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쿠팡이 증명한 ‘속자생존’ 부메랑 되나
[2650호] 2021.03.22
▲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지난 3월 11일(현지시각) 쿠팡 배너가 뉴욕증권거래소 정면을 장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
“누군가에게는 천재이지만 ‘와일드’한 사람일 거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와일드하지만 ‘천재적’인 사람일 거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겪어본 사람들은 그의 리더십을 ‘압박’이라고 표현한다. 성과가 나올 때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만의 스타일 탓이다. 김 의장은 직원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길 원한다. 쿠팡에서 약 4년을 일했던 A씨는 “김 의장은 ‘지금보다 고객들이 100배 더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세요’라고 주문하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2배, 3배 더 좋게 만들라는 목표치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일인데 100배라는, 보통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목표치를 제시받는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쿠팡에서 일한다는 건 이런 방식의 ‘각성’을 요구받는 일이다.
김 의장을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와일드’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이런 코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쿠팡을 떠났다. A씨는 “쿠팡이 한창 성장할 때 영입한 삼성전자 출신들이 다수 떠났는데, 이전 직장과 너무 다른 쿠팡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와일드하지만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보다 그가 보여준 비전을 믿고 따르며 압박을 견뎠다. 쿠팡에 경력 개발자로 들어와 PO(Product Owner)로 일했던 B씨는 그곳에서 했던 업무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한창 성장하는 곳이다 보니 나 역시 큰 프로젝트를 여러 개 할 수 있었고 론칭도 시켰다. 압박도 엄청나지만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내가 성장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그는 현재 이직한 커머스 기업에서 PM으로 꽤 인정받고 있는데 업무 역량의 상당 부분이 쿠팡에서 축적된 거라고 인정했다.
베일에 싸인 쿠팡의 매출은 13조원
쿠팡에는 몇 가지 리더십 원칙이 있고 그것을 임직원들의 길잡이로 삼는다. 그중 하나가 ‘Aim High and Find a Way’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라’는 건데, 그 목표치가 젊은 기업답게 엄청나게 높다. 목표 달성을 위해 강하게 압박하는 김 의장의 리더십을 언급한 건 이것 자체가 쿠팡의 조직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0년 8월 설립된 쿠팡의 초창기 목표 역시 높았다. 2011년 8월, 1주년을 맞은 기자회견에서 김 의장은 “한국에서 성공한 쿠팡 브랜드를 갖고 2년 내 나스닥에 직접 상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은 무리였고 지난 10년간 영업이익조차 내지 못했기에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치부했다. 그런 편견을 뚫고 2021년 3월 11일(현지시각) 미 뉴욕 증시에 쿠팡은 성공적으로 상장됐다. 책정된 공모가(35달러) 기준으로 평가받은 가치는 약 72조원. 쿠팡이라는 조직 자체의 목표를 높이 설정했고 결국 달성한 셈이다.
그간 쿠팡은 엄격한 비밀주의 탓에 베일에 가려 있던 부분이 많았다. 특히 경영 상황을 보여주는 숫자들은 과도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공개되지 않았다. 쿠팡은 자신들의 그 어떤 데이터도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 쿠팡을 다루는 애널리스트들도 보고서에 ‘실적 추정치는 정확도가 낮다’는 부연설명을 넣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상장을 한다는 건 곧 공개를 뜻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S-1 증권거래신고서’를 통해 쿠팡의 숫자들이 처음으로 자세히 드러났다. 그리고 여기에는 쿠팡이 11년 동안 달성한 결과들이 녹아 있다.
쿠팡의 2020년 연 매출은 119억6734만달러(약 13조5171억원)로, 2019년 62억7326만달러와 비교해 무려 90%가 넘게 증가했다. 영업손실은 꾸준히 줄었다. 2018년 10억5241만달러(약 1조1886억원)였던 영업손실은 2019년 6억4384만달러(약 7272억원), 2020년 5억2773만달러(약 5961억원)였다. 최근 2년 새 절반 정도 손실을 줄인 셈이다. 매출은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우려했던 적자는 절반가량 줄었다.
