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⑨ 로봇, ‘라스트 마일’을 책임진다
기사입력 2020.03.26 오후 02:39
[한경 머니=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 | 사진 한국경제DB] 아인슈타인은 “컴퓨터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멍청하다. 인간은 느리고 부정확하지만 뛰어나다. 둘이 힘을 합치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로봇의 본질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더 다양한 산업이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그 비중은 50% 정도로 줄어들 것 같다. 나머지 30%는 개인용 항공기, 20%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9년 10월 2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옥에서 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이같이 제시했다. 자동차는 ‘소유’가 아닌 ‘공유’ 대상으로, 로봇은 자동차를 대신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떠올랐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청소기가 바로 로봇의 가장 초기 모습이다. 이제 이 로봇이 집 밖으로 나왔다.
배달로봇 시장을 선점하라
아마존은 2019년 1월 말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배달용 자율주행 로봇 ‘아마존 스카우트’ 6대를 가지고 고객에게 택배 테스트를 했다. 아마존 스카우트는 사람이 걷는 속도 정도로 운행한다. 아마존 스카우트는 시험 운행에서 나무, 의자, 자전거, 쓰레기통 같은 일반적인 장애물 사이를 피해 가며 안전하게 운행했고, 아직 계단을 오르지는 못한다. 2019년 8월 아마존 스카우트는 시애틀에서 소포를 배송하는 첫 업무를 개시했다.
페덱스는 자율주행 배달로봇 ‘페덱스 세임데이 봇’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장애물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으며, 안전한 도로와 위험한 도로 환경을 구분해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비포장도로나 높은 도로 턱, 울퉁불퉁한 지면을 넘을 수 있으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
콘티넨탈은 물품 배송 수요가 인구 수송 수요보다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래서 배송 분야 연구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개처럼 생긴 콘티넨탈의 로봇은 콘티넨탈의 자율주행 택시 ‘큐브’를 타고 배송지 문 앞까지 도착한 뒤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거나 우편함에 물건을 내려놓는다. 다리 4개로 계단을 오를 수도 있다. 이것이 콘티넨탈의 자율주행 택시 큐브 더하기(+) 배송로봇 조합이다. 원거리는 큐브로 이동하고 라스트 마일(last mile)은 배송로봇이 해결한다는 콘셉트다. 라스트 마일은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과 같은 대중교통 랜드마크에서 최종 목적지인 집, 회사 건물까지의 짧은 거리를 말한다.
자동차회사 포드는 어질리티 로보틱스와 공동 개발한 택배용 로봇 ‘디짓’을 가지고 있다. 이 로봇은 인간처럼 2족 보행이 가능하다. 팔을 사용해서 자율주행자동차에서 택배물품을 꺼낸 뒤 고객의 집 앞에 내려다 놓는다. 디짓은 약 20㎏짜리 택배물품을 옮길 수 있으며, 계단, 비포장도로에서도 보행이 가능하다. 포드도 자율주행차에 이 로봇을 탑재시켜 배송하는 조합을 계획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콘티넨탈과 비슷한 콘셉트다. 자율주행차가 대중교통의 역할을 한다면 라스트 마일은 로봇이 책임진다.
미국 스타트업 ‘리프랙션 AI’도 자율주행 배송로봇 ‘레브-1(REV-1)’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인도가 아니라 자전거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바퀴 3개를 이용해 움직이는데, 물건을 싣고 이동한 뒤 목적지에 도착하면 수신인에게 도착했다는 알림 문자를 보낸다. 물건 수신인은 알림을 확인하고 로봇이 있는 위치로 가서 주문한 물건을 로봇 안에서 꺼내 간다. 특히 이 로봇은 인도가 아니라 자전거도로로 이동하므로 인도 보행자의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자전거, 킥보드 등 다른 모빌리티 수단들과의 안전 규칙 등은 계속 논의 중이다.
자율주행차+배달로봇
현재 일반적으로 배달로봇의 이동 속도는 시속 6km, 배송 범위는 반경 5km 정도다. 배터리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당분간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 주택가, 빌딩가, 대학 캠퍼스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다임러는 대형 밴에 여러 대의 배달로봇을 싣고 물류센터에서 주택 밀집 지역까지 간다. 그곳에서 비로소 로봇들은 각 가정으로 배달을 나간다. 앞서 살펴본 콘티넨탈, 포드와 비슷한 콘셉트다. 이 방식으로 9시간에 약 400개의 화물 배송이 가능하다고 하니, 기존에 비해 배송 효율이 2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라스트 마일 단계는 배송 과정 중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대규모 물량을 한꺼번에 대중교통으로 모아서 운반할 수가 없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거리 자체는 짧지만, 소포 하나당 하나의 주소로 개별 운반해야 해서 시간도 많이 들고 공도 많이 든다. 특히 요즘은 소비자의 최초 언박싱 경험(unboxing experience)이 중요하기 때문에 라스트 마일 배송이 더 중요하고 섬세해지고 있다.
