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표 앱으로 끊을 줄 몰라, 주말 KTX 이용은 포기
[디지털 세상, 노인은 서럽다]
지난 10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시외버스 승차권 판매 창구 2곳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 1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바로 옆 승차권 무인 발매기 10여 대가 모두 비어 있었지만 다들 줄을 선 것이다. 5분간 줄을 서서 청주행 버스표를 산 김교훈(75)씨는 “무인 기계나 휴대폰으로 샀으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라며 “기계 사용법을 배워보고는 싶은데 버스를 놓칠까 봐 바로 창구로 왔다”고 했다. 터미널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은 아예 스마트폰 앱으로 예매해서 버스 시간에 딱 맞춰 오지, 현장 발권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임봉수(71)씨도 지난달 서울역에서 전북 전주로 가는 KTX 기차표를 직접 끊었다. 임씨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여행을 가는데, 그때마다 서울역에 전화해 잔여 좌석을 확인하고 직접 역으로 가 표를 끊는다. 임씨는 “젊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미리 표를 다 사버리니, 주말에 표 끊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주중에만 여행을 간다”며 “불편한 건 알지만 평생 창구에서 표를 끊어와 이게 익숙하다”고 했다.
요즘 터미널과 기차역을 비롯해 식당·카페 등 곳곳에서 줄을 서는 건 대부분 노인들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원격 주문·예약이 일상화되다 보니 젊은이들은 ‘줄 서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탈 때도 젊은이들은 지하철·버스 앱을 통해 정시(定時)에 맞춰 정류장에 나온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정류장에서 2415번 버스를 기다리던 임모(76)씨는 “젊은 사람들은 집에서 버스 언제 오는지 다 보고 나온다고 하더라”며 “앱을 쓸 줄 모르니 일단 정류장에 나와서 전광판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매월 말이 되면 시중은행 창구는 아파트 관리비, 수도 요금 등 공과금을 직접 내러 온 노인들로 붐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은행 점포 직원은 “무인 공과금 납부기도 있지만 노인 손님들은 대부분 창구로 와서 현금과 고지서를 내민다”며 “30분씩 기다리시는 게 예사”라고 했다. 은행들은 고객 대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방문 예약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모바일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노부모를 대신해 대리 주문·예약해주는 게 신종 효도가 됐다. 김근선(72)씨는 “병원에 갈 일 있으면 멀리 있는 며느리가 택시를 휴대폰으로 잡은 다음, 전화를 걸어 ‘어머니, ○○○○번 택시 타세요’라고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