2020년 말을 기준으로 최근 3개월 동안 쿠팡에서 하나라도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1485만명이었다. 2018년 말(916만3000여명), 2019년 말(1179만1000여명)과 비교해 보면 증가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고객 한 명은 분기당 평균 256달러(약 28만9000원)를 썼다. 2018년(127달러)과 2019년(161달러)보다 더 가파른 지출이다.
쿠팡 소비자 ‘해가 갈수록 돈을 더 쓴다’
엄청난 성장세와 더불어 흥미로운 건 코호트(cohort) 분석 자료다. 코호트는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 사용자들을 뜻한다. 이번 신고서에서 쿠팡은 2016~2019년 각각의 해에 쿠팡을 이용하기 시작한 고객들을 그룹으로 묶어 연간 구매금액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여줬다. 2016년 처음 쿠팡을 이용하기 시작한 고객은 다음 해 1.37배를 더 소비했고 4년이 지난 2020년에는 연간 구매금액이 2016년에 비해 3.59배나 증가했다. 2017년에 처음 쿠팡에 진입한 고객은 다음 해 1.8배를 더 소비했고 3년 후인 2020년에는 3.46배의 돈을 썼다. 2018년에 쿠팡에 들어온 고객은 2019년 1.98배 더 소비했고 2020년에는 3.06배 더 지출했다. 마지막으로 2019년에 처음 쿠팡에 진입한 고객은 2020년 2.19배를 더 소비했다. 이 자료는 쿠팡에 발을 디딘 고객은 해가 갈수록 구매 금액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근으로 올수록 1년 뒤 지출액이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서비스는 금방 도태되는 시대다. 커머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만약 쿠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신할 곳은 많다. 반면 거꾸로 해가 갈수록 소비가 증가한다는 건 니즈에 매우 적합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인터넷의 산파라고 평가받는 허진호 세마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VC부문 대표는 한 커뮤니티에 쓴 글에서 “나는 마켓컬리와 쿠팡 외에는 이러한 코호트 리텐션(retention·고객 유지) 패턴을 본 적이 없고, 쿠팡의 이 데이터를 보면서 쿠팡의 가치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수많은 유니콘이 IPO를 위해 신고서를 제출할 때 코호트 데이터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쿠팡의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데이터라는 뜻이다.
데이터가 말해주듯 쿠팡의 자신감은 마치 개미지옥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객들의 충성도에서 나온다. 쿠팡에서 디렉터로 일했던 C씨는 “쿠팡을 다른 커머스 기업이 이기기란 쉽지 않다고 본다. 고객의 ‘시간’을 잡으면서 배송 만족도를 너무 높여 놨다. 과거에는 언제 도착할까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바로 물건을 받게 되면서 온·오프라인 소비의 경계가 무너졌다. 다른 커머스가 지금 쿠팡의 수준을 따라오는 건 벅찰 거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쿠팡에 보여주는 충성도는 ‘빠름’에 대한 만족도로 귀결된다. 배송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걸 쿠팡은 일찍 깨달았고 적자를 감수하며 자금을 쏟아부었다. 지금은 쿠팡 성장의 핵심역량이 돼버린 직매입을 통한 ‘로켓배송’은 그렇게 탄생했다. 쿠팡에서 온라인 상거래를 반복적으로 유도하는 것도 결국 빠른 배송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압도적인 빠름을 한번 경험한 사람들은 쉽게 쿠팡을 떠나지 못한다.