‘자율주행차+배달로봇’ 조합은 이 라스트 마일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다. 자율주행차 혹은 큰 밴으로 배송지가 집중된 구역까지는 로봇과 물건이 함께 이동한다. 라스트 마일부터는 로봇이 개별 상세 주소로 물건을 옮긴다. 비용·시간·노력 리소스 면에서 가장 합리적이다. 도로 혼잡 완화와 이산화탄소 배출 감량에도 효율적이니, 환경 문제도 해결해 일석이조다.
(사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0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포드는 두 발로 걷는 배송로봇 디지트를 선보였다.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 중 소비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실용적인 분야로 ‘주차’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리옹공항에서는 주차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고객들은 박스 형태의 차고에 주차를 한다. 언제, 어디로 차를 다시 찾으러 올지 정보를 입력해 둔다. 로봇이 와서 차를 들어 주차장으로 옮긴다. 그리고 고객이 입력해 둔 날짜가 되면 로봇이 다시 차고에 차를 가져다준다.
프랑스 스타트업인 스탠리 로보틱스(Stanley Robotics)가 개발한 주차로봇이다. 이 로봇을 이용하면 더 효율적인 주차 배치가 가능해져서 기존 대비 같은 면적에 50% 더 주차할 수 있다고 한다. 공항에서는 주차선도 불필요하며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이곳 말고도 프랑스, 영국, 독일의 공항에서 시범 서비스 중이다.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2019년 9월 24일 로봇 개 ‘스폿(Spot)’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폿은 키 84㎝, 무게 25㎏의 4족 로봇이며, 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로봇 개의 진면목은 개인 일상보다는 건설 현장, 공공안전 시설, 군 시설, 가스·석유·전력 시설에서 빛을 발한다. 4족 로봇이라 계단이나 울퉁불퉁한 지형도 잘 오르내린다. 영하 20도의 혹한기에도, 영상 40도의 찜통더위에도 끄떡없다. 로봇 개 하나당 최대 무게 14㎏의 짐도 운반할 수 있다.
로봇 개 여러 대가 모이면 대형 차량이나 무거운 짐도 운반할 수 있다. 로봇 개는 원격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위험한 현장이나 원거리 시설에 가지 않아도 로봇 개를 대신 투입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로봇 개를 개발한 회사는 첫 판매 대상을 ‘로봇 산업 기업’으로 한정했다. 로봇 개를 적재적소에 재대로 활용해 효과를 볼 수 있는 역량과 가능성을 가진 곳에만 팔겠다는 뜻이다.
배달로봇 달리게 하는 기술은
자율주행 로봇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첫째로 5세대(5G) 이동통신이다. 배송로봇, 주차로봇의 자율주행과 원격제어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5G가 있어야 실시간 영상과 같은 고용량 데이터를 지연이나 오류 없이 실시간으로 로봇과 관리 시스템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사실 이 5G가 완벽해지면 자율주행 로봇이 인도로 다녀야 하느냐, 자전거도로로 다녀야 하느냐, 안전 규칙을 어떻게 법제화하느냐의 문제는 더 이상 논쟁거리도 아니다. 5G를 통해 로봇이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확인한 정보를 가지고 사람, 사물, 장애물을 바로 바로 체크하고 안전 주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 국가별 5G 기술 보유 현황은 어떨까. 독일 시장조사업체인 아이플리틱스(IPlytics)가 발표한 ‘5G 특허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7월 5G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 SEP) 랭킹에서 화웨이가 2160건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4위, 삼성전자는 5위에 랭킹이 됐다. 표준필수특허란 해당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서는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핵심 특허를 말한다. 핵심 중 핵심은 5G 특허다. 5G는 로봇뿐 아니라 자율주행,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4차 산업혁명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다. 따라서 이 5G를 확실히 잡는다는 것은 곧 4차 산업혁명을 맨 앞에서 끌고 간다는 뜻이 된다.
둘째로 클라우드 기술이다. 클라우드란 데이터를 개인이나 기업들의 자체 서버에 보관하지 않고 네트워크상에 보관해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사용하는 서비스다. 주차로봇은 클라우드에서 3차원(3D) 맵을 내려 받아 차와 주차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배송로봇은 물건과 수신자 위치를 체크해야 한다. 그것도 항상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내용으로 말이다. 이 대용량 최신 자료를 로봇과 여러 주변 시스템이 공유하려면 클라우드 기술이 필요하다.
셋째로 충전 기술이다. 자율주행차와 짝(pair)으로 움직이지 않고 로봇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경우 충전된 로봇 배터리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 로봇이 들 수 있는 무게는 얼마까지인지가 중요하다. 로봇의 외양은 가볍고 날렵하지만, 그 안에 장착되는 배터리는 고사양이어야 가장 이상적이다. 이런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충전 기술, 배터리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로봇과 로봇에 필요한 기술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를 선점하기 위해 완성차업체, 정보기술(IT)업체, 통신업체, 유통업체 할 것 없이 모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앞에서 로봇에 필요한 기술 중 첫째로 꼽은 5G를 다음 호에서 다룬다.
정순인 책임연구원은…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본부에서 수주 대응, 오토모티브(Automotive) SPICE 인증, 품질보증(Quality Assurance) 업무를 한다. 소프트웨어공학(SW Engineering),Technical Documentation 사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내에서 2016~2017년 연속 최우수 강사상과 2018~2019년 연속 우수 강사상을 수상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다룬 책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를 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