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대체 왜 해외에서 더 난리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인기를 둘러싼 문화부 기자들의 토크
- 입력
- 2021.10.09 13:00
- 수정
- 2021.10.09 13:02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190여개 국에서 서비스되는 이 작품은 집계 대상인 83개 국가에서 모두 1위에 오르기도 했죠. ‘오징어 게임’에 넷플릭스 주가가 뛰어 오르고 세계 곳곳에서 ‘오징어 게임’ 속 게임이나 소품이 인기를 끄는 등 역대 한국 영화ㆍ드라마 중에선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미국 팝 시장 석권과 영화 ‘기생충’과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오징어 게임’의 대히트까지 한국 콘텐츠가 세계 문화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한국 콘텐츠에 어떤 힘이 있기에 언어와 국경의 장벽을 넘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걸까요. ‘오징어 게임’에 대해,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콘텐츠의 힘에 대해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털어 봤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어떤 점이 우리를 사로잡았나
[고경석] ‘오징어 게임’을 보기 전 SNS 반응을 보니 이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D.P.’보다 시큰둥했어요. 화제작이니 봐야겠다는 의무감에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봤는데 지루한 부분은 건너 뛰고 봐서인지 뜻밖에 재미있더군요. 특히 게임 부분이 좋았어요.
[한소범] 저도 추석 연휴에 이틀간 몰아서 봤어요. 결론적으로 9화를 다 보고 나서는 ‘내 시간 돌려줘! 부들부들~’ 하긴 했지만, 어쨌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제기] 불량식품의 맛 같다고 할까요. 사실 1, 2화는 언제 재미있어지나 하면서 봤습니다. 3화부터 몰입하게 됐는데, 간단한 게임으로 생사가 오가게 되는 점이 결과를 궁금하게 만든 듯합니다. 멱살을 붙든다는 말이 이럴 때 해당한다고 할까요. ‘이거 별로인데’ 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강제력이 있어요.
[한] 1, 2화에서는 이야기 설계의 밑밥을 깔아야 하니 다소 장황해질 수밖에 없단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신에서는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느낌이긴 했어요.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강제력이 어디서 나오나 생각해봤는데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게임'이라는 이야기 형태의 불가피함 같아요. 일단 게임을 시작했으니 결과를 안 보고 끝내면 찝찝하잖아요.
[양승준] 흡입력이 세더라고요. ‘D.P.’보다 더 몰입해서 본 것 같아요. 잔혹 동화가 블록버스터로 펼쳐져 볼거리가 많았죠. 다만 곳곳에서 불편했습니다. 특히 결말에선 힘이 쭉 빠지고요.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한] 국내에선 욕하는 사람도 많은데 '무플보단 악플'이라는 말이 있듯 '욕' 자체도 이 작품의 화제성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왜 욕하지?’ 이런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내용이라서요.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언급했지만 같은 장르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게임의 단순성이 화제몰이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같아요.
[라] ‘난 아마 달고나 게임 시작 5초 만에 죽었을 듯’ 이런 생각에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 듯해요.
[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때만 해도 ‘무슨 말도 안 되는…’이라 생각하다가 달고나 게임 때는 ‘난 꼼꼼하지 못해서 결국 죽었겠구나’ 하면서 작품 속 상황에 나를 대입시키고 있더군요.
[라] 보통 생존게임을 다룬 콘텐츠 속 게임은 복잡하잖아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던가, 물리법칙을 활용해야 한다던가.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동심이 들어간 순수하면서도 간단한 게임이 죽음으로 이어지니 더 전율하게 된 듯해요. 결국 ‘운발’, 꼼수, 속임수, 완력 이런 게 생존에 크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듯해요. 공정한 듯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 주는 비장한 스릴과 서스펜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 그 지점이 콘텐츠 안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했죠. 근데 정작 그게 밖으로 나와 펼쳐지니 굉장히 불편하더라고요. 이태원역사에 ‘오징어 게임’ 테마파크 만들어졌잖아요. '19금' 콘텐츠인데 버젓이 '공공시설'에 놀이동산처럼 펼쳐져 있다니. ‘저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니 씁쓸하더라고요. 그냥 놀이터인 줄 알고 아이와 함께 간 부모가 나중에 혹시 '오징어 게임' 속 놀이터가 참혹한 살육이 벌어진 곳이란 걸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왜 해외에서 '오징어 게임'에 더 열광할까?
