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상륙’ 아마존, 해외직구 장벽 낮춰… 네이버-쿠팡과 무한경쟁
31일부터 11번가 통해 ‘직구’
세계 최대 이커머스 업체인 아마존이 31일부터 국내에서 ‘직구(직접 구매)’ 서비스를 시작한다. 미국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도서, 건강기능식품, 의류, 가정용품 등 수천만 개의 상품을 주문하고 배달하는 과정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국가와 업종, 사업자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이커머스 시장이 무한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인 11번가는 31일부터 국내 소비자가 자사 사이트 내에 개설되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통해 미국 아마존의 직매입 상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고 25일 밝혔다.
아마존 스토어를 이용하는 한국 소비자는 아마존이 미 현지에서 실시하는 할인과 프로모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월정액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구독상품’에 가입하면 횟수와 상관없이 구매 상품을 무료로 배송 받을 수도 있다. 배송에 걸리는 기간은일반제품의 경우 6∼10일(영업일 기준), 한국인이 많이 찾는 ‘특별 셀렉션’ 상품의 경우 4∼6일 정도다. 환불을 처리하는 전담 고객센터도 마련된다.
해외직구의 최대 장벽이던 언어, 배송, 반품 문제가 한꺼번에 해소됨에 따라 국내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아마존의 국제 리테일 담당인 사미르 쿠마 부사장은 “한국 소비자들이 수천만 개의 아마존 제품을 빠르게, 무료로 받아볼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1번가’ 손잡고 한국 진출 공식화… 언어-배송 등 기존 장벽 무너져
책-패션 등 수천만개 상품 구매, 유료회원땐 무료배송 서비스
한글로 소비자 상품평 제공도 “한국, 이커머스 무한경쟁 시대에
오프라인만 규제 실효 없어” 지적도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이 11번가와 제휴해 국내 직구 시장에 진출한 것은 기업의 활동 영역을 제한해 온 물리적, 시간적 경계가 무너지면서 유통시장에 무한 경쟁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기업과 소비자가 모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격변기지만 한국은 복합 쇼핑몰에 월 2회 휴무를 강제하는 오프라인 중심의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 규제로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마존은 지난해 연 매출 3860억 달러(약 450조 원)를 낸 세계 최대 이커머스 업체로 저가 신속배송 등을 내세워 온·오프라인 시장을 잠식해 온 ‘유통 공룡’이다. 지난해 11월 11번가와 사업 협력 추진 계획을 발표한 지 9개월 만에 한국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시장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에서는 책, 디지털 기기, 패션, 뷰티, 리빙 관련 수천만 개의 상품이 판매된다. 백화점에서 명품 옷을 입어보고 해외 직구를 통해 옷을 싸게 사는 소비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상호 11번가 대표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해외 직구 대비 압도적 스케일의 상품 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번가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아마존 미국이 직매입해 판매하는 상품 중 통관에 문제가 없는 대부분의 상품들이다.
특히 아마존은 한국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를 좀 더 쉽게 하는 데 주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해외 직구 거래액은 4조677억 원으로 2019년(3조6360억 원)보다 11.9% 늘었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은 언어, 배송비 문제로 직구를 꺼리고 있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통한 구매는 11번가에서 구매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11번가는 미국 아마존에 남긴 소비자들의 상품평도 한글로 제공해 언어 장벽을 없앴다. 기존 직구에서 가장 큰 부담이었던 배송비에서 파격적 혜택을 제공한다. SKT의 새로운 구독 상품인 ‘우주패스’(월 4900원 또는 9900원)에 가입하면 구매 금액과 무관하게 무제한 무료배송(카펫 등 일부 상품 제외)이 가능하다. 월 회원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2만8000원 이상 구매하면 무료다. 배송 기간은 일반 상품 기준 6∼10일이다. 국내 소비자가 자주 찾는 홈리빙 상품, 골프용품 등 16만 개 이상의 상품은 미국 서부에 물류센터를 마련해 배송 기간이 4∼6일로 짧은 편이다.
개인통관고유번호는 한번 입력해 두면 이후 자동 생성되고 결제 단계에서 통관대행수수료 등이 함께 빠져나간다. 반품·환불 과정에서의 지원을 위해 전담 고객센터도 마련했다.
아마존이 현지 업체와의 제휴 형태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침투율이 이미 높아진 데다 네이버(17%), 쿠팡(13%), 이베이코리아(12%) 등 절대 강자 없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현지 사업자와 제휴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경쟁에서 밀렸던 11번가는 아마존을 통해 승부수를 띄울 수 있게 됐다. 직구 무료 배송 등을 통해 유입된 소비자들을 다른 공산품 소비 등으로 확대시킬 경우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어떤 업체도 선보이지 못한 ‘아마존 무료배송’을 무기로 시장 구도에 균열을 내려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11번가는 향후 글로벌 스토어 성과에 따라 개별 판매자들의 제품으로까지 상품군을 확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발표에서는 아마존 미국의 직매입 상품만 서비스 대상이 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명품, 해외 패션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품목 구매가 활발하게 이뤄질 경우 오프라인 매장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 알리바바 이베이 등 글로벌 기업과 네이버 쿠팡 등 국내 기업이 이커머스 시장을 두고 무한 경쟁 중인 반면 정부의 유통시장 규제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 형태와 업계 경쟁이 모두 온라인 위주로 돌아가면서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계만 옥죄는 규제는 실효가 없다”며 “대형 유통몰에 대한 규제를 푸는 동시에 온라인에서도 후발 플랫폼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마존 진출의 파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쿠팡과 G마켓 등이 이미 한국어 직구 서비스를 하는 데다 ‘퀵커머스’라 불릴 정도로 빠른 배송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