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이라던 네이버·카카오는 어쩌다 ‘젊은 꼰대’ 기업으로 전락했나
“대외적 이미지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젊은 꼰대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구멍가게.”
지난달 28일 ‘블라인드’의 네이버 게시판에 이 회사 직원이 올린 글이다. 블라인드는 같은 회사 직원끼리 익명으로 글을 쓰고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 익명성 덕분에 직장인들이 회사나 상사 비판·험담을 하는 용도로 많이 쓴다.
지난 1일 네이버 리스크관리위원회는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는 물론, 그 윗선인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에 대한 직무 정지를 권고했고, 사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네이버 노동조합도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며 “회사 내 인사 제도 결함으로 인해 고인이 힘든 상황을 토로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한 부분이 있다면 회사가 개선할 수 있도록 적극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IT 업계 안팎에서도 이 사건을 두고 ‘그동안 누적된 IT 회사 조직 문화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극단적 선택 못 막은 인사 시스템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고 하더니 누굴 만나고 다닌 건지 모르겠다.”
네이버 직원 유연정(가명)씨는 “회사 인사팀에서 직원 고충을 수렴한다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고 이름 붙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열심히 홍보하더니 결국 사람 죽는 걸 막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는 국내 대표 IT 기업답게 창사 초기부터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추구했다. 부장·과장 등 기존의 회사 직급 체계를 없애고 임원급 외에는 직원끼리 ‘님’으로 부르도록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유씨가 얘기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인사팀 직원들이 개발·서비스 같은 직군이나 입사 연차별로 7~8명씩 소수의 인원들만 따로 인터뷰해서 수렴한 의견을 경영진에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더해 ‘네이버 반상회’라는 이름으로 내부 직원들이 익명으로 각종 고충이나 민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프로그램이 A씨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 네이버 개발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A씨에 대한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은 사내에서 많은 사람이 문제라고 여러 차례 경영진에게 건의했던 인물”이라며 “여러 경로로 직원들 불만이 전달됐지만, 결국 최고 경영진이 그걸 묵살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사내 여론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네이버만 이런 내홍을 겪는 게 아니다. 카카오는 올해 초부터 인사 평가부터 성과급, 직원 차별대우 등 여러 문제가 잇달아 터지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2월엔 카카오의 한 직원이 회사의 인사 평가 시스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암시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린 일이 있었다. 문제의 인사 평가 항목 중에 ‘함께 일하기 싫은 직원을 꼽으라’는 질문이 포함된 것이 화근이었다. 카카오 전 직원 이모씨는 “회사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업무 성과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회사가 일부 임원급 직원들에게만 고급 호텔 숙박권을 지급하는 식으로 차별 대우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에서 반발이 커졌다. 이에 대해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내부망에 “회사의 성장과 혁신에 기여한 동료들을 배려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고자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글을 올렸지만, 이 글에 카카오 직원들 800여명이 ‘싫어요’를 누른 것으로 알려졌다.
끼리끼리가 회사를 망친다
“핵심은 ‘끼리끼리’입니다.”
카카오에서 5년 동안 일한 김여준(가명)씨는 “회사가 커지면서 핵심 경영진끼리 의사 결정을 하는 문화가 생긴 게 가장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카카오 인사시스템이나 직원 차별 대우에 대해 직원들의 반발이 커진 이유가 창사 초기와 달리 최고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여러 결정을 밀어붙인 탓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예전에는 카카오 내부망을 통해 최고 경영진이 쓴 모든 글을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었다”며 “회사가 커지면서 CEO나 최고 경영진이 내린 중요한 결정을 극소수의 ‘이너 서클’만 보게 되니까 일반 사원들은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끼리끼리’는 카카오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IT 대기업은 창업자뿐 아니라 핵심적인 개발 인력들이 소수의 국내 명문대 이공계 출신이라서 이들끼리 일종의 ‘이너 서클’을 형성하고 외부인은 배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네이버 직원 이수진(가명)씨는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독점하는 건 창업자와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많다”며 “A씨의 가해자도 결국 그 대학교 출신이라서 회사에서 살아 남은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IT 기업들의 조직 문화가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 구조를 추구한다는 상찬이 많았지만, 이런 기업들 중 다수가 대기업이 되면서 예전의 장점을 잃어버렸단 지적도 많다. 성장하는 기업이라 업무 강도는 높은데, 그에 상응하는 직원 복지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준 역시 보통 기업보다 훨씬 높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2018년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전 의원이 IT산업노동조합과 함께 IT 업계 노동자 503명을 대상으로 노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는 응답자가 19명(3.78%), 실제로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4명(2.78%)이 나올 정도였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일반 성인 대상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를 한 결과, ‘최근 1년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0.1%임에 불과했다. IT 기업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다른 회사원들에 비해 20배 이상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혁신이란 명분으로 일반 대기업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인사제도를 도입했다가 오히려 직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게임회사 넥슨은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때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 일을 맡긴다. 그런데 해당 게임 개발이 중단되면 이 프로젝트 팀원들은 사내 다른 팀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야 한다. 사내에서 구직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최근 넥슨은 그런 식으로 사내 구직활동 기간이 1년이 넘은 직원들 16명을 3개월 대기 발령하고 임금 75%만 지급하기로 결정해 직원노조를 중심으로 “부당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IT 대기업들이 기존 재벌 대기업과 달리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어서 내부 문제가 여과 없이 대외로 공개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기업들은 기존 대기업에 비해 20~30대 청년 직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런 젊은 직원들은 과거 기성세대에 비해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불합리한 회사 내부의 문제에 더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문제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측면 역시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기업은 규모에 따라 걸맞은 조직 문화가 있는 법인데 작은 스타트업 시절의 기업 문화를 대기업이 된 후에도 유지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IT 업계 특유의 수평적인 조직의 장점을 살리면서 과로나 이너서클 문제같이 IT 업계 고질적인 병폐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