속도가 옳은 방향인 걸 깨달을수록 쿠팡은 빠름에 더욱 집착했다. 일단 빠르게 만들기 위해서 적자를 감내해가며 창고를 늘렸다. 쿠팡은 S-1 신고서에서 자신을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물류회사’라고 소개했다. 30개 도시에 15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갖고 있는데 그 규모를 합치면 2500만㎡(756만여평)다. 가장 인상적인 데이터는 국민의 70%가 쿠팡의 물류센터로부터 약 11㎞(7마일) 이내에 있다는 점이다. 대략 차로 1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34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2000명의 개발자가 만든 똑똑한 물류
물류센터로 얽힌 촘촘한 네트워크를 넘어 쿠팡의 빠름은 그들의 창고 안을 들여다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쿠팡을 e-커머스 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김범석 의장은 쿠팡을 ‘플랫폼 기업’으로 정의한다. 그가 정의하는 플랫폼은 단순하다. 메일을 보고, 혹은 검색해서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주소창에 ‘coupang.com’을 타이핑해서 들어오는 곳이길 원했다. 사람들이 네이버나 구글에 흔히 접속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쿠팡이 플랫폼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는 건 e-커머스 기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2000명가량 되는 개발자의 존재가 보여준다. 쿠팡 전체 사무직 인원의 40% 정도가 개발자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은 물류창고 속으로 들어왔다.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에 위치한 고양 물류센터의 면적은 13만2231㎡(약 4만평)이다. 만약 주문받은 물건을 이곳에서 찾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보통의 물류센터라면 창고형 마트처럼 물품별로 구역을 정해 보관한다. 로켓 배송이 가능한 품목만 수백만 가지다. 만약 전통의 물류 방식을 따르자면 운이 좋으면 가까운 곳에서 물건을 집어올 수 있지만 반대편 끝까지 다녀올 경우는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물건이 창고에서 나가는 시간이 제대로 통제될 수 없다.
반면 쿠팡의 물류 시스템은 다르다. 시간 단축은 개발자들의 산물인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가 핵심 역할을 한다. 주문 물건은 창고의 구역에 와르르 모여 있는 대신 곳곳에 일정량이 분산돼 있다. 창고 관리시스템인 랜덤 스토(Random stow·무작위로 넣는다)인데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속에 나름의 규칙이 있는 건 빅데이터와 AI 덕분이다. 주문이나 입출고 빈도 등을 모두 계산해 물건이 놓일 장소를 알려준다. 물품 현황과 위치 등은 직원에게 전송되기 때문에 빠르게 찾아 창고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빠른 배송의 또 다른 축인 배송 인력에도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상시 배송인력인 쿠친(이전 쿠팡맨)과 아르바이트 성격인 쿠팡플렉스에게 배정되는 물량과 최적 이동 경로를 제시하는 것도 이들 기계의 몫이다. 사람이 판단해 동선을 짜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정하는 대로 따른다. 이처럼 주문부터 배송까지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건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류센터를 깔고 지금의 솔루션을 개발하며 안착시키는 데 여러 해 동안 조(兆) 단위의 돈이 들어갔다.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다른 기업들이 쉽게 투자하기 힘든 금액이다”라고 C씨가 보는 이유다.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하면서 쿠팡이 추가로 얻게 된 자금은 약 5조원이다. 일각에서는 이 실탄을 활용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신사업에 투자할 거라는 말도 있다. 배달대행서비스인 우버 이츠와 핀테크인 쿠팡페이 등을 확대하겠다고 S-1 신고서에 밝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쿠팡플레이’를 시작하면서 OTT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콘텐츠 업계에서는 주도적 플레이어가 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CJ ENM 관계자는 “넷플릭스에다 디즈니플러스까지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라 지금 콘텐츠 산업은 e-커머스보다 더 격렬한 글로벌 전쟁터가 됐다. 쿠팡이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고 말했다.
11㎞ 이내에 국민 100% 두겠다
한 해외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쿠팡이 몇 가지 주력 사업을 꼽고 있는데 그 자금의 대부분은 풀필먼트(Fulfillment) 고도화 사업에 투입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물류 사업에 다시 쏟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쿠팡은 전국에 7개 풀필먼트 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이미 밝혔다. 국민의 100%를 11.26㎞(7마일) 이내에 둬 배송의 속도를 지금보다 더 빠르게 하겠다는 숙원 사업을 이번 기회에 해결하려고 한다.
