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정운찬 총재는 키움 사태를 조사해야한다
백종인 입력 2020.10.12. 05:41 수정 2020.10.12. 07:08
2011년 다저스의 막장 시절
2011년 얘기다. 발단은 신문 기사 하나였다. LA타임스의 단독 보도다. 프랭크 매코트가 폭스TV로부터 3000만 달러(약 360억원)를 빌렸다는 내용이다. 그는 당시 LA 다저스의 구단주였다.
얼핏 보면 별 일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잠시 유동성 문제가 있나? 그 정도로 넘겨도 그만이다. 왜냐고? 매코트는 부동산 재벌이다. 보유 자산이 수십억 달러다. 3000만 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인 액수도 아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차용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일이 커졌다.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그룹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다.
당시 커미셔너는 버드 셀릭이다. 그는 곧 가장 강력한 결정을 내렸다. 프랭크 매코트의 경영권을 박탈시켰다. 구단 운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정지시킨 것이다. 재정 문제는 물론, 트레이드 같은 선수단의 주요 결정도 모두 사무국의 승인을 거쳐야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매코트는 즉각 반발했다. 부당한 조치라며 성토했다.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어딜 감히. 커미셔너는 막강했다. 무엇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저스의 재정 상태는 형편없었다. 몇 년간의 방만한 경영 탓이다. 전력은 쇠락하고, 팬들은 발길을 끊었다. 마지막 방법이 중계권 매각이었다. 폭스TV에 20년 독점권을 주기로했다. 시장가를 훨씬 밑도는 3억 달러 딜이었다. 커미셔너는 이 계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매코트는 돈줄이 말랐다. 선수단과 직원들 급여조차 버거웠다. 부인과의 이혼/재산분할 소송도 진행중이었다. 문제가 된 3000만 달러 차용은 그런 가운데 이뤄진 일이다. (와중에서 자기 집 수영장 고치는 데 회삿돈을 쓴 것도 밝혀졌다.)
이후로는 커미셔너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 매코트를 내보내고, 새로운 주인을 찾는 수순이다. 이듬해 봄, 다저스는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파행을 일삼았던 구단주는 물러났다. (현재의) 구겐하임 파트너스가 새로운 리더십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저스는 오늘날의 위상을 되찾았다.
매코트 부부의 화목했던 시절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손혁 사태에 대한 야구인들의 분노
야구판이 소란스럽다. 일주일 내내 어수선하다.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 교체 탓이다.
구단 발표는 자진 사퇴다. 손혁 전 감독의 결정이라고 했다. 이유는 성적에 대한 책임이었다. 얼핏 납득이 어렵다. 당시 순위는 그래도 3위였다. 게다가 정규 시즌을 불과 10여 게임 남긴 시점이다. 곧 포스트시즌도 치러야 할 형편이다. 여러모로 미심쩍다.
이를 두고 어느 매체는 '자진 사퇴당했다'고 표현했다. 어떤 힘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야구인들은 분노했다. 점잖은 국민 감독도 쓴소리다. "물론 프로 감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래도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 이건 야구를 우습게 보는 일이다. 화가 많이 난다." (김인식)
가장 센 멘트는 방송 도중에 나왔다. 한화-KIA전 생중계 도중이었다. SBS Sports 이순철 해설위원이었다. "누군가는 야구 감독이라는 자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해임한 사람이 감독을 해야한다. 대한민국 어느 감독을 데려와도 마음에 안 들 것이다. 야구인의 자존심을 굉장히 상하게 하는 일이다. 별로 기분 좋은 하루가 아니다."
이 위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도 여전했다. 한 미디어의 취재에 이렇게 쏟아부었다.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 굉장히 참담하다.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겠다. 아무리 임명권자라도 이건 아니다. 선임 전에야 몰라도, 일단 선임한 뒤에는 존중해줘야한다. 갑질도, 횡포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리고 한 마디를 보탰다. "기사 쓸 때 익명으로 하지말고, 꼭 내 이름으로 써달라." 끓어오르는 감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기존 구단과는 다른 운영 방식
많은 비판이 쏟아진다. 다수의 매체가 내는 준엄한 목소리다. 대상은 뚜렷하다. 키움 히어로즈의 최고위층이다. 허민 이사회 의장이다.
구단은 극구 부인한다. 어디까지나 손혁 전 감독의 자의적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의는 크지 않다. 여론은 싸늘하다.
이 대목에서 살펴야 할 게 있다. 분노하고, 찡그리고, 욕하고…. '에이, 세상 다 그런거지 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런 탄식에 묻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절차 위해 나아갈 것인가. 그런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다. 설사 비판의 내용이 맞다치자. 그러니까 형식만 자진 사퇴다. 실제로는 고위층의 뜻이 작용했다. 그렇다치자. 그럼 다음 질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못마땅해서 내보낸 건데. 계약은 해지될 수도 있지. 고유의 인사권 아니냐. 그런 반론이다. 언뜻 맞는 말 같다. 그런데 아니다. 본질은 다른 데 있다.
히어로즈라는 구단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기존 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지된다. 덕분에 큰 박수도 받았다. 한국에서 실현된 머니볼이라는 평가도 얻었다. 하지만 갈채는 짧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대표이사의 법정 구속, KBO 직무활동 정지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등장한 게 허민 의장을 비롯한 현재의 경영진이다. 이들은 여러차례 구설에 휘말렸다. 독특한 운영방식 탓이다.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핵심은 리그의 가치를 지키는 일
야구인의 자존심? 야구에 대한 존중? 물론 중요한 문제다. 지켜야 할 부분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 <…구라다>는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사태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과연 그들의 방식이 리그의 질서를 어지럽힌 건 아닌가. 가치를 훼손한 건 아닌가. 팬들의 외면을 부른 건 아닌가. 그런 부분에 집중해야한다.
다시 2011년의 다저스를 얘기해보자.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사무국에 팀 하나를 꾸렸다. 6명으로 이뤄진 이들은 LA로 급파됐다. 다저스 구장의 사망 사고 조사팀이다(팬들간의 주차장 난투극 때문).
조사팀은 중요한 걸 밝혀냈다. 매코트 구단주가 몇 개월째 안전/보안 책임자 자리를 비워놓은 사실이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어디 그 뿐이겠나. 시즌 티켓 판매량은 급감했다. 중계 시청률도 하향 곡선이다. 파행적인 구단 운영 탓이다.
결국 커미셔너는 결론을 내렸다. 다저스가 리그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단주의 권한을 박탈한 본질적 이유다.
물론 막장 시절의 다저스는 극단적인 예다. 현재의 히어로즈를 등가 비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곳곳의 우려는 분명하다. 만약 비판대로 문제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일개 기업의 경영상 문제로 그칠 수 없다.
핵심은 리그의 가치다. 손가락질 받고, 외면 당하는 곳은 생존할 수 없다. 독단과 파행, 전횡이 계속 되면 결국 가치는 훼손된다. 팬들도 더 이상 감동하고 열광할 이유가 없다. 그걸 제어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게 바로 커미셔너와 사무국의 일이다.
아직은 혼란 상태다. 정황과 의구심, 짐작만 있다. 좀 더 명확해야한다. 진상 파악이 우선이다. 그래야 대안도 마련된다. 정운찬 총재와 한국야구위원회는 키움 히어로즈 '사태'를 조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