웠던 이들은 모두 떠나버려 마지막 순간엔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되죠.”

―오일남은 도대체 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었던 걸까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자칫 발을 헛디디면 총을 맞을 수 있고, ‘달고나 뽑기’도 한순간의 실수로 죽을 수 있잖아요. ‘줄다리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락사할 수도 있었죠. 초반에 게임을 일시 중단하는 데 동의한 것도 왜 그랬던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하, 드라마를 너무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오일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집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걸 이해해야죠. 그의 행동은 모두 커다란 ‘오일남 게임’의 일부로 봐야 합니다. 게임을 계속할지를 정하는 찬반투표에서 ‘×’를 누른 것도 ‘어차피 돌아올 사람은 다 돌아올 테니 더 재미있게 놀아 보자’는 마음에서였을 겁니다. 눈여겨 봤던 기훈에게는 직접 동네로 찾아가 라면을 부숴 먹으며 설득하기도 했고요.”

―오일남이 침대 위에 올라가 ‘그만 하라’고 절규했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가지가 다 있었을 거예요. 너무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면 게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거란 경고인 동시에, 집단 살인극이 벌어지는 현장이 몸서리처진다는 진짜 인간적인 고백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7화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오일남은 프론트맨(이병헌)에게 외국인 VIP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미 구슬치기 게임에서 탈락한 뒤라 충분히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건 오일남이 VIP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기보다는, 감독이 시청자들에게 아직 오일남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했던 장치로 봐야겠죠.”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이 목숨을 걸고 참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모두가 게임을 최대한 즐기려는 오일남의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이 목숨을 걸고 참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모두가 게임을 최대한 즐기려는 오일남의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극중 오일남과 성기훈이 사실은 부자 관계였을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저도 보긴 봤는데, 에이,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던 게임은 실제로 어린 시절에 해봤던 겁니까?

“딱지치기, 구슬치기, 줄다리기는 정말 많이 해본 놀이였어요. 하지만 사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오징어 게임’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다음 세대에서 하던 놀이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을 맡은 이정재가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습니다. 오일남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다채로운 표정 속에서 감정의 완급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결코 밀리지 않더군요.

“이번에 처음으로 이정재씨와 작품을 같이 해 봤는데, 대단히 인간적이고 성실한 배우였어요. 호흡도 아주 잘 맞았고요. 상우 역을 맡은 박해수씨야 뭐 연극계에서 이미 잘 알던 후배고요. 그리고 참, 이병헌씨가 그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말은 감독이고 누구고 전혀 얘기해주지 않아서 통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서 오일남이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어떤 사람이 손으로 제 눈을 쓰윽 감겨 주더군요. 도대체 누군가 하고 나중에 슬쩍 눈을 떠 보니까 웬 잘생긴 사람이 떡하니 서 있더라고요. 가만히 보니 TV에서나 보던 이병헌씨여서 ‘으잉?’ 하고 깜짝 놀랐죠.”

사실 ‘오징어 게임’에는 수많은 오영수의 연극계 후배들이 출연한다. 상우 역 박해수를 비롯해 의사 역 유성주, 주인공 기훈의 전처 역인 강말금, 홍우진(첫 번째 게임에서 총을 맞고 기훈에게 매달리는 참가자 역), 김동현(줄다리기 게임 때 오일남에게 ‘서 있을 힘도 없어 보인다’고 했던 참가자 역), 이지하(목을 매 자살한 참가자의 아내 역) 등이다. 다들 연극에선 주연급이다. 오영수는 “나보다도 그들이 무대에서 다진 연기 솜씨로 드라마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황동혁 감독은 같이 일해보니 어땠습니까?

“역사 의식이 투철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표현력, 열정까지 갖춘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배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찾아내 부드럽게 끌어내는 능력도 대단한 감독이에요.”

'오징어 게임' 촬영장에서 오영수(맨 오른쪽), 이정재(그 왼쪽) 등 출연진에게 다음 장면의 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동혁 감독. 본인도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촬영장에서 오영수(맨 오른쪽), 이정재(그 왼쪽) 등 출연진에게 다음 장면의 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동혁 감독. 본인도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있다. /넷플릭스

인생에 승자가 어디 한 명뿐인가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성공 이유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건 아니건 할 것 없이 드라마 속 게임을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있을 법하지 않은 게임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도 관객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부와 권력을 움켜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약자들을 휘두를 수 있는 잘못된 세상이 보이는 것이죠.”

―결국 드라마 속 게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오일남은 단 한 사람의 승자가 아니면 모두 다 패자라는 편견을 지닌 인물이에요. 그런데 2등은 3등에게 승리한 사람이고, 4등은 5등, 5등은 6등을 이긴 사람 아닌가요? 더 등수가 낮은 그 많은 사람들 역시 존재 의미가 있는데, 그 사실을 무시하는 현대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부조리가 그의 게임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드라마의 주제였던 걸까요?

“제 생각에, 진정한 승자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면서 내공을 지니고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에서 1등을 한 주인공이 오일남이 누운 병상을 떠나며 드러낸 공허한 뒷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그 모습이 어디 승자로 보이던가요? ‘승자’가 승자가 아니고 ‘패자’ 역시 패자가 아니라는 주제를 드라마는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택 근처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금세라도 내려갈 듯 포즈를 취한 오영수. 그는 "'오징어 게임'의 시즌2 제의가 온다면 당연히 출연할 것"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자택 근처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금세라도 내려갈 듯 포즈를 취한 오영수. 그는 "'오징어 게임'의 시즌2 제의가 온다면 당연히 출연할 것"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깐부 치킨’ 광고 제의를 거절했다는 소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깐부’란 개념은 인간 사이의 신뢰와 배신을 상징하는 것이고 드라마 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 의미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고사했던 것인데, 일부 보도된 것처럼 ‘배우로서 자리를 지키려고 CF를 찍지 않겠다’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연극계에서 자칫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비난을 받을 일이라고요?

“아, 제가 거절하면서 정말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미 여러 광고에 나오고 있는) 이순재 선배, 신구 선배는 뭐가 되겠어요?”

―좋은 배우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합니까.

“배우에겐 무대가 삶의 목적이고 의미입니다. 그런데 무대는 현실을 반영하는 공간이죠. 그렇게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목적이 뭔지 풀어나가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그러자면 연극과 영화는 사건만 담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극처럼 그 속에 인생이 있어야 하고 노년 역시 다뤄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작품이 드물다는 건 아쉽습니다.”

 

 

 

 

―무대 연기와 스크린 연기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습니까?

“예전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지금은 호흡과 내공이 제대로 작용하면 결국 좋은 연기라는 점에서 같게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영수는 "이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모습을, 그리고 인생의 깊이를, 호흡과 내공을 통해 보여준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오영수는 "이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모습을, 그리고 인생의 깊이를, 호흡과 내공을 통해 보여준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새 작품 제의가 들어오진 않나요.

“연극과 CF 제의가 몇 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금 이 상황에 아직 적응이 된 게 아니라서요. CF는 ‘돈 주는데 왜 하지 않느냐’며 하자는 경우도 있는데, 돈 때문이라면 그게 다 욕심 아니겠어요. 하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거나 공익적인 광고에 출연하려는 생각입니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 시즌2 구상을 밝히면서 2015년 게임 우승자였다가 게임의 현장 책임자가 된 프론트맨의 과거에 대한 설명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오일남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아직 제의가 들어오진 않았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또 출연해야죠. 그런데 아마 시즌1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나올 겁니다. 9화 프론트맨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정장을 입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등장할 때처럼 말이죠, 하하.”

 

 <<3-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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