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타락한 드라마③] 지나친 자극제들, 징계 수위는?
- 데일리안] 입력 2020.11.25 06:02
- 수정 2020.11.24 17:55
-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막장 수위에 대한 논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019년 방심위 제재 지상파 드라마 4건, 종편 드라마 1건 등 불과
막장 드라마의 문제가 지적되지만,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 드라마의 자극성에 따른 징계 수위가 매우 약하다는 부분은 압도적인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들 중에서도 중징계를 받은 드라마는 극소수다. 반사회적, 비교육적, 비도덕적, 비윤리적 소재가 난무함에도 별다른 규제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젊은 시청층이 올드미디어에서 빠져나가고, 중장년 여성층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막장 드라마 제작이 활발했던 2009년부터 2015년 사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지상파 드라마는 총 170건의 제재를 받았고, 그 중 ‘윤리성 위반’만 68건에 달했다. 그만큼 ‘막장’의 정도가 극심했던 것을 수치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시기 MBC 드라마 ‘밥줘’에 대해 방심위는 불륜, 불법, 패륜 등 드라마의 비상식적이며 비윤리적인 내용을 문제 삼으며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내렸다. 당시 MBC는 “우리도 납득하기 힘든 드라마로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만들어 죄송하다”며 “앞으로 두 번 다시 서영명 작가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라고 반성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임성한 작가의 경우도 서영명 작가에 이어 MBC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 공주’(2013) 방영 당시 방심위로부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벌점5점)’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MBC는 이후 또 다시 임 작가의 ‘압구정 백야’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관계자 징계’ 처분을 받았다. MBC는 드라마 심의 및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내기도 했는데 이는 방송사가 드라마 심의 및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낸 첫 사례이자, 법원이 제재의 정당성을 인정한 첫 사례로 남았다. MBC는 이 당시 임 작가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고, 임 작가는 절필을 선언했다.
‘내딸, 금사월’의 경우는 두 차례에 걸친 징계, 방송사에서 그에 준하는 직원들에 대한 징계가 있었지만 재심을 청구하면서 기존의 관계자 징계를 뒤집고 경고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당시 지상파의 막장 드라마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징계 수위를 높이는 등의 제재를 가했지만, 방송사의 계속되는 막장 드라마 제작에 방심위와 한국언론학회는 ‘방송 드라마의 공적 책임, 이대로 좋은가?: 저품격 드라마의 공적 책임 회피 현상과 개선 방향 모색’ 토론회를 열고 막장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배경과 책임소재, 막장드라마를 지양하고 양질의 드라마를 독려하는 방안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러 토론 주제들 중 이들은 막장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일부는 방송사의 일탈로 봤지만, 욕하면서도 보는 시청자를 탓하거나 작가의 가치관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적정 수위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막장’이라는 것 자체에 견해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것에는 큰 진척이 없었다.
실제로 지금도 방송가에는 막장 드라마의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규제는 오히려 이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방심위의 2019 방송심의사례집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해 법정제재와 행정지도를 받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은 각각 36건과 105건에 달한다.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처분은 단 4건에 불과하다.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 역시 16건 법정제재와 122건의 행정지도를 의결했지만 드라마에 대한 제재는 1건이었고, 일반 전문편성채널 및 SO·위성방송 111건의 법정제재와 110건의 행정지도 의결했지만 드라마에 대한 제재는 단 2건에 그쳤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황후의 품격’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6조(생명의 존중) 제2항에 따라 해당 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가 결정됐고, 이후 또 한 차례 인권 보호, 성표현, 폭력묘사, 수용수준 위반으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KBS2 ‘오늘의 탐정’도 충격·혐오감, 자살묘사, 수용수준 위반으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SBS ‘열혈사제’도 폭력교사, 수용수준 위반에 따라 권고 조치, TV조선 ‘바벨’은 성표현, 폭력묘사, 수용수준 위반으로 주의 조치, OCN ‘타인은 지옥이다’는 충격·혐오감 위반으로 권고 조치, ‘손 더 게스트’도 충격·혐오감, 자살묘사 위반으로 권고 조치를 받았다. 결국 지난 한 해 동안 드라마에 대한 제재 총 7건 중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관계자 징계’ ‘경고’ ‘주의’는 4건이었다.
징계 수위만큼 논란이 되는 건 막장 수위와 별개로 부여되는 시청 등급이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된다. 즉 고등학생부터는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시청해도 문제가 없다. 거기다 시청 시간대가 오후 7~10시 사이로 집중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시청 지도가 없으면 초등학생, 중학생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더구나 케이블에서의 재방송 때문에 사실상 상시 노출 가능성도 크다.
한 지상파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던 A씨는 “무조건 징계 수위를 높이는 것이 막장 드라마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윤리성’이라는 기준이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일관된 잣대를 갖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분명 제재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근거들을 토대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