[고] 그래도 궁금한 건 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평가가 높을까 하는 점입니다
[한] 심지어 ‘오징어 게임’을 ‘기생충’과 비교하는 해외 반응까지 보면서 ‘오징어 게임’이야말로 해외(주로 서구) 관객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총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 일단 반칙이 주는 재미가 있겠죠. 기이한 장르적 특징이 있는 점도 인기 요인인 듯해요. 김언수 작가의 소설 ‘설계자들’이 해외에서 인기 있던 것 처럼요.
[고]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지만 ‘기생충’처럼 전 세계 시청자들이 모두 감정이입 할 수 있는 보편적 주제와 장르적 신선함이 흥행에 결정적 역할을 한 듯합니다. 정작 한국적인 ‘D.P.’는 해외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한 것처럼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 빈부격차 문제는 어디나 공통적이고, 어려운 은유나 상징을 쓰지 않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죠.
[한] ‘기생충’ 같은 작품이 보여주는 비정한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재현, ‘올드보이’ 같은 작품이 보여주는 잔혹한 장르적 재미. 이 두 개를 더 단순한 방식으로 뒤섞은 게 ‘오징어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외 관객들이 한국이라는 콘텐츠 제작사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의 총합 같았다고 할까요. 완성도와는 전혀 별개로요.
[라] 각자도생 자본주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말초적으로 표현했다고 할까요.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위계를 표시한 점도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고요.
[고] 해외에 비해 국내에선 여혐 논란 등 비판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런 시각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한국 시청자들이 정치적으로 훨씬 PC(Political Correctnessㆍ정치적 올바름)해서인 걸까요
[양] 그간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숙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잖아요.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 그리고 시스템을 하나 하나 되돌아보는 과도기니까요.
[라] 해외에선 아직 1차 수용단계라서 또는 자기네들 콘텐츠가 아니니 좀 더 오락적인 측면만 일단 눈여겨보는 것 아닐까요.
[양] 그냥 게임처럼 가볍게 즐기는 것 같아요.
[한] 그 지점에 대해서는 해외 시청자와 국내 시청자를 동일한 윤리 기준으로 바라봐선 안 될 것 같아요. 작품 내 묘사를 해외 관객은 그 드라마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만 바라보겠지만, 국내 관객은 작품 속 묘사가 실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환원되는지 맥락을 알 수밖에 없으니까요.
[라] 저희는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하는 나라이니, 왜 저렇게 만들었나라는 문제 제기를 우선할 수 있을 듯해요.
[고] 저는 한국 대중의 PC함이 단기간에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좀 과도하고 예민해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 저널리즘 비평을 봐도 자국의 대중적 콘텐츠에서 핵심 주제가 아닌 이상 젠더 이슈를 민감하게 다루진 않는 듯해요.
'밈'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성공 포인트
[한] 저는 오히려 윤리적 측면에서 불편했던 것보다, 대사나 캐릭터 구성이 지나치게 낡았던 게 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이 장면에선 이 대사가 나올 것 같다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그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라] 그동안 주류 콘텐츠에서 무시됐던 여성 새터민과 노인에게 비중이 큰 역할을 줬지만 그들에 대한 묘사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전형적이라는 점이 한계라고 봅니다.
[한] 그런데 그 지점 역시 한국 독자들은 클리셰로 받아들이지만 해외 독자들은 자막으로 한번 걸러진 대사를 보는 거니 이것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여러 유형의 인물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선정했다고 말했는데, 이 작품에선 전형성이 보편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때론 너무 전형적이고 뻔한 영화나 드라마가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잖아요. 신선함과 전형성의 결합이랄까요.
