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넷플릭스의 이유 있는 자신감
2021.02.25
‘넷플릭스 당하다(netflixed)’라는 신조어가 있다. 새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으로 기존 비즈니스가 위축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넷플릭스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존 미디어들이 큰 타격을 입은 데서 생겨난 말이다. 넷플릭스의 등장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미디어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 부동의 1위이자, 전 세계 유료 가입자가 2억 명을 넘는다. 지난해 한국에서만 5173억 원의 결제 수익을 올렸고, 전년(2483억원) 대비 결제 수익이 108% 증가했다. 그런 만큼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에 대한 본사의 관심이 커졌고, 올해에만 한국 콘텐츠에 5,500억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넷플릭스(Netflix)는 25일 넷플릭스 콘텐츠 로드쇼 ‘See What's Next Korea 2021’을 개최하고 국내 넷플릭스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행사는 넷플릭스 서울 오피스 콘텐츠 부문 임원과 제작진, 배우 등 한국 창작자들이 참석해 ‘넷플릭스와 한국 창작 생태계의 동행’ ‘영화와 사랑에 빠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넥스트’ 등 세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진출 초기 해외 콘텐츠로 사용자들을 끌어모았지만 2017년 ‘옥자’를 시작으로 ‘킹덤’, ‘인간수업’, ‘스위트홈’, ‘승리호’ 등 해마다 한국 오리지널 작품 수를 꾸준히 늘리며 현재까지 70편 이상을 제작했다. 김민영 넷플릭스 한국·동남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 콘텐츠 총괄은 “지금까지 한국 콘텐츠에 7,700억 원을 투자하고 동반 성장을 위해 지원했다. 또 법무법인 설립, 장기적인 제작 기반을 다지기 위한 콘텐츠 스튜디오 2곳 설립, 신인 작가 제작자 발굴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킹덤'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
넷플릭스는 이제 국내 제작사가 가장 선호하는 파트너가 되기도 됐다. 조선판 좀비물 ‘킹덤’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킹덤’ 제작은 불가능했다”고 말했고, 청소년 성매매를 다룬 ‘인간수업’ 제작사 스튜디오329 윤신애 대표도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시작을 할 수 없던 작품”이라고 했다. 아낌없는 자본 투자,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유연한 환경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김은희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낸 의견에 한 번도 넷플릭스의 “NO”라는 대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첫 한국 오리지널 영화 제작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모럴센스’와 ‘카터’다. ‘모럴센스’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로맨스물이다. 남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와 우연히 그 비밀을 알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좋아해줘’, ‘6년째 연애 중’을 작업한 박현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 감독은 “재미뿐 아니라 개성이 느껴지는 독특한 로맨스 영화 만들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카터’는 ‘악녀’, ‘내가 살인범이다’의 정병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액션 영화다. 정 감독은 “보지 못한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 쾌감을 느낀다. 그런 느낌의 영화가 ‘카터’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리지널 영화는 이제 첫 단계이지만, 오리지널 시리즈는 이미 여러 편이 제작됐다. 올해도 넷플릭스는 수많은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좋아하면 울리는2’, ‘무브 투 헤븐’, ‘D.P.’, ‘마이네임’, ‘지금 우리 학교는’,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백스피릿’, ‘이수근의 눈치코치’ 등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넷플릭스 사용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로맨스물부터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콘텐츠의 포용력을 더욱 넓혔다. 이중 ‘킹덤: 아신전’, ‘지옥’, ‘오징어 게임’, ‘고요의 바다’ 제작진과 배우들이 행사에 직접 참석해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4개 시리즈는 넷플릭스가 올해 주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킹덤: 아신전' 스틸컷, 사진제공=넷플릭스 |
‘킹덤: 아신전’은 북방 여진족 부락의 후계자 아신과 생사초의 비밀 이야기를 담은 ‘킹덤’ 시리즈의 프리퀄이다. 톱배우 전지현이 아신을 연기한다. 김성훈 감독은 “‘킹덤1’이 ‘킹덤 월드’를 창조했다면 ‘아신전’은 ‘킹덤3’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 역할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은희 작가는 “‘킹덤’ 시리즈 주요 인물 중 하나가 아신이다. 아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사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주제를 스페셜 에피소드로 이야기하는 게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해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촬영을 모두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하는 지옥의 사자들을 맞닥뜨리게 된 사람들이 갑작스런 지옥행 선고를 받으며 겪게 되는 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작품이다.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양익준, 원진아 등이 출연한다. 연상호 감독은 “당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각 인물의 서사까지 완벽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었다”며 “작품에서 그리는 세계가 거대하다. 표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 모든 고민을 가능케 했던 게 바로 넷플릭스였다”고 밝혔다. 양익준은 “개인적으로 연 감독은 좀 미친 사람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을 작품화시킨다. 두렵고 괴로운 기억이나 상상을 흥미진진하고 몰입도 있게 만든다. 모든 걸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기파 배우 이정재와 박해수가 출연한다. 황동혁 감독은 “제약 없이 마음껏 만든 작품”이라며 “본래 영화로 기획했던 작품인데 아무래도 영화로 담기엔 어려운 방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넷플릭스가 아니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잔인한 부분도 있고, 다른 곳에서 소화하기가 힘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두 주연배우는 ‘오징어 게임’의 기대 포인트에 대해 “독창적인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아 궁금증을 자극했다.
'고요의 바다' 스틸컷, 사진제공=넷플릭스 |
배우 정우성이 제작자로 나선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공유, 배두나, 이준 등 출연 배우 라인업도 화려하다. 정우성은 “7년 전 단편 영화를 봤는데 아이디어가 정말 좋아서 장편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좋은 배우들과 만나서 달 지면을 밟게 됐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박은교 작가는 “처음엔 장편 영화로 준비했는데 세계관이 확장성이 있는 소재라서 2시간 안에 담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낼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특히 ‘센스8’, ‘킹덤’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세 번째로 하게 된 배두나는 “‘센스8’ 등 해외 작품을 통해 인사하기도 했지만 한국 콘텐츠로 인사드리는 게 더 뿌듯하다. 세계적인 시청자들과 마주하다 보니 넷플릭스의 작품을 할 때는 조금 더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