‘풀필먼트’는 쿠팡이 제출한 S-1 보고서에서 총 115번 등장하는 단어다. 물류센터에 상품이 입고, 보관, 포장, 출고되기까지의 과정을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쿠팡이 앞으로 더 많은 수익과 더 빠른 속도를 잡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쿠팡에서 볼 수 있는 ‘로켓제휴’ 서비스는 쿠팡이 직매입한 물건을 배달하는 ‘로켓배송’이 아니라, 쿠팡에 입점한 셀러들이 파는 물건이다. 쿠팡은 자신들이 막대한 적자 끝에 만든 풀필먼트를 플랫폼으로 활용하며 셀러들의 물류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다. B2C 배송·물류 설비의 B2B 서비스 확장판이다.
이미 쿠팡은 성장과정에서 아마존의 전략을 답습한 부분이 많다. 현재 밀고 있는 풀필먼트 서비스 역시 아마존이 이미 걸어온 길이다. 아마존은 풀필먼트를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시켰고 그것을 활용해 직매입 물건뿐만 아니라 셀러들을 아마존 생태계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셀러들 입장에서는 생태계에 들어오는 게 쉬웠지만 막상 빠져나가긴 어려웠다. 아마존을 통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판매가 쉽지 않으니 그 생태계에 그대로 묶여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아마존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는데, 지금 쿠팡 역시 같은 길을 걷는 모양새다. ‘우리 물류시스템을 통하면 전국에 엄청 빠르게 물건을 배송할 수 있으니 쿠팡 생태계로 들어오라’는 전략으로 쿠팡은 수익과 속도를 모두 잡으려고 한다. 현재 약 200조원에 달하는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이 차지하는 비중은 13% 정도인데 식료품·음식배달·여행 등 쿠팡이 서비스 대상으로 삼고 있는 카테고리를 더할 경우 약 500조원 시장이다. 쿠팡은 아직 침투할 곳이 많이 남았다고 본다.
시간의 단축도 가능하다. 다른 업체들이 배송 시간을 줄인다면 쿠팡은 더 빠른 속도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시간’ 단위의 새로운 커머스를 선보인다는 뜻인데 과거 쿠팡 경영진은 1~2시간 이내 배송을 주장했고 실제로 2015년에는 경기도 고양시를 대상으로 2시간 이내 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있다.
쿠팡의 성장을 점치는 또 다른 근거는 비전펀드의 엑시트 전략이다.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30억달러를 투자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최근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애널리스트인 아나 라이는 “소프트뱅크가 쿠팡을 빠르게 엑시트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쿠팡이 가지는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 그에 따른 전망이었다.
네이버 중심으로 형성된 反쿠팡
최근 경쟁자들의 움직임은 쿠팡의 상장 이후 전략이 꽤 위협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쿠팡은 S-1 상장신고서에서 ‘경쟁자들로 인한 점유율 저하’를 투자 주의사항으로 명시했다. 역시 가장 신경 쓰이는 쪽은 포털 1위 네이버다. 쿠팡의 가치가 세간의 평가보다 높았던 건 미래 성장성이 반영됐기 때문인데, 그걸 꺾을 수 있는 온라인 점유율을 가진 곳이 네이버다. 그리고 네이버 역시 커머스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제3자 플랫폼으로 중개만 해오던 네이버도 커머스 영역의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오프라인 물류업체와의 제휴다. 반대로 오프라인 물류업체는 네이버의 셀러와 플랫폼, 데이터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네이버를 중심으로 물류가 결합하는 형태로 연대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3000억원 규모의 상호 지분을 교환했다. CJ대한통운은 곤지암에 자체 풀필먼트 물류센터를 갖고 있다. 현재 네이버 브랜드스토어에서 판매하는 LG생활건강 등 8개 기업의 상품은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를 활용해 24시간 내 배송이 가능하다.
