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앱 깔줄 아는 노인 18%뿐… 디지털 세상이 서럽다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인근에서 만난 정모(83)씨는 “3월에 처음 산 스마트폰”이라며 최신 갤럭시폰을 내밀었다. 홈 화면에는 전화, 문자, 카카오톡, 유튜브 같은 앱 네댓 개가 단출하게 깔려 있었다. 기본 설치 앱을 포함해 전체 앱은 31개. 정씨는 “스마트폰 사니까 처음부터 뭐가 많이 깔려 있던데 그런 건 눌러본 적도 없다”고 했다. 원래 피처폰(일반 휴대폰)을 쓰던 그는 “스마트폰 쓰면 뉴스도 보고, 부동산 매물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해서 자식들하고 같이 가서 샀는데 사용이 너무 어렵더라”며 “결국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앱을 깔아달라고 하고 설명도 들었다”고 했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3.1%로 세계 1위다. 65세 이상 노인도 둘 중 하나(56.4%)는 스마트폰을 쓴다. 스마트폰은 음식 주문부터 쇼핑, TV·영화 시청, 송금·주식투자, 소셜미디어 등 사실상 ‘삶의 전부’와 연계돼 있다. 외국에서 한국의 디지털 수준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본지가 지난 7~8일 서울 강남역, 신도림역 등 시내 곳곳에서 노인 50명을 만나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절대 다수가 스마트폰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 50명 중 스마트폰 이용자는 34명(68%)이었고, 이 중 ‘앱을 스스로 깔 줄 안다’고 답한 이는 9명뿐이었다. 이들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 평균 개수는 49개였다. 스마트폰을 처음 살 때부터 제조사·통신사가 35개 안팎의 앱을 기본 설치하는 점을 감안하면 노인들이 자체적으로 설치·이용하는 앱은 많아야 15개 수준이다. ‘스마트폰을 팔길래 샀을 뿐 제대로 쓸 줄은 모른다’는 답변이 많았다. 가장 많이 쓰는 앱을 물어보니, 전화·문자·카카오톡·유튜브·사진 순이었다.
같은 기간 20대 청년 50명의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평균 앱 설치 개수는 128개였다. 노인(49개)의 2배 이상이다. 노인들은 금융, 쇼핑, 소셜미디어 등 활용 못 하는 분야가 수두룩했지만, 20대 청년들은 동종(同種) 분야에서만 앱을 4~5개씩 골고루 깔고 돌려가며 썼다. 직장인 이승환(26)씨는 카카오톡·슬랙·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4개의 소셜미디어를, 대학생 강모(22)씨는 왓챠·넷플릭스·유튜브·티빙·웨이브 등 동영상 앱만 5개를 쓰고 있었다. 패션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성준(28)씨의 스마트폰에는 의류 쇼핑 앱 4개를 비롯해 총 240개의 앱이 깔려 있었다.
앱 개수의 차이는 ‘삶의 격차’를 뜻한다. 20대 청년이 집에 앉아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10초 만에 송금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문 앞에 배달시켜 먹을 때 노인들은 스마트폰만 손에 쥐었을 뿐 사회에서 고립돼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김모(76)씨는 “이전엔 전화를 걸거나 배달원한테 얘기하면 됐던 담배 주문도 이젠 앱으로 하라고 한다”며 “아들이 없으면 이젠 20년 넘게 해오던 장사도 못 할 판”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최근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74.1%는 “정보제공 서비스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져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노인들은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앱 스토어’의 문턱부터 너무 높다고 말한다. 우선 구글·애플·삼성 계정(ID)을 만들고, 신용카드 번호 등 결제 수단을 입력해야 한다. 자녀들이 대신 해주는 경우가 많다 보니 ID, 비밀번호를 번번이 잊어버리기도 한다. 또 스마트폰 자체의 글자·화면 크기는 키울 수 있지만, 개별 앱에선 크기 조절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유튜브’나 ‘배달의민족’ 앱에 들어가면 보이는 작은 아이콘, 동영상 제목 등은 두 손가락으로 아무리 벌려도 확대되지 않는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노인들이 디지털 기기 사용을 못하는 것은,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가족 해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안 그래도 삶을 버겁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사실상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