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호 기자
- 승인 2021.09.26 08:48
폭력과 풍자, 호러, 스릴러, 잔혹함 등 흥미 요소 풍부
부자들의 재미를 위해 밑바닥 인간 사냥하는 부조리극
현실이 더 지옥이지만 게임판도 공정하지 않은 세계
가상공간인 게임장 VIP도, 관객도 같이 즐기는 '공범'
끝까지 내기 걸기로 2부 암시…‘뻔한 스토리’ 극복 과제
‘오징어 게임’이 연일 상종가다. 장삼이사(張三李四) 사이에서 오징어 게임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고, 청소년 불가판정을 받았음에도 이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상황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25일(미국 현지 시간) 기준으로 플릭스 패트롤(Flix Patrol) 집계에 따르면 넷플릭스에서 83개국에 방영 중인 오징어 게임은 811포인트를 받으며 그동안 1위를 달리던 ‘Sex Education’(764포인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국가별로는 일본과 스위스, 아랍에미레이트,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페루 등 66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도 지난 21일부터 1위를 달리고 있다. 오징에 게임은 인도에서만 4위를 기록할 뿐 이탈리아와 체코 등 16개국에서 2위에 랭크되어 있다.
영화와 TV 쇼(Shows) 평점(Rates)을 매기는 IMDB는 오징어 게임을 10점 만점에 8.3점으로 평가했고, 미국 영화 비평가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는 신선도 100%라고 극찬했다.
왜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을까? 그것은 오징어 게임에 폭력과 풍자, 호러, 스릴러, 잔혹함 등 흥미를 끌 수 있는 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의 영화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것과 같은 이유다.
프랑스 영화와 드라마, 게임, 만화 등을 소개하는 잡지인 ‘45Secondes’는 “(오징어 게임은) 많은 국가에서 스트리밍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현재 영국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며 “이 영화는 진정으로 끔찍하고 피 묻은 장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실존적인 공포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했다.
미국 경제·경영 전문 잡지 ‘포브스(Forbes)’도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오징어 게임을 추천한다”며 “ 이상하고 폭력적이지만, 뛰어난 공연, 기억에 남는 캐릭터, 창의적인 우여곡절로 가득찬 강력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오징어 게임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드라마는 갖가지 사연으로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진 456명의 군상(群像)이 인생 역전을 노리며 게임을 벌이면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으로 이어진다. 승자가 되면 참가자 한명당 1억원씩 계산된 상금 456억원을 독차지하게 된다. 800만분의 1도 안 되는 로또 당첨 확률보다 승률이 엄청나게 높다. 456대 1밖에 안되니 참가자들은 사생결단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참가자들이 돈을 차기하기 위한 욕망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주최 측은 천정에 걸린 투명 돼지저금통에 5만원짜리 현금다발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게임에서 지는 ‘탈락’이 곧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되면서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탈락자들이 조준 사살되면서 게임장은 시뻘건 피로 물든 대학살 현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스트리밍을 중단하지 않는다. ‘너무 잔혹해’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드라마에 몰입한다. 마치 게임에 열중하듯 시청자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숨진 탈락자들이 게임장 지하에 마련된 화장터에서 강제 소각되어도, 장기밀매조직의 리얼한 부검 장면에서도 시청자들은 역겹다거나 무서움에 치를 떨지 않고 다음 장면을 더 기대하며 본다.
왜 일까? 시청자들은 이를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는 공포와 호러 코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각자의 잔인함을 숨기면서 공포 드라마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부조리극이다. 돈이 너무 많아 세상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는 부자들에게 인간 사냥, 대학살은 하나의 놀이가 된다. 부자들에게 사회적 약자들은 도구일 뿐이다. 존엄성, 그런 것은 허상이다. 게임(Game)의 뜻 가운데 하나가 ‘사냥감’인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사냥감을 야생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참고로 영국에서 출간한 Longman 영영사전에는 game을 ‘wild animals, birds, and fish that are hunted for food, especially as a sport : game birds→big game’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삶도 다르지만 그들이 꿈꾸는 세상도 다르다. 첫 번째 게임에서 참가자들의 사살당하는 가운데 프런트맨은 바트 하워드(Bart Howard)의 ‘Fly me to the moon’을 듣는다. 프런트맨이 꿈꾸는 이상향인 ‘달나라’와 참가자들이 상금을 획득해 빚 없는 세상에 당당히 사는 것, 아니 이 죽음의 게임판에서 벗어나길 꿈꾸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오징어 게임에서 시청자들은 부지불식간에 공범이 된다. 시청자들은 VIP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탈락자들의 끔찍한 처리과정을 생생히 지켜본다. 그것도 VIP들과 똑같이. 외국에 있는 VIP들은 게임장의 실시간 중계를 통해서 보고, 관객은 이를 화면을 통해서 보는 게 다를 뿐이다. 오징어 게임은 시청자들에게도 하나의 가상공간인 게임장이다.
게임은 공정한 규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오징어 게임은 공정하게 진행될까?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현실이 지옥보다 더 한 곳"이라고 절규하며 죽음의 게임판에 온 참가자들에게 주최 측은 평등과 차별, 동동한 기회를 보장한다고 선언한다. 평등하게 싸워서 이기라고 주문한다. 이를 위반한 자들을 처단하며 참가자들에게 자신들이 공정한 규칙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천명한다.
하지만 여기도 인맥이 없으면 ‘탈락’이 되고, 참가자를 감시하고 사살하는 ‘일꾼’ 사회조차도 계급이 존재한다. 모략과 속임수도 용인된다. 게임판도 현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규칙을 준수하고 게임에 임하는 사람이 먼저 죽을 뿐이다. 힘없고 빽이 없이 성실히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을’들이 겪는 갑들의 횡포가 게임판에서조차 똑같이 일어난다. 패러독스다. 그러니 밑바닥 인생인 ‘을’들이 분노할 수밖에.
오징어 게임은 끝까지 내기, 즉 게임이다. 그러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1부 마지막 내기는 사람을 믿느냐 즉, ‘믿음’과 ‘신뢰’다.
인간은 믿을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할 존엄한 대상이라면 드라마 제작은 계속 될 것이고,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역)이 믿음이 없다는데 베팅을 하면 오징어 게임은 1부로 마치게 된다.
다행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성기훈이 베팅에 성공한다. 이야기는 계속되겠지만 제작진의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는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말로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인 탓이다.
성기훈이 이를 극복하고 어떤 게임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해 나갈지 오징어 게임 2부를 기대해 본다.
출처 : 빅터뉴스(http://www.big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