지난 3월 16일에는 2500억원의 지분을 맞교환하며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이 서로 손을 잡았다. 신세계 역시 이마트의 자동화 물류센터 네오(NE.O)를 통해 전 과정을 자동화 처리하고 있는 풀필먼트 물류센터를 보유 중이다. 김포와 용인 등에 자리한 풀필먼트센터는 신선식품 배송에 특화돼 있다. 신선식품은 네이버의 새로운 서비스 품목이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는 이마트의 ‘쓱배송’과 결합할 수 있다. 네이버에서 주문한 신선식품의 당일 배송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네이버페이나 포인트 등 네이버의 핀테크 생태계 안으로 신세계 등이 참여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하나씩 부족한 부분들이 있던 업체들끼리 서로 구멍을 메워주는 연대”라고 평가했다.
온라인 결제대금 측면에서 볼 때 쿠팡은 2인자다. 1인자는 네이버다. 네이버가 풀필먼트를 갖추는 건 쿠팡에 위기다. 쿠팡의 가장 강점인 배송의 경험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고객 경험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이게 희석될 경우 결국 남는 건 가격 경쟁력과 플랫폼의 힘이다. 이건 네이버가 강한 부분이다. 네이버의 전략은 중국 알리바바와 닮았다. 물류센터 없는 커머스 플랫폼이었던 알리바바는 최근 인타이(백화점), 쑤닝(가전 유통업체), 싼장쇼핑(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소매업체와 전략적 협력을 맺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G마켓과 옥션을 보유한 이베이코리아의 향방도 쿠팡에 변수다. 지난해 19조원의 거래액을 기록한 이베이코리아는 네이버, 쿠팡과 함께 국내 e-커머스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곳이다. 올 초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흥행을 우려했다. 결제금액은 크지만 매출이 작아 수익성이 낮다는 면에서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아서다. 게다가 5조원이라는 매각가도 부담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쿠팡이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입성하면서 e-커머스 기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게다가 5조원을 확보한 쿠팡의 공세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업계에 만들어졌다. 지난 3월 16일 열린 예비입찰에서 롯데·신세계·SK텔레콤 등이 일단 도전장을 내며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흥행에 성공했다. 어느 곳이라도 이베이코리아를 잡는다면 쿠팡으로서는 네이버에 이은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는 셈이다. 결국 쿠팡의 ‘빠름’을 누가 따라잡을 것인가가 이 전쟁의 관전 포인트다.
쿠팡이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
속도가 부른 ‘예고된 과로사’? ‘노무 이슈’ 계속돼
쿠팡은 최근 1년간 소속 택배 노동자인 쿠친을 비롯해 직원들이 연달아 사망하는 리스크를 겪었다. 배달기사의 과로사 논란도 있었다. 쿠팡 상장을 앞둔 지난 3월 6일에는 쿠친을 관리하는 캠프리더(CL)가 숨졌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대책위)는 “처참한 심야·새벽배송이 부른 ‘예고된 과로사’가 또 벌어졌다”고 비판했고 쿠팡은 과도한 업무 배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배송 현장의 사고가 반복되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여론이 모인다. 이런 반복은 쿠팡이 지금도 정책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노무법인 유앤의 안진수 공인노무사는 “관련 입법이 이뤄질 경우 법은 사용자 의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쿠팡의 입장에선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쿠팡 관계사의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4만8541명이었다. 이 중 상당수는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쿠팡 풀필먼트에서 일하는 배송인력으로 추정된다. 뉴욕 증시 상장 뒤 김범석 의장이 5년간 고용 인원을 5만명까지 늘리겠다고 했는데 늘어나는 인원 역시 쿠친을 비롯한 현장 인력이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노무 문제를 등한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다. 2019년 쿠팡은 3인 대표 체제를 도입하면서 대우차 시절 노무를 담당했던 고명주씨를 대표로 임명했다. 노무 전문가가 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쿠팡의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과거 쿠팡은 노무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식 노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고명주 대표의 경우는 전문가니까 대표로 올려서 힘을 주고 강화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쿠팡 뜻대로 잘 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명주 전 대표는 2020년 말 대표직에서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