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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오징어 게임' 그 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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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그 뿌리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00:34

지면보기지면 정보
양성희
양성희 기자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1위에 오른 '오징어 게임'. 한국 드라마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1위에 오른 '오징어 게임'. 한국 드라마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넷플릭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0만 영화 시즌이던 추석. 올 추석의 승자는 단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었다. 

영화 ‘모가디슈’가 350만 명을 동원하며 코로나 시국에 모처럼 선방했지만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전 세계 1위에 오른 ‘오징어 게임’에 비할 바 아니었다.

 OTT 차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28일 현재 드라마가 서비스되는 83개국 중 76개국에서 1위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을 휩쓸었다. 월드랭킹 점수는 830점 만점에 822점, 역시 올해 1위다. 올 들어 800점을 넘은 드라마는 ‘종이의 집’(스페인),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영국) 2편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나락에 빠진 인물들이 거액의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건 생존 게임을 벌이는 이야기다. 

데스게임 장르에, 물신주의와 극단적 생존경쟁이라는 사회적 메시지, 특유의 신파 코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전통적 놀이문화를 버무렸다. 국내보다 해외의 호평이 더 많다. 해외 팬들 사이에서 ‘달고나 만들기’ SNS 챌린지가 벌어지고, 미국 10대에겐 유튜브보다 인기라는 게임 사이트 로블록스에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오징어 게임’ 관련 게임이 연이어 올라온다.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는 달고나 세트, 양은 도시락, 추리닝 등 비공식 굿즈까지 등장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뉴노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올해 국내 콘텐트 제작에 5500억원 투자를 약속했고, 9부작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는 200억원이다. 16부작 국내 최고 제작비 150억~200억원을 훨씬 웃돈다. 

OTT 특성상 소재 제한이 없고, 넷플릭스의 무기인 ‘창작의 자유 보장’도 주효했다. 군대 문화를 날카롭게 파헤친 ‘디피’를 비롯해 ‘인간수업’ ‘킹덤’ ‘스위트홈’ ‘보건교사 안은영’ 등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수작이 쏟아진 배경이다.

사실 한국 드라마는 K팝에 앞선 한류의 주역이었다. 2000년대 중반 ‘겨울연가’를 필두로 로맨틱한 환상의 패키지 상품 격인 꽃미남 로맨스물이, 높은 젠더 감수성으로 전통적 로맨스물이 사라진 서구 시장의 공백을 파고들었다. 이제 한국 드라마가 장기인 로맨스 말고 장르물의 강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세계에 입증하는 중인데, 그 파트너가 넷플릭스라는 점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요 며칠 새 BTS는 유엔 무대에 서고, 세계적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신곡으로 또 한 번 돌풍을 일으켰다. BTS의 빌보드 기록 경신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다. ‘기생충’과 ‘미나리’의 기억도 생생하다. 

얼마 전 미국 NBC의 인기 오디션 ‘아메리카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한국 보컬팀 ‘코리안 소울’에게 한 심사위원은 "한국 문화에는 어떤 비결이 있길래 이렇게 재능있는 사람들이 쏟아지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국뽕을 자제한다 해도 K컬처가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섰다는 자부심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난 5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왜 강한가’라는 기사를 통해 "비판할 수 있는 문화" "정권이나 재벌의 부패, 경쟁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표현해 온 점" "엔터 시장에 잘 맞는 기업문화" "팬들이 대중문화 주체로 참여하는 풍토" 등을 이유로 분석했다. 당시 한 전문가는 이 기사를 인용하며 1990년대 검열 철폐를 언급했는데, 공감한다. 문화인들의 지난한 싸움으로 창작의 자유가 열렸고, 때마침 대기업과 엘리트 인력이 문화산업에 뛰어들면서 90년대 문화의 시대가 완성됐다. 2000년대 한류의 토대다.


다음 달은 1996년 영화· 음반 사전 심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검열이 폐지된 지 정확히 25주년이다. ‘최대 지원 최소 간섭’이 언제나 문화를 흥하게 하는 제1 법칙임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유례없는 '언론징벌법'에 미련을 못 버리고, '역사'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불허하며 표현의 자유에 쉽게 제동을 걸려 하는 이 정부에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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