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소프트파워 보여준 ‘미나리’ 골든글로브 수상
동아일보 입력 2021-03-02 00:00수정 2021-03-02 00:00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가 어제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같은 상을 받은 데 이어 세계 대중문화 중심지에서 한국어의 콘텐츠 파워를 2년 연속으로 과시한 쾌거다.
‘미나리’는 미국 이민 2세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아칸소의 시골마을에 정착한 한인 이민 가정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후 골든글로브 이전까지 74개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특히 외할머니 순자 역의 배우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26개나 들어올리며 찬사를 받고 있다.
절반 이상이 한국어로 제작된 영화가 ‘자막 달린(비영어권) 영화’에 유독 배타적인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 감독도 처음에는 100% 영어로 제작하려다가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을 담아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집에서는 한국어를, 집 밖에선 영어를 쓰면서 어디에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민 가정의 모습을 인상 깊게 표현해냈다.
정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미나리는 스스로의 언어를 배워나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 언어는 우리 가슴속의 언어다”라고 했다. ‘미나리’의 주요 대사가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가 되지 못해 인종 차별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한 언급이었다. 다음 달 25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언어 규정이 없어 작품상과 여우조연상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이제 한국어는 세계 문화계에서 낯선 언어가 아니다. 보이그룹 BTS가 한국어 노래로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고, 언어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는 영화 ‘승리호’를 비롯해 많은 한국어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앞으로도 새롭고 창의적인 한국어 콘텐츠가 세계 문화계를 풍성하게 하며 낭보를 전해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