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가상세계’...메타버스 경제, 산업의 판을 바꾼다·
입력2021.03.08 07:39 수정2021.03.08 07:39
-SNS대신 3D 가상세계로 가는 Z세대
-가상세계서 콘서트 관람하고 아바타 일상 브이로그 찍어
-게임.엔터 넘어 의료.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 가상현실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미래를 그렸다./영화 스틸컷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타고 현실 세계를 초월한 가상 세계가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가 유튜브를 제치고 1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됐고 네이버Z의 AR 아바타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제페토’는 전 세계 2억 명의 사용자를 메타버스 세계로 끌어들였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게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가상 현실 속에서 대학 입학식이나 신입 사원 연수에도 이용됐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모바일을 이을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으로 메타버스를 꼽으며 메타버스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메타버스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게임을 넘어 취미 활동, 업무, 생계 활동 등 모든 영역이 메타버스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일상이 모바일 안에서 가능해진 것처럼 메타버스의 확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글로벌 Z세대 사로잡은 로블록스, 워너브라더스에서 5조 투자유치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은 포트나이트를 통해 콘서트를 개최했다./ 유튜브 영상 캡쳐
#“메타버스는 인터넷의 다음 버전이다. 사람들은 메타버스로 일하러 가거나 쇼핑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버스를 차세대 인터넷으로 꼽았다. 에픽게임즈는 글로벌 인기게임 ‘포트나이트’의 제작사다.
‘포트나이트’는 단순히 싸우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과는 다르다. 지난해 4월 미국의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은 ‘포트나이트’ 내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전 세계 1230만 명이 동시에 게임 안에서 춤을 추고 날아다니며 공연을 즐겼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지난해 9월 ‘다이나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에 최초 공개하며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전 세계 3억5000만 명이 이용하는 ‘포트나이트’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진화하자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포트나이트’를 최대 경쟁자로 꼽기도 했다.
#지난 1월 네이버 신입 사원 191명은 자사 AR 플랫폼인 제페토에서 만나 신입 사원 연수를 진행했다. 각자의 아바타로 가상 현실에 접속해 3D 맵으로 개설된 ‘그린팩토리(네이버 사옥)’를 둘러보고 각종 미션을 수행했다. 대면 만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더 깊게 친해질 수 있도록 아바타를 통해 ‘스키점프’ 팀 대결을 펼치고 사진을 찍는 등 다양한 팀빌딩 활동을 진행했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3차원의 가상 세계다. 단순 가상 현실보다 한 차원 더 진보한 개념이다. 화면을 통해 가상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바타 등을 활용해 가상 세계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가치 창출과 교류가 가능해졌다.
지난 몇 년간 VR과 AR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혀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AR과 VR로 큰 사업성을 얻거나 이를 활용한 플랫폼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최근에는 VR과 AR 생태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VR과 AR 기술이 빠른 통신 속도, 그래픽 기술의 고도화, 높은 해상도 등 기술 진화와 만나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여기에 최대 약점이었던 관련 콘텐츠까지 다양해지면서 VR과 AR의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
이용자가 늘고, 생태계가 조성되면서 메타버스 경제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2025년 315조원(28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VR과 AR을 포괄하는 확장현실(XR)의 글로벌 경제 파급 효과는 520조원(4764억 달러) 정도로 전망된다.
메타버스를 파고든 사용자들은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다. 10대들 사이에서는 이미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10대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플랫폼은 유튜브가 아니라 모바일 게임 ‘로블록스’다.
미국의 16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들 중 약 55%는 로블록스에 가입돼 있고 이들은 유튜브보다 2.5배 많은 시간을 로블록스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0대 중 52%는 현실 친구보다 로블록스 내 관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응답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 소통이 어려워지자, 메타버스를 찾는 이용자들은 더 많아졌다. 2020년 로블록스 이용자는 2019년 대비 3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블록스는 하나의 게임으로 규정되는 플랫폼이 아니다. 블록으로 구성된 3D 입체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로 구현된 개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메타버스 안에서 무엇을 할 지는 사용자가 결정하면 된다.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하는 오픈월드 게임이다.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게임이나 자동차 등 창작물을 만들어 유로로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로블록스 안에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는 2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10대들 사이에서는 로블록스가 유튜브의 인기를 뛰어 넘었다./한국경제신문
로블록스는 최근 메타버스 개념이 주목 받으면서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워너브라더스에서 5조 5000억원을 투자했고 3월 10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로블록스의 기업 가치는 290억 달러(약 33조원)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네이버Z의 ‘제페토’가 2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제페토는 2월 기준 가입자 수가 2억 명을 돌파했고 그중 80%를 10대가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 대신 유튜브로 넘어갔던 MZ세대를 다시 네이버로 불러들일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인 셈이다.
제페토에 가입할 때 본인의 사진을 찍어 올리면 이용자 외모와 똑 닮은 3D 캐릭터가 형성된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은 가상 세계에서 자신을 투영하며 몰입할 수 있다.
‘월드’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친구들과의 실시간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게임, 쇼핑, 콘서트 감상, 팬 사인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처럼 제페토 피드로 아바타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용자가 ‘제페토 스튜디오’를 통해 직접 맵을 만들거나 옷 등 아이템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10대 사용자들은 제페토 아바타를 활용해 웹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제페토 속 일상을 찍은 ‘브이로그(Vlog)’를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2억 명에 달하는 글로벌 사용자들을 모으는 데는 K팝의 영향이 컸다. 제페토 안에서 모인 글로벌 사용자들은 팬덤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고 K팝 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한 아이템들을 산다.
제페토 내에서 K팝 팬덤의 파급력과 결집력은 생각보다 더 크다. YG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는 지난해 제페토에서 가상 팬 사인회를 열어 46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만났다. 지난해에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등 K팝 업체들이 170억원을 네이버Z에 투자했다.
현실 속 욕구, 메타버스에서 채운다
네이버의 목표는 완전한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이다. 현재 아바타 중심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를 고도화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미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지만 서비스는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며 “점점 더 많은 게임이 도입될 것이고 제페토 내에서의 영화 관람이나 일상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얹어 가며 완전한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뿐만 아니라 게임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엔씨소프트도 ‘유니버스’를 출시하며 메타버스를 도입했다. 유니버스에는 아티스트 아바타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있는데 팬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아바타를 직접 꾸미고 뮤직 비디오를 제작할 수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를 통해 사회 활동을 하는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M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현실에는 많지 않다”며 “이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다양성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메타버스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지과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메타버스가 ‘자극’, ‘위축’, ‘균형’ 등 인간의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이용자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때문에 인간의 심리적 3대 욕구가 위축됐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공간을 만나고 싶은 욕구(자극),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지배), 집에만 있으면서 생기는 불안감으로 인해 깨지는 ‘균형 욕구’ 등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현실 대신 메타버스를 통해 ‘살아가는 느낌’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