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 유지 위해 밤새워 움직여 행동식ㆍ도시락으로 끼니 해결 탈수 증세 있으나 생명 지장 없어 홀로 설악산을 등반하다 길을 잃은 77세 노인이 실종 사흘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이 노인은 체온 유지를 위해 밤을 새며 움직이고, 보조배터리를 아껴 가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 끝에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16일 강원도소방본부와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A(77)씨는 지난 13일 시외버스를 타고 홀로 설악산을 찾았다. 이날 A씨는 장수대를 시작으로 귀때기청봉을 지나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난(難)코스'를 선택해 산행에 나섰다. 해당 코스는 성인 남성도 당일 산행으로는 힘들다는 험한 코스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일몰 전 하산하지 못해 길을 잃었다. 가족들은 당일치기로 산행에 나선 A씨가 돌아오지 않자 이날 오후 9시 실종 신고를 했다. 산속에서 밤낮으로 헤매기를 사흘째인 15일 오후 5시 30분쯤 A씨는 간신히 통신 신호가 잡히는 귀때기골 인근에서 "계곡 근처에 있는데 너무 춥다. 구조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백담사 기지국에서 잡힌 신호를 바탕으로 119구조대와 설악산국립공원구조대, 경찰 등 약 70명이 수색에 나섰고, A씨는 수색 4시간여 만인 오후 10시쯤 구조대원들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 당시 A씨는 심한 탈진 증세를 보였으나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A씨는 구조 즉시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실종 기간 설악산의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밤을 새워 쉼 없이 움직이며 체온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산행 때마다 챙겨 다니던 행동식과 넥워머, 패딩, 모자 덕에 사흘을 간신히 버틴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휴대폰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에선 전원을 꺼 배터리를 아끼고, 보조배터리도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창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재난안전과 팀장은 "연세는 많으셨으나 평소에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신 것 같았다"며 "산을 평소에 많이 다녀 헤드랜턴과 보조배터리를 소지하고 계셨던 게 주효했다"고 전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