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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퀸스 갬빗] 하먼을 구제한 건 술이 아니라 친구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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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0.11.17 09:08 11,91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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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운 기자의 드라마를 마시다] 나를 구제한 건 술이 아니라 친구였다

‘퀸스 갬빗’의 칵테일 ‘깁슨’


/넷플릭스 

/넷플릭스



※이 글엔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스파라거스 비네그레트 먹으면서 메인 요리 생각해 볼게요. 음료는 콜라, 아니 칵테일 ‘깁슨’으로 할게요.”

지금이 내 인생의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 밑에 지하실이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에서 세계 체스 챔피언 보르고프에게 패배하고 집에 돌아온 주인공 베스 하먼의 마음일 것이다.

친어머니는 자살했고, (사실 딸과 동반 자살을 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양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으로 급사했다. 아버지 두 명에게선 모두 버림받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고 집을 청소한 후 혼자 레스토랑으로 가 ‘깁슨’을 주문한다.

‘깁슨’은 양어머니 앨바 휘틀러가 사랑한 술이었다. 그는 하먼의 매니저로 함께 체스 대회를 다니면서 비행기를 탈 때면 늘 깁슨을 주문했다. 투명한 액체 속 펄어니언(미니 양파)이 보석처럼 들어간 깁슨을 한 모금 마실 때 휘틀러의 얼굴엔 미소가 퍼졌다.

깁슨은 드라이진과 드라이베르무트를 3대1 비율로 탄 후 펄어니언을 넣어 만든다. 마티니와의 차이는 올리브를 넣느냐, 펄어니언을 넣느냐 정도다. 이 칵테일을 좋아한 뉴욕의 화가 찰스 D 깁슨에게서 이름이 유래했다.

하먼에게 술은 애증의 존재다. 외로운 인생을 위로해주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지나친 중독으로 그에게 독이 돼 돌아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프랑스 파리에서 보르고프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프랑스인 모델 친구 클레오와 마신 ‘파스티스’다.

1932년 마르세유 출신인 폴 리카르가 아니스, 감초 등을 사용해 만든 식전주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귀를 자르게 한 압생트가 판매 금지되자 비슷한 성분인 파스티스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물을 타면 뿌옇게 변하는데, 이 상태로 마신다. 현대적인 병 디자인으로도 유명해 20세기 중반 프랑스 카페 거리를 휩쓸었다. 클레오와 한 잔만 마시기로 한 파스티스를, 하먼은 결국 정신을 잃을 만큼 마시고, 결국 숙취 속에 보르고프와 대회를 치르다 패배한다.

이렇게 술에 중독돼 살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되는 계기는 같은 고아원 친구 졸린이 나타나면서다. 졸린은 모두가 떠나버린 하먼에게 자신이 모은 로스쿨 학비를 대회 참가 비용으로 주며 술과 약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사람 인생을 구제하는 건 술이 아닌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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