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동맥 막힌 50대 의사가 건강 찾은 비결은?
김상훈 기자 입력 2021-05-07 11:33수정 2021-05-07 13:51
장용주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심장동맥(관상동맥) 협착이 발견된 이후 9년째 매일 50~60개 층 계단을 오른다. 계단 오르기와 단 음식 줄이기를 통해 건강을 되찾은 장 교수는 “이제 계단 오르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장용주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58)는 오전에 출근하면 지하 주차장에서 연구실이 있는 10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다. 점심시간에는 일부러 지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연구실까지 걸어 올라간다. 퇴근하면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이렇게 매일 50~60개 층의 계단을 오른다. 9년째 이어지고 있는 습관이자 운동법이다. 처음에 말리던 아내도 요즘엔 함께 아파트 계단을 오른단다. 장 교수는 “계단 오르기는 삶의 일부가 됐다”며 웃었다.
장 교수는 코 기형 수술이나 변형된 코의 재건 수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의사다. 2005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기 전까지 21개국에서 의사들이 그의 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방한했을 정도다. 장 교수는 또한 유럽안면성형재건학회와 미국안면성형재건학회의 굵직한 상을 모두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유명한 만큼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줄 알았다. 장 교수는 “물론 일반적인 건강관리의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뇨병 유전자와 싸우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부친과 할머니, 숙부가 모두 당뇨병 환자였다. 그러니 당뇨병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
그렇다 하더라도 9년 넘게 매일 50~60개 층의 계단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12년에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생겼다고 한다.
2003년 건강검진에서 공복 혈당이 당뇨 전 단계로 나왔다. 하지만 또 다른 당뇨병의 지표인 당화혈색소는 정상 수준이었다. 2004년에는 당화혈색소마저 당뇨 전 단계로 돌입했다. 경미한 수준의 지방간도 보였다.
걱정은 됐지만 두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수영도 꽤 오래 했고, 헬스클럽에서 달리기도 매주 2, 3회 하고 있었다. 과식하는 편도 아니었다. 콜라를 좀 마시기는 하지만 하루에 한 병 정도에 불과했다.
2012년 건강검진 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심장동맥(관상동맥) 두 곳에서 중등도 이상의 협착이 발견됐다. 협심증으로 악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혈관질환의 위험 요인으로는 고혈압, 흡연, 과체중 등을 꼽는다. 장 교수는 그 어느 요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장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장 교수는 2003년 이후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했다. 당뇨 전 단계, 즉 공복혈당장애를 방치한 게 원인이란 결론을 내렸다. 겉으로는 날씬해 보이지만 내장비만이 진행됐고, 그로 인해 심장동맥 협착과 지방간이 생겼다는 것.
장 교수는 생활습관의 변화가 절실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우선 단맛 나는 음식부터 줄였다. 콜라를 먼저 끊었다. 주스와 과자, 달콤한 빵도 멀리했다. 이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병원 지하 1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연구실이 있는 10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그 전에는 오후 4시 무렵이 되면 피로와 허기가 심해 간식을 자주 먹었었다. 그날은 달랐다. 퇴근할 때까지 간식도 생각나지 않았고 몸도 쌩쌩했다.
사실 2009~2012년 건강검진 때 인슐린 저항성이 정상 수치를 초과했다. 인슐린은 당을 에너지원으로 꺼내 쓰도록 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저항성은 인슐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으로써 혈당 조절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을 뜻한다. 심혈관질환,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 교수가 느낀 피로와 허기의 원인이 이것이었다.
그날 이후 장 교수는 매일 계단을 올랐다. 아파트에서는 일부러 고층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집이 있는 8층까지 엘리베이터로 내려갔다. 한 번 운동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4~5분. 운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식사 직후 10~20분 이내에 계단을 올랐다. 그래야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단 음식을 크게 줄이고 계단 오르기를 시작한 지 1년. 그 사이에 체중이 7kg이나 빠졌다. 점심 식사 후 4~5시간이 지나면 나타나는 허기도 거의 사라졌다. 다시 1년이 지난 후에는 지방간까지 완전히 사라졌다. 공복 혈당과 당화혈색소 수치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인슐린 저항성 수치가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요즘에는 4시간에 이르는 긴 수술을 해도 체력적으로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4년 전부터는 점심을 ‘소식(小食)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생연어, 구운 연어, 돼지고기를 다진 녹두 빈대떡, 햄버그스테이크를 요일별로 돌아가며 먹는다. 이 메인 요리와 함께 고구마나 통밀빵을 먹는다. 추가로 매일 무가당 요구르트와 토마토, 견과류를 곁들인다.
장 교수는 “단백질 함량을 높이려고는 하지만 지방이나 탄수화물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혈당지수(GI)가 낮거나 중등도인 것으로 메뉴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단을 바꾸자 인슐린 저항성에 따른 허기를 전혀 느끼지 않게 됐다. 점심 식사를 끝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걸어 올라오기 위해서다.
장 교수는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먹는 편이다. 출근하기 전에는 호밀빵, 두부, 고기, 채소 등을 간단히 먹는다. 저녁에는 밥을 먹는다. 예전보다 밥의 양을 절반으로 줄였고 현미밥으로 바꿨다. 설탕을 줄이기 위해 채소는 드레싱 없이 먹는다. 장 교수는 “섭취 열량을 줄이려 하기보다는 단 음식이 없는 식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장용주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단 음식의 폐해를 특히 강조했다. 단맛이 강하게 나는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탄수화물 중독을 넘어 비만과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특히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음식을 줄이거나 가급적 끊어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장 교수 자신이 과거 그런 사례였고, 단 음식을 끊고 나서 건강을 되찾았다. 장 교수는 탄수화물 음식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탄수화물을 섭취하더라도 과당이 덜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 포도당과 과당은 모두 탄수화물의 한 종류다. 포도당은 쌀이나 녹말 채소에 많다. 포만감을 느끼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혈당은 혈류에 들어 있는 포도당의 양을 가리킨다. 과당은 단맛이 더 나는 탄수화물이다. 과일이나 꿀, 청량음료에 많다. 포도당과 달리 우리 몸의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않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간에서 지방으로 쌓인다. 이 경우 지방간과 내장 지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인슐린 저항성을 올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 교수가 단맛이 강한 음식에 이 과당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당을 줄여야 인슐린 저항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 정 교수는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혈당지수(GI)가 낮은 음식을 권했다. 혈당지수는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이 상승하는 속도를 0~100으로 수치화한 지수다. 혈당지수가 낮으면 음식을 먹은 후 당질이 천천히 흡수된다. 따라서 혈당의 변화가 적다. 하지만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은 당질이 빨리 흡수되기 때문에 혈당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러면 인슐린의 과도한 분비를 촉진시키고, 이는 다시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게 된다. 혈당지수는 가공된 탄수화물일수록 대체로 높다. 완전히 도정한 흰쌀밥은 90을 넘는다. 반면 보리밥이나 현미밥은 60~70에 불과하다. 빵도 흰빵보다는 통밀빵의 혈당지수가 낮다. 케이크, 구운 감자, 떡, 사탕 등은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