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타락한 드라마④] 한정된 인재풀·시청률에 홀린 방송국
- [데일리안] 입력 2020.11.25 06:04
- 수정 2020.11.24 17:55
-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방송국 효자 콘텐츠’ 된 본질적 이유는 좋은 드라마의 부재
‘동백꽃 필 무렵’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쓴 착한 드라마 성공 사례
발전적이어야 할 드라마가 계속해서 타락의 길로 들어선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드라마도 변해야 하지만, 오히려 기존의 틀에서 크게 변화하는 것 없이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것만으로는 시청자를 잡아두기엔 무리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작품이 성공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나마 성공한 드라마도 황금시간대 배정된 영향을 봤을 뿐, 예전처럼 시청률 20%를 넘기는 건 고사하고, 10%의 벽도 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선택권이 넓어진 탓이다.
뻔한 클리셰와 말도 안 되는 설정보다는 현실적이고 몰입감이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길 원한다. 특히 이전과는 다르게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다 보니 이전의 막장 드라마가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셈이다. 결국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대체제가 생겨나면서 이전과 같은 막장 드라마는 더 이상 성공가도를 달릴 수 없다.
그나마 한 때 케이블 드라마가 ‘보이스’ ‘스카이 캐슬’ ‘미스터 션샤인’ ‘시그널’ 등 막장이 아닌 스토리에 초점을 둔 드라마들을 내놓긴 했지만, 최근에는 이 조차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상파의 경우 ‘동백꽃 필 무렵’ ‘열혈사제’ 등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배경만 살짝 바꾼 체 과거의 것들을 답습하는 듯한 드라마만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 시청률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우려되는 지점은 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펜트하우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19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될 정도로 매회 논란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회 만에 10%의 시청률을 넘으면서 ‘역시 김순옥’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라는 이름처럼 자극적인 요소와 권선징악의 형태가 대리만족을 주고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효자’ 콘텐츠임엔 분명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드라마가 잘 되는 이유는 드라마 자체보다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표면적으론 월화극 6파전, 그러니까 많은 경쟁작들이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사실상 그만큼 볼 작품이 없다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착한 드라마’로도 성공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케이블임에도 10%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했다.
현 상황에서 강도 높은 설정과 표현이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대적할 만한 ‘좋은 콘텐츠’의 부재가 더 정확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펜트하우스’와 동시간대 ‘동백꽃 필 무렵’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이 붙었다면, 과연 시청자들이 불편한 자극을 참아가면서까지 이 드라마를 챙겨볼지 의문이다.
한 드라마 작가는 한정된 인재풀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작가는 “드라마 작가는 대체적으로 이전의 스타 작가나, 스타 PD들의 입맛에 맞아야 입봉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자연스럽게 작가 본인의 사상보다 기성세대들의 기호에 맞는 쪽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공모전 등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려는 추세지만, 여전히 지상파에서는 신인 작가들이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매우 좁다”면서 “결국 젊은 인재들은 다른 플랫폼을 찾거나, 그들의 입맛에 맞추는 두 가지 선택에 놓이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