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있던 '잘린 손', 이민 노동자의 현실
▲ 내 몸이 사라졌다 ⓒ 넷플릭스
냉장고 문이 열렸다. 툭! 비닐 안에 밀봉되어 있던 잘린 손이 떨어졌다. 잠시 후 손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눈이 달리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을 움직여 혹여 사람들에게 들킬까 조심하면서 그 방을 탈출한다. '잘린 손'이라는 엽기적인 주인공, 하지만 손이 그 방을 탈출하기 전에 이미 이 영화를 보는 당신은 어느 틈에 손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처럼 숨막히는 행보를 하는 잘린 손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2020년 안시손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앙드레마틴프랑스장편상, 세자르영화제 애니메이션상, 2019년 보스턴영화제 애니메이션상, LA비평가협회상, 뉴욕비평가협회상, 시체스국제영화제 오피셜판타스틱상, <내 몸이 사라졌다>의 수상 기록이다. 전 세계 영화제가 '잘린 손'의 무엇에 감동했을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손
뭉툭한 손, 하지만 지금은 해부학실 냉장고에 처박혔던 뭉툭하게 잘린 처지이다. 곧 그 흉측한 손은 한때 모래 장난을 하고, 피아니스트와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소년의 어린 시절의 손으로 오버랩 된다. 지금처럼 손등에 점이 있던 오동통하던 아기의 손은 자라 서투르게 건반을 누르며 피아노를 치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인생을 돌아다닌 내 더러운 발을 씻을 때 나는 손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손이 물 속에 함께 들어가 발을 함께 씻긴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인생을 견딘 모든 발에 대해서만 감사했습니다.(중략)"
- 정호승 '손에 대한 묵상' 중에서.
손은 우리 몸의 부분, 그 중에서도 몸이란 실재의 실행을 담당하는 수단에 해당하는 부위다. 그런데 영화는 그 행위를 통해 존재를 설명한다. '나'라는 존재가 지금까지 '손'을 통해 해왔던 행동을 통해 일목요연 하게 정리된다. 사라진 몸의 주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잠시 손을 스쳐간 기억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의 삶에 몰입한다. 삶이란 그렇게 지난 시간 그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잘린 손'인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첼리스트인 어머니, 아버지의 영향으로 소년은 피아니스트와 우주비행사의 꿈을 꿨다. 하지만 소년의 꿈은 한 순간의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산산조각 나고 만다. 행복했던 가정의 사랑스런 외아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프랑스 이민자 청년으로 피자 배달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배달부 신세, 거기다 배달 일조차 능숙하지 않아 떼이는 처지에, 그 마저도 자신의 보호자인 사람에게 '삥' 뜯기는 신세다. 손을 통해 기억된 행복했던 과거는 이제 손으로 살아가는 이민 노동자의 현실로 이어진다.
그렇게 기억은 비둘기와의 혈투에서 시작해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쓰레기장, 지하철, 아파트로 잘린 손의 여정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온갖 오물들로 범벅이 된 손이 욕조에 자신을 던질 때, 그리고 눈먼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피아노 위에 하릴없이 앉아있을 때, 그건 잘린 손의 여독이자 일용직 노동자로 부유하던 청년의 삶의 피로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꿈이 생긴 이민자 청년 나오펠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이민자 청년 나오펠, 그는 우연히 늦은 밤 피자를 배달하러 간 아파트에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가브리엘라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계기로 찾아간다. 가브리엘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다짜고짜 가브리엘라의 아저씨가 하는 목공소의 조수 일을 자청한다. 나오펠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긴 아저씨 덕분에 새로운 보금자리와 새로운 일, 그리고 꿈이 생긴다.
피자 배달을 하며 실수를 하지 않는 게 하루의 목표였던 나오펠은 가브리엘라를 통해 도서관에 책을 빌리고 목공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옥탑방 건너 폐건물 옥상에 '나무로 만든 이글루'를 완성한다. 알래스타 혹한을 피하던 이글루가 이민자로 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던 나오펠의 첫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글루는 좌절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브리엘라에게 수줍게 고백을 하려하던 나오펠, 하지만 그녀와 어긋남이 그가 애써 가꾸려던 현재의 꿈을 산산조각내고 만다. 그 결과가 바로 '잘려진 손'의 험난한 여정이다.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는 사실 역설적인 제목이다. 손이 갖은 고난을 겪으며 도착한 곳, 그곳에 이르면 관객들은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손을 상실한 이민자 청년, 행복했던 가정에서 피아노를 치며 미래를 꿈꾸던 아이는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 노동자로서의 존재마저 잃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증명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것일까? 손의 열정적인 여정 만큼이나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나오펠이란 청년의 좌절,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건물 벽에 새겨진 그래피티처럼, 나오펠은 도약한다. 손은 상실했지만 몸은 여전히 이곳에 존재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좌절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회라고 말한다. 나오펠에 닥친 좌절, 그는 파리처럼 내내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연민 어린 과거를 끊어내고 비로소 도약한다. 여전히 그는 이곳에 살아있다. 잘린 손의 여정도 마무리된다.
영화는 '잘린 손'이라는 역설적 존재를 통해 프랑스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된 이민자 청년의 삶을 살핀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삶의 이유를 놓친 이들을 살핀다. 소수자의 시선을 넘어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담은 <내 몸이 사라졌다>는 이국의 청년을 통해 결국 우리라는 존재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