[라] 물론 상업적인 측면을 더 고려했으니 캐릭터를 납작하게 가고, 게임을 통한 이야기 전개에 더 집중하려 했을 듯해요.
[한] 결과적으로 해외에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두려면, 아주 뾰족하고 섬세한 작품이 아닌 뭉툭하고 납작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라] 드라마판 ‘강남스타일’이라고 할까요.
[한] 또 요즘 콘텐츠가 성공하려면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작품 바깥에서 얼마나 ‘밈(memeㆍ특정 콘텐츠를 온라인상에서 재생산하며 놀이로 즐기는 현상)화될 수 있는가’가 포인트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강남스타일’의 성공도 사실 음악이 훌륭했던 게 아니라 말춤을 추는 싸이가 해외에서 '밈'화되고 바이럴로 퍼지면서 가능했죠. 틱톡에서,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의 요소들을 갖고 놀기 용이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라] 그렇죠. 음악도 그렇고 얼마나 잘 재생산될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예전에 ‘너 그 드라마 봤어?’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봤다면, 이제는 틱톡 등에 포스팅하기 위해 보는 시대로 바뀌었어요. 화제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측면에선 동일하지만, 지금 바이럴은 더 강력하고 빠르죠. 저는 극본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 내적으로 연결이 잘 돼 있잖아요. 게임과 숫자 등등을 치밀하게 연결시키려 했던 면이 눈에 띕니다.
[양] 한편으론 혐오의 전시장 같았어요. 여성, 노인, 외국인 혐오를 다 펼쳐놨다고 할까요. 남성들이 득세하는 극한 경쟁에서 여성이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미녀는 처참했고, 게임 속 VIP가 다 변태적인 외국인으로 그려져 뜨악했고요. 여성과 남성의 알몸이 도구처럼 쓰여 당황스러웠죠. 이런 미장센을 통해 계급 의식을 드러내려면 각성을 시켜줘야 하는데, '오징어게임'은 그걸 하지 못했어요. 그냥 현실 속 모순을 나열만 한 데 그쳤다랄까요.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선 사회에서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잔혹하게 보여주지만, 시스템을 고발하고 어떻게 바꿔야하는 지를 알려주며 관객을 각성시키잖아요. 그런 면에서 아쉬웠어요, '오징어게임'은. 특히 결말에서 무너지더라고요. 게임의 주최자인 노인이 기훈(이정재)에게 "그래서 자네는 사람을 믿나?”라고 반복해서 묻잖아요. 그럼 이 무한경쟁의 모순이 사람 탓인가요? 시스템의 문제를 짚는다면서 끝에선 결국 사람 탓을 하는 꼴로 비쳐 당혹스러웠어요.
물론 오징어게임에서 끝까지 괴물이 되지 않은 건 두 여성이었어요. 새터민과 청년 가장이요. 저 만 살려했던 남성들과 달리 유일하게 연대하죠. 그런데 이 연대는 힘이 없어요. 게임에서 무기가 되지 못하거든요. 이 여성 연대의 의미가 빛을 잃는 배경이고요. 그래서 이 콘텐츠가 일부 진취적인 면이 있음에도 권력을 다루는 방식이 전형적이고,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이 혐오적이라는 게 더 두드러져 보이고요.
[라] 일종의 실험 아닐까요? 여전히 사람을 믿는 듯한 기훈(이정재)가 생존했는데, 기훈이 그런 신뢰로 살아남은 걸로 착각한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요. 결론이 저도 억지스럽다고 생각은 합니다. 특히 기훈의 마지막 선택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한] 근데 빨간머리는 왜 한 거예요?
[고] 감독이 말한 바로는 그렇게 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 전의 기훈과는 다른 사람이 됐으니 평소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머리를 했을 것 같았다. 기훈이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 뭘까 생각해보니 빨간 머리였다. 기훈의 분노가 내재돼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