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훔친 영화人 〈7〉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황야의 90대 현역이라니
“내 나이에는 큰 목소리로 말할 필요가 없다. 가끔 이 나이에 왜 다른 노인들처럼 집에 있지 않고 아직도 일하느냐고 자문할 때도 있으나,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도 앞으로 만들 영화 한두 편에 관해 구상 중이다.”
미국 영화감독 겸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1930~)가 〈리차드 쥬얼〉(Richard Jewell, 2019)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리차드 쥬얼은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계약직 경비원으로서 폭발물을 발견해 큰 인명 피해를 막았지만 오히려 폭탄 테러 용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른 실존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를 녹여낸 영화 〈리차드 쥬얼〉을 개봉할 당시 이스트우드는 만 89세였다. 우리 나이로 구순(九旬)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누구나 꿈꾸는 ‘영원한 현역’을 실현하고 있다. 더구나 배우로 출발해 감독으로 대성한 흔치 않은 경우다. 많은 배우들이 종종 연출에 도전해보지만, 대부분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얻지 못하거나 단발성으로 그치기 일쑤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 30년 넘게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왔을 뿐 아니라,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와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 1992)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거장 반열에 올랐다.
이스트우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벌목장 인부, 소방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트럭 운전을 하던 그는 1954년부터 단역 배우로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고, 1959년 CBS방송국에서 방영한 서부 연속극 〈로하이드〉(Rawhide, 1959~1966)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할리우드식 서부극과는 다른 서부극을 만들고자 했던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눈에 띄어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라는 ‘마카로니웨스턴’ 영화에 출연했다. 정형화된 미국 서부 영화의 틀을 깬 1960~70년대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를 일컫는 용어로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도 한다.
주로 멕시코를 무대로 삼은 마카로니웨스턴은 미국 서부극의 개척 정신을 잔혹성으로 대체했다. 마카로니웨스턴의 주인공은 과거 미국 서부 영화의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처럼 거창한 명분이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가 아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자신의 이해와 탐욕을 위해 총질을 하고, 이 과정에서 온갖 음모와 배신이 얽히고설키게 된다.
배우, 거장이 되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1965) |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석양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를 잇달아 흥행시키면서 이른바 ‘마카로니웨스턴 3부작’을 완성한다. 이스트우드는 단번에 할리우드 스타로 떠올랐고, 냉소적인 총잡이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이후 그는 돈 시겔 감독의 갱스터 무비 〈더티 해리〉(Dirty Harry, 1971)에 출연했고, 〈더티 해리〉는 큰 인기를 끌어 다섯 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스트우드가 배우로서 갖고 있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작업한 영화들로 인해 형성됐다. 트레이드마크인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찌푸린 표정을 한 채 별다른 말 없이 거친 남성성을 뿜어내던 캐릭터는 고독한 무법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강렬한 눈빛과 말수 적은 매력을 통해 그는 어떨 땐 전형적인 마초적 거들먹거림을, 또 어느 때는 얼음처럼 차가운 강인함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캐릭터는 전직 CIA 요원의 대통령 암살 시도를 막는 경호요원 역의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 1993)와 같은 영화에서 마치 페르소나처럼 그의 연기와 함께 차용됐다.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해리〉(1971) |
서부극으로 스타덤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스스로 감독과 주연을 겸한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그 무법자 캐릭터를 재해석한다. 제65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남우조연상(진 핵크만)을 수상한 이 작품은 과거에 벌인 살인, 죄악 등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서부 개척시대 인물들을 묘사함으로써 “서부극의 아이콘이 서부극에 바치는 고별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은 스릴러물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 1971)였다. 스토커 여성 팬에게 시달리는 DJ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면서 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했다. 스토커를 담은 첫 대중 영화로도 평가받는 이 작품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스릴러 영화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와 국내 제목이 비슷해 종종 혼동되기도 한다.
1988년 재즈 연주자 찰리 파커의 스토리를 그린 〈버드〉(Bird)로 골든글로브 감독상, 칸영화제 남우주연상(포레스트 휘태커) 등 다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그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제77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힐러리 스웽크), 남우조연상(모건 프리먼)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 경력에 정점을 찍었다. 2006년에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자매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를 연출했다. 이오지마 전투를 각각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영화들이다.
울림 깊은 휴머니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그랜 토리노〉(2008) |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열성적인 공화당원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영화계 인사들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인 사실을 떠올리면 매우 특이한 경우다. 2008년 미 대선 당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가 아닌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지지했고, 2018년엔 도널드 트럼프 편에 섰다. 하지만 낙태 합법화와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등 정치적으로 열린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정통 우파적 모습은 감독과 주연을 겸한 대표작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에도 잘 드러난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주인공이 이웃에 사는 동양인 이민자 가족과 친해지고, 그들을 위협하는 불량배에 맞서는 이야기를 통해 울림 깊은 휴머니즘은 물론 미국의 인종 관계, 긍정적 롤 모델의 부재 등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냈다. 2018년엔 80대 후반의 나이로 마약을 운반한 실존 인물을 다룬 〈라스트 미션〉(The Mule)에서 주인공에 연출까지 맡는 등 그는 거의 매년 영화 작업을 하는 엄청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라스트 미션〉(2018) |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영화에 출연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사람들이 연기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감독이 된 이유 중 하나다. 이제 내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기에는 피곤하다.”
그는 피로감을 말하고 있으나, 관객인 우리는 스크린에 비친 그의 모습을 경이로운 심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톱클래스 2020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